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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민 김소영 Aug 17. 2021

나 좀 말리지

남 탓



"난 이런 집안에 태어날 사람이 아니라니까. 하필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만나서 이 고생이람."


오늘도 어김없이 저놈의 자식은 거울을 보며 중얼거린다. 면도하는 뒷모습이 영락없는 지 아비다. 그 아비란 작자는 해가 중천인데 빼꼼 열린 방문 너머로 연신 천장을 향해 거친 숨을 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 인간에게 30년째 듣던 소리를 이젠 저놈의 자식까지 하나 더 늘어 세트로 듣다니. 잘나면 자기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꼬인 자기들 인생을 지그들 조상에게 화풀이하고 있다.


주방 개수대 앞 좁고 긴 창을 통해 초록색 자연과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산 중턱 고급진 주택들이 보인다. 그중 밝은 주황색 지붕 집 마당에 없었던 잘 다듬어진 소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어머, 잘했네. 잘했어. 딱 저 자리가 살짝 비어서 조화롭지 못했었는데.... 그래,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주황색 지붕 집 안주인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동질감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욕실에서 나온 아들 녀석은 물기를 제대로 닦지 않은 발로 바닥에 얼룩을 남기며 다가와 반찬으로 새로 만든 동그랑땡을 집어 먹으며 식탁에 앉는다.


"엄마, 어제 주용이를 만났는데 사람 사는 것처럼 살더라. 얼마나 주눅이 들던지. 지가 잘서 잘 사는 줄 알아. 다 지 아버지 덕에 거저 살면서."

뭐하나 얻어먹으려고 어느새 발밑에 와 꼬리를 흔드는 포미에게 아들 녀석은 동그랑땡 하나를 입에 물려준다.


"야, 그걸 다 주면 어쩌냐. 요새 살찐 거 안 보여? 그리고 매일 주용이 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아닌 것을 한스러워하면서 주용이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

나는 포미 입에서 남은 동그랑땡 조각을 때어내며 아들자식에게 핀잔 섞인 말투로 말했다.


"엄마, 출생 신분이 다르면 삶 자체가 달라. 따라갈 수가 없어. 이봐 개새끼도 순종이니까  대접받는 게 다르잖아. 똥개면 동그랑땡 어림도 없지. 밖에서 먹다 남은 밥이나 얻어먹지."

아들은 포미를 들어 올려 얼굴을 비벼대자 갑자기 들어 올려진 포미는 싫다며 발버둥을 쳐댄다.


"어차피 이렇게 태어난 거 부모 탓만 할 게 아니라 네가 잘했으면 지금 이 모양일까?"

출생 신분 탓을 하는 아들 녀석이 내심 서운하다.


"엄마, 지금 세상은 나 혼자 잘한다고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옛날하고 달라."

아들 녀석은 모르는 소리 말라며 오른손을 힘차게 내젓는다.


"맞다. 네 말에 한 표. 나도 만일 우리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였으면 지금과는 달랐을 거다."

언제 일어났는지 아들 아버지라는 작자는 아들 말에 동조한다. 꼬리를 흔들어 대는 포미를 안고 식탁에 앉는다.  동그랑땡 하나를 자기 입에 넣고 또 다른 하나를 포미 입에 물려준다.


'어쩜 저리 똑 닮았을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하는 모양이 똑같아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


"밥 안 줘?"

아들 아비는 세수도 하지 않고 일어나자마자 밥 먹겠다고 앉아서 보챈다. 그 모습에 절로 나오는 한숨을 쉬며 밥을 퍼서 그 앞에 툭 던지듯 놓는다.


"남 탓하는 사람 치고 잘 되는 사람 못 봤네."

나는 아들과 그 아비를 번갈아 쳐다보며 한 마디 한다.


"어머니, 이게 어찌 남 탓입니까? 우린 남이 아닙니다. 아버지 제발 분발 좀 하세요."

내 말에 아들 녀석은 물컵을 소리 나게 딱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미친놈, 나에게 그럴 게 아니라 네 할아버지를 원망해라."

아들 아비는 제 탓이 아니라는 듯 연신 밥을 입에 넣으며 무심하게 툭 내뱉는다.


한심한 부자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작은 창 너머 잘 손질된 소나무에 눈을 둔다.


다음날 아침,


"아~ 진짜. 주용이 아버지가 내 아버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김없이 욕실 거울 앞에서 아들 녀석은 또 저 소리다.


"나도 주용이 아버지가 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그 옆 변기에 앉으며 아들 아비가 중얼거린다.

그 둘을 바라보며 뭐가 좋다고 포미는 욕실 앞에서 꼬리를 흔들어 대고 있다.


그대여~ 그대여~

아침 일찍부터 전화벨이 울린다. 친정 엄마다.


"잘 지내냐?"

오랜만에 들어보는 엄마 목소리다. 갑자기 울컥한다.


"엄마, 내가 저 인간하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왜 안 말렸어?"


벚꽃이 만발한 봄날, 어머니는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딸의 원망 섞인 말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원인을 나 아닌 다른 것에서 찾게 된다.

자식들은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을 때 '왜 나를 낳았냐'며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나의 부모가 나를 낳지 않았다고 좋은 조건을 가진 다른 부모에게서 내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내가 태어날 환경 조건과 부모의 환경 조건이 맞아서 그 부모에게 태어난 것이다.

부모를 탓할 게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빠른 길이다.

알면서도 어느 순간 똑같이 남 탓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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