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경상남도 함양군 대남리라는 동네에서 태어나 살다가 결혼한 뒤 자신을 임신을 한 상태로 전라북도 장수로 이사와 자기를 낳았으니 난 고향이 두 군데라는 재밌는 사고의 소유자다.
이 분은 기본적으로 기분파지만 한번 입장이 정해지면 다른 사고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완고하고 강경한 인물의 전형이다.
서울 사는 딸이 아이를 낳아 산후조리해준다는 이유로 올라와 아예 주저앉아버렸는데 지나치게 강경한 주장을 펴 퇴출파쪽으로부터 기피인물로 찍혔으며 입주민이 아니라는 자격시비까지 걸려 있다.
여하튼 자긴 딱히 장수로 급히 내려가야 할 이유도 없고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추호도 떠날 생각이 없다며 퇴출파쪽의 자격시비를 일축하고 있다.
남편이 혼자서 알아서 잘 먹고 잘 지낼 테니 염려 말고 딸네 집 가서 오래오래 살 다오라 그랬다며
" 그놈의 인간 나 없이 먼 짓거리 하려는지
뻔히 알지만 나도 시골구석 벗어나니 속이 다 시원 혀구먼. 사우도 집에 거의 없어요."
남편을 향해 신나게 욕을 해대고 볼일 끝난 인물로 취급하고 나서도
장수에 있는 남편한테 스마트폰을 걸어서
닦달을 한다.
" 인간아 씰데없는 짓거리하지 말고 문자 보낸 거나 잘 챙 기보 내라."
그렇게 올려 보낸 고추장 된장 장아찌 등 반찬 같은 걸 플라스틱 통에 담아 친한 사람들한테 조금씩이나마 아낌없이 나눠주는 후한 인심
으로 주민들 사이에 지지도 상당하다.
키도 훌쩍 크고 깡말라서 강퍅한 인상을 주는 데다가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지 않는데도 볼 때마다 농담이겠지만 내게 나 아직 젊다는 말을 유달리 강조한다.
늙어 보이는 게 좋은 사람은 없으니 그때마다 별수 없이 십 년은 젊어 보입니다 웃으며 농으로 답해 주었다.
이번 길냥이 사건이 집단적인 분쟁으로 비화된 계기도 결정적으로 장수할머니의 기분 파적 기질이 한몫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그렇게 우작스럽게 폭행을 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면서
길냥이를 때리는 여자를 쫓아 가 막대기를 빼앗으며 따졌더니 아줌마 고양이도 아닌데 왜 참견하냐. 아줌마는 우리 아파트 주민도 아니니까 끼어들지 말라며 무시하자 옥신각신하다가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분을 못 참은 고양이 폭행녀는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항의하다가 여의치 않자 동조자 확보를 위해 자신의 동대표를 앞세워 부녀회장과 입주자 대표를 설득해 결국 길냥이 퇴출을 요구하면서 주민들 간 분쟁으로 확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수할머니는 다분히 감정적인 기분이 작용해 발 벗고 나섰던 것인데 사태가 커지자 길냥이들의 피신처이자 캣맘들의 사랑방인 단지안 카페로 캣맘들을 찾아와 열변을 토하며 설득해 기어이 생명파를 조직해냈다.
열세인 조직의 특성상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선 일단 장수할머니 같은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인물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선도 제압하고 상대방과의 협상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추후 협상국면이 조성될 때를 대비해 적당한 선에서 조율하고 순화시킬 필요도 있다.
젊은 캣맘,
생명파의 이론가이자 논리적 사고를 갖춰 추후 협상이 열릴 경우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최고의 적임자다.
고양이와 개와 관련한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는 젊은 캣맘이다. 가장 헌신적으로 길냥이들을 돌봐주는 상냥하고 맘씨 착한 선량한 사람이다.
요즘은 특별히 결혼 적령기라 정하기 어려운 시대라서 늦은 나이라 할 순 없지만 결혼한 지 3년 차 된 30대 후반의 새댁이다.
아기가 아직 없어선지 약간은 우울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동물을 원래도 좋아했다는데 동물에 대한 애착이 심하면 임신이 어렵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며 아기 가질 때까지 적당히 관심을 끊어 버리라며 장수할머니는 자기 딸처럼 친근하게 채근해보지만 그 문제만 나오면 표정이 싸늘해진다.
새댁이란 호칭은 처음에 장수할머니가 새댁 새댁 하는 바람에 굳어져 다들 그렇게 부르게 됐다.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면서도 논리가 똑소리가 날 정도로 정연하다. 약간은 떨리는듯한 가늘고 여린 목소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그 논리 전개와 언어구사능력이 탁월해 연설 경험이 않은 내가 봐도 놀라 감탄을 할 정도다.
