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여 땀흘려가며 산을 오르느라 헉헉 숨이 가빠 올라 헤매는 내 모습 위로 한번의 날개짓 만으로도 이골 저골짝을 훌쩍훌쩍 날아 오르는게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것말고도 쟤들은 무슨 이유로 하늘을 날고 또 열나게 날개짓하며 살아가는 까닭은 뭔지 자세히 알고 싶었다.
새들의 뇌가 작아서 인간들처럼 복잡한 계산을 할 능력이 딸리니 아무 생각없이 고민도 없이 닥치는대로 대충 단순하게 사는 건지 팩트도 궁금했고 확인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겐 윤리니 도덕이니 책임이니 법규니 통제와 규제로 만든 철조망이 빈틈이 없이 지나칠 정도로 촘촘하게 처져 있어 답답하고 부자유스럽게 느낄때가 많았다.
인간들이 정한 규범과 정의가 시시각각 다르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로이 변신하는걸 보며 더더욱 혼란스럽고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그런 인간들이 정의와 규범은 더 강조하며 통제하 려드니 그 위선과 기만이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한때 그 복마전같은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나름 정 의와 진실을 선동하며 철저히 절제된 삶을 추구하 고 실천하면서 고군분투랄까 악전고투랄까 정말 이지 피터지게 살았었다.
이젠 그 자리에 더이상 머물 수도 없고 그럴 미련도 없고 열의도 식어 의도적으로 거릴두며 잊고 살고 있지만 현실의 땅에 걸쳐있으니 눈감고 있지않는 한 아직 조금은 식지않은 피가 끓어오르려 한다. 가끔은.
그래서 뒤늦게 산을 찾았고 좋은 사람들만을 만나며 실속도 따지지않고 맘 헤프게 지내면서 살고 있는데 더러는 오해를 사고 그로인해 상처도 받게 되지만그렇게 사는게 차라리 육신이 편해서 앞으 로도 전향없이 그리 살려고 한다.
그 전장터에서 보고 느낀,
편견과 선입견, 왜곡과 이기심, 기만과 위선 이 모두가 인간만이 소지한 욕심의 도구들인데 새들에겐 그런 굴절된 욕심이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관찰만으로 보면.
글을 쓸때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 포장하지 않 고 꾸미지않고 그대로 표현하고 묘사하고 싶은데,
생각한 바를 일상적인 언어와 표현방법으로 구사하고 싶은데, 그게 자유롭지 못해 글쓰기도 어렵고 생각도 안나고 재미도 없고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전 내가 쓴 글의 대부분은 일상 언어요 완전 구어체였다.
정치적으론 아나키즘에 가깝고 정신이론학적인면 에선 빌헬름 라이히와 통한다. 존경하는 이상 김해 경선생과도 경향이 비슷하다.
그의 글 오감도에 나오는 까마귀를 관찰하려 산에 갈때마다 인적이 드문 바위위나 절벽을 아슬아슬한 장면을 만들어가며 사진을 찍으려시도해보지만 까치와 달리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까마귀와는 제대로 가까이 마주해보질 못했다.
그저 먼 발치에서 날개짓만 쳐다보고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 까르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녀석의 울음소리만 듣고는 헤어졌는데 언젠가 한번은 꼭 가까이서 제대로 조우하고 싶다.
새에 관한 일반론에 근거하면 까마귀는 새들의
지능 테스트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는 머리좋은 새란다.
꺼칠한 나무가지를 부드럽게 다듬을 줄 알고 사람
얼굴의 특징을 인식해 누군지를 구별하는 능력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나쁜 인상을 주었던 사람은 기억해두었다가 소리로 식별해 동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까지 있다고 하니 매우 영특한 녀석이다. 누가 이런 까마귀를 보고 새○○리라고 부르는가 말이다.
원래 우리조상들은 까마귀를 태양의 상징으로 여겼다. 고구려신화에 보면 다리가 세 개 달린 까마 귀 삼족오가 나오는데 태양속에 사는 신령한 존재로 여겨왔다.
불길한 예고를 했다며 흉조로 매김한건 인간들의 주관적인 욕심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편견의 사례 이다.
까마귀는 일부일처(?)라 하나 평생동안 짝짓기를 한다하니 종족본능에 충실한 것이겠지만 자유새 기질도 농후한 편이다. 새끼에 대해서도 애초에 둥지를 함께 튼 암수가 둥지도 지키고 새끼 먹이도 주며 돌본다고 한다.
이렇듯 부모의 애뜻한 정을 보고 자란 까마귀 새끼들은 다 자란후에도 멀리 떠나지 않고 어미들 가까이에 머물며 먹이를 물어다 정성껏 돌본다고 해서 반포지효(反哺之孝)란 고사성어도 생긴 것이다.
까마귀가 말도 하며 영특한 새라는 것임을 많은 문 학작품에서도 읽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카톨릭권 력의 압제에 항거한 고든의 봉기를 그린 찰스 디킨스의 역사소설 바나비 러지에 나오는 그립이란 이 름의 까마귀와 애드가 알렌 포의 시에 나오는 죽은 연인을 향한 환상에 나타난 까마귀가 주인공이다.
흔히 몸전체가 새까맣다보니 씻지 않아서 때가많고 지저분한 사람을 '까마귀가 형님하자고 하겠다.'라 는' 속담때문에 까마귀를 더럽게 여기지만 사실은 까마귀 는 깨끗하고 더럽지않은 정감가는 친구다.
새. 자유. 글.
오늘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제대로 연결이나 됐는지 쓰고 난 뒤 다시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사진으로 보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