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전투는 온 단지안에 삽시간에 퍼졌다.
확인해보지않아 자세히는 알길없으나 젊은 새댁이 보내준 카톡을 보면 퇴출파는 물론 우리 생명파에 대한 시각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그러면서도 날 위로하려고 선생님 잘하셨어요. 생명파식구들은 다들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며 한번 더 카톡을 보내왔다.
입장이 무엇이든간에 주민들이 모여 쌈박질이나 해댔으니 여론이 좋을리가 없었다.
여론이란게 무섭기도 하지만 갈대와 같은거라는 건 수도 없이 겪어 잘안다.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의 일이 아니니 무관심하다가도 어쩌다 사고라도 한번 나면 전체 과정이나 원인등은 살펴보려하지않고 사고 그자체만 보고 비난들을 한다.
어째든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관리소장이 중재를 선다고 나선 일외에 양쪽의 입장은 변동이 없었다.
관리소장은 은행을 다녔는데 조용하고 점잖고 단지주변 청소도 손수하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주민들일에 잘못 개입하게될 경우 자신의 자리보전도 곤란해질수도 있어 지금껏 중립적인 스탠스를 취해왔다.
퇴직 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걸 아는 나 역시 같은 처지가 될 수 있기에 소장이 보여준 어정쩡한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까페로 찾아온 소장은 꼼꼼한 은행원출신답게 공동주택관리규정과 우리단지 규정을 찾아보았다는 걸 근거로 제시하며 고양이를 폭행하거나 학대해서도 안되지만 길냥이들을 보호하고 기를 경우 아파트환경미화와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때 단지안에서 고양이들을 기르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니 서로 불편함을 느끼지않게 처리하는게 좋겠다며 명확한 결론없는 얘기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관리소장의 중재안의 속뜻을 곰곰히 따져보면 고양이를 외부로 내보내고 공원근처와 까페 두군데만 길냥이들의 보호소를 만들어주자는 것인데 명분은 생명파쪽에 맞추고 실리는 퇴출파쪽손을 들어준 셈이었다.
고양이들이 아파트단지환경을 더럽힌다는 근거는 전혀없지만 딱히 소장을 상대로까지 따지고 싶지는 않은듯 까페에 모였던 생명파식구들은 답변은 없이 듣고만 있었다.
꽁지머리사내와의 몸싸움 이후 난 생명파 모임에 나가지않았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중하는게 좋을듯해서 의도적으로 참석하지않았다.
소장의 중재안이 양측에 건네진 후 한참은 별다른 충돌없이 조용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러 여전히 공원벤취를 찾았지만 꽁지머리사내를 공원벤취에서 그날 이후론 만날 수 없었다.
그를 만나게되면 정중하게 사과할 생각이었는데 모습을 볼수 없어 궁금했다.
감수성도 예민한데다 불의다 싶으면 물불 가리지않고 뒤돌아보는 일도 없이 혈기를 끓어올려 고난의 길을 자처했던 젊은 날,
아직도 난 뜨거운 그 기운이 남아있어 후회할때가 더러 있다.
퇴출파멤버 우리 동대표 아주머니와 일층
여자한테는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날 기다렸다가 사과를 했다.
" 선생님. 무서웠어요. 앞으론 점잖으신 분이 참으세요."
예 미안했습니다라며 웃으며 재활용 분류바구니를 들고 돌아섰지만 나이값도 못한 행동에 창피했다.
까페에도 잠시 들러 주인부부와 장수할머니한테도 죄송했다며 사과를 했다. 까페주인부부는 옅은 웃음만 띨뿐 말이 없고 장수할머니가 고유의 큰목소리리로
어따 아저씨 무섭데. 근데 욱하지마라. 큰일 난다. 우리야 아저씨편이지만 그런 사람 상대해갖고 손해본다. 속은 시원하더라.
격전 후 전선은 조용해지고 소강국면으로접어들었다.
길냥이들도 뭔가 특유의 후각으로 낌새를 느꼈는지 단지안 출입이 뜸해졌다.
병법을 보면 격렬한 전투 후 소강국면일때는
전력을 점검하고 나서 새로운 전술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로운 타협을 모색한다.
젊은 날 노동조합활동을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밤을 새워 찬바닥에 박스를 깔고앉아 연월차휴가 실시하라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걸고 구호도 외치고 노동가요도 부르면서 격렬하게 투쟁하다가도 하루라도 빨리 일터로 돌아가고자 싶은 생각에 잠정적으로 투쟁을 중단하고 협상을 요구하며 대화를 시도한다.
전쟁은 싫다. 이젠 다툼도 싫다. 서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배려해주었으면 하는데 직장에서도 아파트단지안에서도 출퇴근시 오고가는 전철안에서도 각각 전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