이번 길냥이 퇴출 문제로 비롯된 전쟁을 평화롭게 끝낼 수 있는 키를 가진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향후 그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물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새끼를 낳으려는 길냥이를 돌봐주다가 날씨가 쌀쌀해지자 길냥이들이 겨울에 많이 죽는다면서 겨울오기 전에 입양을 시켜주어야하니 그전에 따뜻한 집을 지어주자고 미대 출신 아가씨 모녀와 함께 팔을 걷어붙일 정도로 인정도 많다.
길냥이들의 집을 지어줄 때도 그렇고 눈병이 생겨 새끼 고양이들을 병원으로 옮길 때도 조그만 도움을 주자 선생님 같은 든든한 분이 필요하다며 나를 생명파에 가담시키려 애도 참 많이 썼다.
그때 내가 돕긴 했지만 새댁의 신속한 조치로 병원으로 옮겨진 길냥이들은 이내 건강해져서 좋은 집으로 입양되었는데 예쁘게
잘 지내고 있다며 카톡으로 길냥이 일가족의 근황을 친절하게 보내주기까지 했다.
푸들 미대생.
나이 들어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푸들을 늘 안고 다니는 미대생 아가씨가 있다.
눈매가 예뻐서 순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아주 적극적이고 대범하고 야무진 성격이다.
이 친구는 나이도 젊고 장수할머니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유형이라 완급을 조절시키지 않으면 분쟁을 장기전으로 치닫게 만들 요소가 다분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새댁과 아주 절친해서 새댁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른다는 것이다.
향후 의외로 장수할머니보다 푸들 미대생의 활약이 기대가 되는 것도 새댁과의 콤비네이션 때문이다.
푸들 미대생 어머니도 점잖고 전직 선생님 출신이라 안심이 되었다.
또 한 사람 30대 초반의 남자 헤어디자이너.
노랗게 물들인 긴 머리를 날리고 다녀 멋지고 머리숱이 한없이 부족한 내가 만날 때마다 부러워하며 풍성한 머리숱의 비결이 뭐냐며 부질없는 질문을 농삼아 던지고 했다.
전 모 씨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 철없이 연예인 꿈에 젖어 딥 퍼플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헤어스타일로 다닌 적도 있었지만 몹시도 부러웠다.
이 친구는 말수가 거의 없어 길냥이 퇴출 분쟁이 터진 후 몇 차례 가진 모임 때에도 옳습니다. 찬성입니다. 긍정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만 보여 성향을 쉽게 드러내지 않아서 헤어스타일로 화제를 꺼내 따로 불러 대화를 해보았더니 의외로 강경한 입장과 태도를 보였다.
동물 학대하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라며 격하게 흥분하며 노란 긴 머리를 연신 락커들 헤드뱅잉 하듯 흔들며 날린다.
난 기껏해야 세숫비누로 얼굴과 머리 구분 없이 세척하는 걸로 끝인데 남자 머리카락에서도 향기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대화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생각을 풍기게 하는 좋은 냄새만큼이나 순수한 성향의 헤어디자이너 이 친구도 소리 없이 강하다.
카페 주인 부부
이분들은 인상이 너무 선 해 보이고 점잖게 행동하는 편이라 모임 때 돌아가며 의견을 듣거나 말하게 되면 늘 마지막 순서에 합창하듯 같은 입장을 조율한 것처럼 길지도 않으면서도 조리 있게 표현을 한다.
남편과 같은 직장을 다니다 결혼한 사내커플이라는데 남편 퇴직할 때 같이 명예퇴직을 했다.
남편이 늘 같이 있다가 없으니 외로워서 그만두고는 남편하고 둘이서 목공가구공예도 배우러 다니고 바리스타도 배워 단지 안에 카페를 차렸다.
원래는 쌍문역 근처에서 커피숖을 했는데 장사가 잘 안돼 아내가 고생한다며 남편이 그냥 조용한 곳에 가서 글도 쓰고 소일거리 삼아 조그맣게 카페나 하자해서 우리 단지로 이사와 가게를 열었다.
의정부에 있는 기독교 계열 대학 행정실 직원으로 근무했는데 두 분 다 크리스천이다.
조용하고 합리적인 성품이고 남편은 나보다 두세 살 많고 부인은 나와 비슷한 나이다.
부인은 습작으로 시도 쓰고 있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라 호감이 갔다.
극단적이거나 한쪽으로 경도되지도 않고 합리적인 논리로 자신들의 주장을 늘 순서에 입각해 짧게 언급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