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참외꽃 누군가 밟았구나

by 김운용


아침 출근길 그친줄 알고 우산도 없이 무심코 나왔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아침에는 비온다는 말 없었는데 일기예보 정말 맞는게 없다.


어째든 이왕 내려왔는데 다시 집에 올라가 우산을 가져오기도 번거롭고 손에 들고 다 니는 것도 귀찮아 오늘처럼 어정쩡하게 내리는 비는 그동안에도 조금 젖더라도 빨리 걷는 걸로 해결해 왔으니 그냥 걷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전철역까지는 백여미터, 인도 를 따라 쭉 이어진 길옆에는 풀꽃들이 잎사 귀마다 동그란 빗방울들을 자기들 몸위에 올려 놓았다. 아침해가 구름 에 가려 빛이 비추지 않는데도 반짝거렸다.


노란들국화, 코스모스, 패랭이꽃, 나팔꽃, 분홍색 분꽃, 맨드라미, 개망초 모두 다 비에 젖어 살짝들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왠일인 지 개똥참외꽃이 보이지 않았다.


보도블록 틈새를 뚫고 올라온게 놀라워서

어제도 그제도 혹시나 밟히지는 않았을까 눈여겨 봤는데 오늘 아침엔 보이질 않다.


발걸음을 멈추고 쓸어 모아놓은 낙엽더미를 들추니 그 아래 쓰러져 있었다.



밤새 누군가의 발길에 밟혔는지 꽃은 간데없고 잎사귀마저 다 쓰러져 조그맣고 가녀린 몸을 단지 뿌리의 힘만으로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조심만했다면 밟지않고도 여유있게 다닐수 있었을텐데 굳이 밟아야 했는지 누군지 야속하다. 일부러야 아니겠지만 누군가 밟고 지나간 발자국 흔적이 보였다.


가로등 바로 아래 환한 곳이라 꽃피울 터로 잘 잡았다 싶었는데 무참하게 짓뭉게져 다시 살아날 거 같아 보이지 않는다.


참외꽃 노란꽃잎이 예뻐서 온전히 꽃피길 바랬는데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아 천한 것이라고 막 대하고 무시했는가 보다.


개똥참외라 붙여진 이름만으로도 서러울진대 함부로 밟혀 이제 올해는 그 자리에 더는 꽃피지 않을텐데 쓰러진 줄기를 흙을 한줌 모아다 덮어주었지만 다시 살아 날지는 의문이다.



본래 이름은 그냥 참외꽃이고 꽃말도 성스러운 사랑이라는데 만약에 처음 개똥이라 쓸데없는 수식을 붙인 사람이 참외꽃이 예쁘니까 시기가 나서 천한 이름을 일부러 갖다 붙인 거라면 참외꽃한테는 오랫동안 지워지지않을 가혹한 운명을 지워준 것이다.


호박꽃하고 비교하면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이 비슷해 다들 작은 호박꽃인줄 오해하고 흔하다 생각해서 무관심해버린 거 까지야 이해할 수 있지만 참외꽃이 받을 상처를 고려했다면 기나긴 세월 모질게 살아야 할 운명을 지운 일은 너무 가혹했다.


여름 칠팔월에 노랗게 환하게 꽃피고 난 뒤에 줄무늬 참외가 줄줄이 열려

화려한 시절엔 다들 달콤하고 시원한 맛에 참외를 찾았으면서 노오란 참외꽃이 변해 참외가 만들어진 것임은 까맣게 잊어버렸나 보다.


비가 그치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게되면 개똥참외꽃, 아니 참외꽃이 되살아 나길 기원해본다.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감수성이 살아나 요즘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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