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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쟁이 시작됐다.

길냥이구하기 전쟁

by 김운용

새끼 고양이가 죽었다. 폭행의 후유증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엄마 뱃속에 있다 죽어서 세상에 나왔다.

'아무리 동물이지만 해도 너무했다. 무슨 인간들이 이리도 이기적이고 잔악 하단 말인가'


" 알겠습니다.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장수할머니 시골 반찬들도 많이 신세를 졌고 젊은 새댁이 밤늦게 길냥이를 돌보는 정성을 생각해서 그냥은 더 이상 못 있겠네요."


장수할머니가 건너편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비벼대며

" 노조 했으면 확 뒤집버려라."

기분이 업되었을 때 나온다는 경상도 사투린지 전라도 사투린지 경계가 모호한 말들을 뒤섞어 쏟아붓는다.


" 노조 경험은 이젠 지난 얘기고요. 노조라고 막가파 아닙니다. 잘 풀어가야지요."


맘 착한 젊은 캣맘이 밝게 웃는데 이왕 생명파에 가입할 거면 힘들어할 때 진작 할걸

살짝 미안했다.


지금부터 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엔 무력과 실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해 승부를 결정짓는 방법도 있지만 패배하지만 않으면서 끝내는 방법도 있다.


먼저 두 가지 전략 중 어떤 기조를 선택하느냐의 결정은

상대방 진영을 탐색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첫 번째 전투에서 기선을 제압해 생명파의 사기를 북돋아 기세를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전반적인

상황 파악과 함께 상대방 진영에 포진한 주요 인물에 대한 성분 분석이 필요했다.


같은 아파트를 살아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대다수다. 따라서 아파트 주민 사이에 공동체 의식을 바라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양측 진영에서 가장 완고하고 말발 세우는 인물을 설득하거나 제압해야 한다.


또 하나 원만한 해결을 바라는 인물들에 대한 접촉도 중요하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합의점을 찾아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사실 나도 양 진영 간 대립이 극명해져 가는 걸 보면서 무작정 손 놓고 관망만 하려 하진 않았다. 적당한 시점에 개입하려 했는데 새끼 고양이의 어이없는 죽음이 그 입장표명을 당긴 것뿐이다.


전쟁은 시작됐고 생명파의 일원이 되어 전략을 짜고는 있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퇴출파 진영에 포진된 절친한 지인들과의 관계가 전쟁이 종료된 이후에 어떻게 변할까 염려하지 않을 순 없는 일이라

그래서 그동안 어떤 입장도 표시하지 않고 애매한 포스를 유지해왔던 거였다.


그러나 더 이상 친분 때문에 애매한 처신을 하다가는 생명파 중 가장 강경한 입장을 가진 장수할머니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될 것이고 장수로부터 보내오는 특산물 선물 제공도 끊기게 될 판이다.


전쟁은 일단 시작하면 명분만 남는 법, 전쟁으로 인해 굶주리고 무고하게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현실은 전면 무시된다. 평화를 앞세우지만 일방의 굴종만 강요할 뿐이다. 모든 전쟁은 탐욕의 눈이 먼 침략이고 정의는 없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 미신고 입주자 길냥이를 두고 전개되고 있는 이 전쟁을 약육강식의 국제질서식 논리를 앞세운 어느 일방의 굴종만을 강요하면서 맹목적인 침략의 포화를 퍼붓는 방식으로 이끌어선 안된다.


국가 간 질서와 달리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지내야 하는 우리 아파트엔 진정으로 평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시작했으니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이동생 같은 친절한 통장님과 그 남편과도 인연을 끊어야 한다. 전쟁이란 피눈물도 없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

골육상쟁도 불사하는 골치 아픈 전쟁, 아! 무수한 번뇌가 밀려오지만 분쟁은 해결해야 하니

피아간 구성원들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생명파의 주요 인물은

장수할머니, 젊은 캣맘, 미대생 아가씨, 헤어샾 남자, 단지 내 카페 주인 부부 등 주로 현재 동물을 키우고 있어 동물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자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장수할머니 친구 1,2,3과 미대생 아가씨의 어머니 등 외곽을 지원할 예비 지원조직도 나름 갖추고 있다.


반면에 퇴출 파는 부녀회장을 역임했던 전직 부녀회장 트리오, 현직 입주자 대표, 통장 (동대표)등 아파트 단지 내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던 분들과 그 주변 인물들이 주축으로 규모나 조직 동원력에서 생명파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거기다가 그냥 나살고있는 아파트가 깨끗하고 조용했으면 하는 평범한 바람을 가진 다수 주민들도 심정적으론 퇴출파쪽에 기울고 있다.


아파트 환경이 좋고 깨끗해야 집값이 오른다는 주장을 앞세워 평범한 사람들의 부자 되고 싶은 본능을 유인해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등 전력 모든 면에서 생명파를 압도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유리한 입지와 전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전세를 어떻게 뒤집어버릴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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