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으로 오리, 청둥오리의 습성은 매우 활동적이다. 하루 종일 움직이는데 그 이동거리만해도 하루 100km가량이나 된다. 천적 이외엔 경계심도 별로 표시하질 않아 낯선 조류들이나 심지어 사람들과도 곁을 두지 않고 잘어울린다.
특히 수컷은 활동성이 더욱 심한데 짝짓기 계절이 오면 무례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바야흐로 짝짓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나 역시 피 끓는 청춘의 나이라 사랑하는 짝을 향해 열애 중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구애중이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살까 관심을 끌까 궁리에 궁리를 하고 있다. 물고기 사냥을 나가라는 아버지의 성화도 못들은 체하고 친구 오리들의 나들이 요구와 가보지 않은 강으로의 탐험도 뿌리친 채 오직 그녀를 향한 연모의 불을 지피는 데에만 몰입해 다른 일엔 아예 관심조차 없다.
그녀의 이름은 오순이다.
올해 나이 3살, 우리 오리들의 수명이 10~20년이니 한창 꽃 피울 청춘인데 이미 아이가 있다.
그녀는 달빛 강 상류에 오래전부터 터를 잡은 텃새화 된 오리 집단 서식지의 완고한 지도자인 덕장의 손녀 오리다.
조용하고 얌전한 듯하면서도 좌충우돌 활발하게 영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 오리들과도 잘 어울리고 일부 수컷 오리들과는 물고기 사냥도 같이 다니는 등 의외로 적극적인 성향도 보인다.
아직 그녀에게 온전히 내 맘을 전달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더욱 애가 타고 가슴이 답답해져만 가 입맛도 없다. 물고기는 물론 지렁이 개구리 못 먹는 게 없을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과시해 체격도 체력도 다른 오리들에 비해 건장한 편인데 통 식욕이 나질 않는다.
오리들이 싫어하는 매미나 사마귀 같은 곤충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눈에 들어온 그녀 생각에 요즘 통 입맛도 없고 잠 못 드는 밤으로 인해 몰라보게 수척해져 버렸다.
만물이 푸르고 생기를 찾는 애정을 꽃피울 사월의 어느 날인가 난 그녀에게 치근대며 무례한 행동을 하는 집오리를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가 부리를 상해가면서 구해준 적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부터 그녀를 연모하게 되었다.
그전엔 이웃하고 살아도 무심히 지나치곤 했는데 집오리를 쫒아내 주었더니 그녀는 은밀하게 날 불러내 도움을 줘서 고맙다며 두세 번이나 물노리를 가자고 했다.
그녀의 제안에 동행하며 같이 수영도 하고 강변 건너편에 있는 미꾸라지가 많이 사는 수초더미까지 가서 맛있는 영양식도 즐기며 어울리다 보니 특별한 이유나 계기도 없이 그녀에게 빠져버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수초 숲에 자주 간다고 했다. 수초엔 수달이나 고양이들도 있어 위험하긴 해도 물고기도 많고 물도 깨끗해 오리들의 서식처로 삼아도 좋은 입지인 곳이다.
그렇게 가까워지면서 그녀의 집이 갑자기 내린 비로 무너져버려 우리 둥지의 피해복구는 뒤로 미룬 채 그녀의 둥지를 복구하는 일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억새 잎과 수초들을 물어다 깨끗하게 단장도 하고 수리도 해 포근하고 안전한 둥지를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새끼 작은 아기오리가 있어 특별히 달빛 강에선 구하기 힘든 재료인 곱고 널따란 연잎도 구해다 바닥에 깔아주었더니 그녀는
자신이 자주 가는 수초 숲에 가 내가 좋아하는 미꾸라지 영양식을 챙겨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냉담해졌다.
웬일인지 나의 친절과 접근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이유를 몰라 냉가슴을 앓으며 그녀 주변을 조금 떨어져 서성대 보지만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지나쳐버린다.
일단은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가까이 가지 않았지만 이유가 궁금해 그녀의 친구이자 북쪽 습지에서 이주해온 도리라는 이름의 오리에게 찾아갔지만 그녀 얘길 한마디도 물어보지도 못하고 어슬렁거리다 돌아왔다.
오늘도 그녀를 보기 위해 물고기 사냥을 나가자는 아버지의 성화를 피해 서둘러 둥지를 빠져나와 그녀의 둥지로 향하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그녀의 아기 작은 오리가 웬 수컷 오리와 헤엄을 치며 물장난을 하고 있는데 조금 뒤에서 그녀 오순이가 뒤따르고 있었다.
근데 수컷 오리가 어디선가 자주 본 듯이낯이 많이 익었다.
넓게 트인 강한가운데라 피할 수도 없어 별수 없이 다가가 마주치게 됐는데 그는 다름 아닌 달빛 강 북쪽 상류에 서식하는 덕수란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