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진지한 얘기다만

아들에게 쓰는 편지17

by 김운용

아들아.

지난주 토요일엔 전태일 기념관을 다녀왔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하기로 사전에 약속하고 토요일 오전 11시 종로3가역에서 아빠 후배 세사람과 만났지.


종로 3가역 15번 출구로 나와서 탑골공원 방향으로 100m정도 걸어가다가 국일관을 끼고 좌회전해서 다시 200m 더 걸어가면 청계천변길 옆에 전태일기념관이 보인다.


입장하기전에 단체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마침 기념관 방문을 기다리던 다른 단체에서 온 일행들이 있어 그들에게 부탁해 몇장을 찍고는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1층 로비엔 기념관에서 평화시장까지 이동경로를 따라가며 바닥에 새길 전태일열사를 기리는 단체 또는 개인의 바램을 적은 수많은 동판이 진열돼 있더라.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전태일열사가 벤취에 앉아있어 약력을 자세히 보니 나와 생일이 같아 특별한 반가움에 잠시 옆에 앉아 그의 손도 잡아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니 벽에 걸린 스물세살 결코 짧지않은 인생을 그린 벽화와 사진, 그가 남긴 글들과 노동의 흔적을 통해 전태일 그가 누군지 생생하게 알수 있더라.


전태일.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였던 그는 수용소같이 좁고 어두운 공장에서 미싱재단 사 보조로 일하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며 평화시장 거리로 나와 집회를 열며 투쟁을 펼쳤다.


낮과 밤도 없이 일해야했고 일요일에도 쉬지도 못한채 전태일과 그의 동료들은 하루 18시간씩이나 계속해서 미싱판을 밟고 돌려야 했지.


흐리디 흐린 작은 백열등 전구아래 불빛이 너무 어두워 눈을 찡그리며 시야게바느질을 기워야 할 정도로 일하고도 겨우 하루 하숙비도 안되는 품값을 받았으니 그런 비참한 현실에 누군들 견딜수가 있었겠냐.


참다 못해 지금까진 바보같이 살아왔지만 이제 더는 바보같이 살지말자며 모임을 만들고 목소리를 내보기로 비장한 각오를 다졌지.


노동청이며 청와대까지 아무리 호소를 해본들 힘있는 사람들은 어는 누구도 전태일과 친구들의 눈물어린 절절한 이야기들을 땅바닥에 기어가는 개미소리만큼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는구나.




1970년 11월 13일

참고 참아왔던 설움과 분노의 머리띠를 두른 전태일은 마침내 결심을 했지.


자신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할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다하겠다며 앞장서 동료들과 평화시장 거리로 뛰쳐나와 행진을 시작했다.


"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


전태일과 그의 동지들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자 경찰들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그들의 평화로운 집회를 짓밟았다.


머리가 깨지고 피까지 흘리며 끌려가는 동지들을 보며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불길에 휩싸여 가면서도 그는 외쳤다.


"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쉬고 싶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동지들 내 죽음을 잊지말아달라

며 어머님께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의 어머니.

자식을 먼저 보낸 고통을 온 몸으로 지고 아들이 죽은 이후 살아남은 아들의 동지들과 힘을 모아 청계피복노동조합을 만들어냈다.


사랑하는 아들 전태일 한사람이 아닌 수많은 아들들이 생존을 위해 공장을 점령하고 옥탑에 올라가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수십미터 꼭대기 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투쟁의 깃발을 흔들때 어머니는 어느새 그곳에서 남겨진 수많은 전태일들을 향해 소리쳐 외쳤다.


죽지말라고 살아야 한다. 고.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전시실을 나서려다 전시실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과 통성명도 하며 뒷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동작구 문화센터에서 단체로 방문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관람을 다하고 기념품을 받으려 줄을 서고 있더라.


아이들만 준다는 기념품을 나도 정신연령이 저 아이들과 거의 같습니다 했더니 전시실 담당 직원이 아빠도 비닐봉투에 하나 담아 주더라.


아빠가 최근에 갑자기 허리가 아팠다 좋아졌다해서 일행보다 먼저 1층으로 내려와 벤취에 앉아서 전시관을 돌며 찍어둔 사진들을 꺼내보는데 입구에서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이 같은 위치인데도 각도를 조금씩 달리해가며 여러장이나 되더라. 첨보는 데 성의가 고맙지않냐.


마침 후배들도 관람을 끝내고 함께 밖으로 나오니 아까 기념관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어준 그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아이들만 준다는 기념품을 우리들의 단체사진을 여러 장 찍어준 답례로 주었지.


전태일 그가 불꽃이 되어 산화한 11월 13일, 전태일열사의 뜻을 기리는 집회를 그래서 해마다 그날에 진행하는 거란다.


아들아.

오늘 편지는 무겁고 진지한 얘기였다만 사람답게 살고싶은 건 모든 사람들의 꿈이거늘 아직 세상이 평등하지는 못한 것 같아 곧 사회로 나올 너에게 한번쯤 알려주고 싶었다.


또 편지쓰마.


2021년 10월 5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