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치악산밑에 있는 허름한 식당안채입니다. 두부로 만든 음식만 파는데 맛있습니다. 대문앞에 작은글씨로 고향집이라고 써있습니다.아빠 어제 할머니 산소에 갔다왔다. 효자도 아니지 만 서운해 하시지 않겠냐. 추석때 성묘도 못했으니 까.
누가 다녀갔는지 화병위에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흰 국화와 붉은 장미꽃들이 새로 꽂혀 있더라. 아직 시 들지 않았던데 아마 고모들이 다녀 가셨나 보더라.
살아 계실때 술이라곤 단 한모금도 못 드셨지만 소 주 한병하고 단감 귤 한봉지씩 사가지고 상석에 올 리고 엎드려 절을 올렸다.
술한잔 올리고 산소 주변을 둘러보니 잡초들이 무 성하게 자라 맨손으로 다 뽑았다.
돌아가신 다음에 무덤주변에 잡초들 뽑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할머니 속을 너무 아프게 해 드 려 그거라도 하고 가야 죄송함을 풀거 같아서 말야.
돌아가신지 일년 좀 더 지났지만 아주 오래된 거 같 이 생각이 들어 뵙고 싶어지더구나.
아빠는 큰아버지들처럼 정깊고 다정한 아들도 아 니었으니까 할머니와의 따뜻한 기억도 사실 별로 없다.
오로지 근심 걱정만 안겨드렸을 뿐이라 들으시진 못해도 한마디는 해야하는데 해드릴 말이 생각나지 않아 할머니가 평소 좋아하셨던 남인수라는 오래된 가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을 틀어드렸다.
할머니 아파트에 혼자 계실 때 어쩌다 들르면 효도 랍시고 다운받아 스마트폰에 저장했다가 들려 드렸 었지.
귀가 어두우셔서 잘못들어 보청기빼고 이어폰을 끼 워드렸더니 웃으시며 따라 부르셨지.
어제 북한강의 모습입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강물을 덮어 좋은 풍경이라 가까이 가 찍었으면 더 좋은 풍경사진을 찍었을텐데 모처럼 정장을 한터라 멀리서 찰칵.
너도 알다시피 할머니 노래 엄청 못하시쟎냐. 그래 도 기억력이 워낙 좋으셔서 2절까지 박자며 노랫말 단한 군데도 틀리지 않고 다 따라 부르시곤 했었지.
할머니도 아빠나 너처럼 젊은 날이 있었으니 꿈도 낭만적인 감성도 있으셨겠지. 잘생긴 영화배우나 가수들에 대한 동경과 연모의 정도 간직하면서 순 정도 품고.
남인수란 분이 진짜 꽃미남이거든. 노래도 아주 잘 하고 1950년대 한 시대를 풍미했지. 지금으로 치 자면 누구라 해야하나. 요즘 가수나 배우로 예를 들 려니 아는 친구들이 없어 잘 생각은 안난다만 최고 의 멀티플레이어라나 할까 암튼 그렇다.
할머니 보고 싶지 않냐.
너는 할머니손에서 자랐으니 할머니와의 추억이 더러는 생각 날거다. 미군부대 철망 울타리밑 자투 리땅에 심은 호박을 따러 가신다며 널 유모차에 태 우고 오시는 걸 아빠가 퇴근하다 보고는 아빠차에 태웠었지.
그때가 니가 서너살쯤 됐을거니까 이십년 전쯤 되 는구나. 동네 할머니들이 손주가 인물이 좋다고 다 들 칭찬하는데 꼭 딴지거는 할머니가 한 분이 계셨 는데 그일로 그 할머니랑 다투시고는 한동안 말도 안 하셨었었지. 그뒤 아빠가 할머니들 모인 자리에 아 이스크림사다가 나눠드리며 화해시켜 드렸었거든.
아빠하고 지낸 시간이 많지 않았고 아들 가운데 가장 속을 많이 아프게 해드려 할머니가 너한테 특히 정을 많이 주셨던 거다.
봄에 할머니 산소에 갈때마다 노란나비 두 마리가 늘 산소 주변을 멀리도 날아가지 않고 머물렀었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잠시 나비로 환생해 아들을 보 기라도 하시려는 것 처럼 말이다.
할머니 시대엔 모든 어머니 아내 딸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기구한 운명, 한많은 여자의 일생을 보 냈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서 니가 엄마한테 느끼는 감정과 아빠가 할머니한테 느끼는 감정엔 차이가 있단다.
덧없이 맘만 좋은 남편이 전쟁터에서 당한 상처로 불구가 되어 젊은 여인이 홀로 짊어져야했던 고난 과 한, 그걸 자식들 특히나 아들들에게서 풀어보시 려고 무진 애를 쓰셨는데.
지난 토요일 대둔산에 갔다가 내려오는길에 감이 매달려있어 한상자 샀습니다.
아들아.
넌 너의 엄마한테 다정하게 얘기도 많이 하고 사연 도 추억도 많이 만들어라.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여자, 엄마에겐 아직 제약이 많이 따른단다.
내게서 부족한 거 기대했던 걸 조금이나마 너를 통해 위로를 받고 싶어할거다.
아빠도 할머니 산소에서 느낀게 많다.
다음에 산소에 같이 가자.
할머니가 보고 싶다. 오늘.
어머니. 마흔 여덟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