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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담배

by 김운용 Nov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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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선지는 속초지만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일반도로 로 차를 몰았다.


속초나 설악산을 가려할때 시원하게 쭉뻗은 고속도 로를 타지않고 일반 지방도로로 방향을 잡을 경우 인제쯤 가면 소양강 물길을 따라 곳곳에 구불구불 굽은 길을 이십여분 가까이나 운전해야 한다.


군부대가 많은 지역 특성때문들이라고 하지만 소양 댐이 생기고 나서 도로와 마을이 물에 잠겨버려 부 득불 산허리를 잘라 도로를 만들다보니 굽이굽이 호수면을 따라 급커브구역이 많아서 운전하기에 피곤하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길이다.


그렇지만 산과 호수가 절경이라 그 이유 때문에 국 도를 일부러 택한 것이다.


춘천에서 인제까지 소양강 백오십리길을 오가는 유 람선이 서는 선착장을 지나 삼팔선이 있었던 자리 에 강을 가로질러 놓아진 다리입구에 잠시 차를 정 차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여기서 보면 해질 무렵 코스모스꽃이 한들거리는 가을 소양강 노을빛이 너무나 좋다. 사진도 찍고 두시간 가까이 운전해 굳어진 근육도 풀려고 차문 을 열고 나와 담배도 한개피 피워 물었다.


강건너를 바라다보니 삼십년도 더 오래된 옛일이 떠올랐다.


공무상 산골 외딴 집을 방문했다가 한 노인을 만났 었다.


출장갈 채비를 마치고 면사무소 마당으로 나와 80 cc오토바이 뒷좌석에 서류봉투를 매달고는 강건너 저 앞에 보이는 외딴 집을 찾아가기위해 소양강 강변을 달려갔었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주로 출장을 담당하지만 사 무실에만 있기 답답해서 그날은 교대로 내가 나가 기로 한 날이다.


여전히 구불구불하긴 한데 삼십년 전보다는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졌으나 당시 그길은 특히 오토바이운전은  특별한 코너링기술을 요하는 위험한 길이었다.


그나마 아스팔트길까지는 그런대로 오토바이로도 이동이 가능하지만 댐이 생겨 고립이된 마을 외딴 으로 가려면 도로에서 계곡을 따라 옆으로 난 울 불퉁한 비포장 길을 올라가야 했다.


거기서부터 오토바이의 능력은 자전거만도못하다. 더이상 오토바이로는 올라갈수 없는 길이라 오토바 이를 도중에 세워놓고  걸어서 산길로 이십여분 가 이 올라갔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거의 골짜기 끝에 다다르니 올라오면서는 보이지 않던 작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 다 왔구나."


마당에 들어서니 함석판위에 스레트로 덧된 지붕의 처마가 낮은 흙벽집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어른키보다 두어뺨 정도 밖에는 안되는 처마밑에서 작고 등굽은 노인이 짚으로 만든 멍석을 펼쳐놓고 콩과 깨를 털며 가을걷이를 하고 있었다.


낯선 외부인의 방문에도 노인은 놀라는 기색하나없 이 가뜩이나 굽은 등을 굽혀가며 반갑게 인사를 받 주었다.


노인의 얼굴엔 셀수 없을 만큼의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는데 마주하자마자  얼굴한번 보지못한 내 할 버지 생각이 났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노인의 머리위에 콩깍지 조각들 이 얹혀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노인의 머리에 앉 은 콩깍지덤불들을 떼어 주었다.


" 할아버지! 콩을 많이 심으셨나봐요. "


비탈진 밭에선 작물이라곤 콩밖에 없어요 라며 노인은 손가락으로 집 옆으로 길게 이어진 밭을 가리켰다.

농사일을 많이 해보지않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경사가 심해 비가 내리면 토사가 흘러내려 제대로 농작물을 경작하기 어려워보였다.


" 면에서 나왔나요."

집 뒤편에서 바구니를 들고 나오던 할머니가 의아 한 표정으로 물었다.


순간 뭐라 답해야할지 머뭇대다가 아! 예. 그냥 얼버무리고는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이서만 사시보죠. 이미 알고 왔으면서도 실없는 말을 내뱉었다.


" 할멈이 뭘 안다고. 외딴데 까지 면에서 오셨는데 탁배기나 한사발 드려요."


산밑에 오토바이를 세워놓아서 술 먹으면 운전을 못한다며 사양을 했더니 노인은 처마끝에 달아놓은 마른 산나물꾸러미를 지게작대기를 이용해 꺼내 신문지에 싸주었다.


할머니도 소주병에 담은 들깨 한병을 들고 나와 할아버지한테 건네면서 들기름이 아주 고시다며 가져가시라며 웃는데 앞니가 하나도 보이지않았 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이 외딴산골짜기까지 오게된 이유는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하기싫었다.


그냥 아프셔서 병원에 가실때 꼭 가져가시라며 의 료보험증만 마루턱에 슬그머니 놓아두고 가보겠습 다 하며 돌아서려는데 이거 가져가라며 산나물을 싼 신문뭉치와 들기름병을 손에 쥐어 주었다.


노인은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담배를 빼어무는 데 필터도 없는 한갑에 오십원짜리 싸구려 담배 새마을이다.


건강하시라는 인삿말만 남기고 서둘러 집을 나오 는데


"내평생 아파도 병원한번 가본적도 없고 갈수도 없어요. 이 산간벽지에 사는 늙은이 이렇게 살다 가야지."


돌아보니 길게 내뿜은 담배연기사이로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슬프게 보였다.


오토바이를 세워둔 골짜기입구까지 산길을 내려오 는 동안 내내 맘이 안좋았다. 산길아래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렸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넓직 한 바위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개피 빼물었는데 노인이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내가 피우는 담배는 거북선이라고 한갑에 250원이 니 노인이 피우던 새마을담배보다 다섯배나 비싼 고급 담배다.


오토바이가 있는위치까지 내려오니해가 저물고 있 었다.


며칠후 면사무소 앞 시장통에서 오일장이 서는 날 인데 노인이 민원대앞에 서있었다.


신주단지모시듯 보자기안에 고이 쌓은 의료보험증  꺼내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살만큼 산 우리같은 늙은이들한테는 필 요없는 것 같아서 돌려주러 왔 다는 것이다.


일년치 의료보험료 제가 다 내드렸으니 그냥 쓰시 면 된다며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주자 그제서야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돌아서 가버렸다.


마침 그날이 장날이라 민원인들이 북적거려 정신이 없다가 조금 한가해져 담배한대 피우려 일어서는데 책상머리에 한갑에 백원하는 환희 담배 한상자 (10갑)가 놓여져 있었다.


영감님이 두고 간거라는 걸 직감하고 바로 돌려주 려고 버스종점까지 뛰어가보니 노인이 탄 버스는 떠나 버렸다.


삼십삼년이나 지난 일인데 오늘 소양강변에 서니 노인 주름깊은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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