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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들어도 좋은 노래
한계령
정덕수 시인의 연시 한계령에서를 읽고
by
김운용
Nov 15. 2021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메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한사 정덕수시인의 연시 한계령에서1」
정덕수시인은 어린 시절 지독히도 가난했었나 보다. 가난과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어머니가 돌을 갓 지난 어린딸을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
가난을 견디기 어려웠던 십대의 어린 정덕수는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과 철공소를 전전하며 고된 일을 하다 고향이 그리워 한계령을 찾았다가 자신의 고단한 세상살이를 노래하듯 한계령이란 시를 썼다.
자신과 같은 동향의 가수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씨에게 자신의 시를 주었고 하덕규씨는 그시에 곡을 붙여 1985년에 양희은씨가 자신의 노래로 발표했다.
정덕수시인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도 하지 않았고 순수하게 그냥 시만을 써왔으며 물질적인 계산도 할 줄 몰라 한계령이란 노래의 노랫말을 만든 원작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저작권료를 받을 수 없었다.
지인들이 나서서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2007년이 되어서야 노래 한계령의 작사자로서의 저작권을 비로소 인정받았다.
현재 정덕수시인은 한계령근처에서 산장을
지키며 시를 쓰고 있다.
한계령은 설악산과 점봉산 사이에 있다. 한계령 아니 한계산에서 사방을 굽어보면 설악산의 모든 절경이 바로 앞에 펼쳐지고 저아래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서울에서 양양쪽 동해바다를 가려면 한계령을 넘어야한다.
한계령에서 부터 북한강의 또하나 물줄기인 소양강이 시작한다.
1989년 가을 지금쯤이다.
나 역시 정덕수시인과 결은 다르지만 내 인생 고단한 길을 향해 첫발을 막 내딛기 시작했을때 였다.
그때 한계령이란 노래를 들려준 사람이 있었다. 아주 썩 잘 부르는 노래실력은 아니었지만 성의를 다해가며
'지친 내어깨를 떠미네'
끝까지 불
러 주었
다.
공부는 지독하게도 하기 싫어했는데 왜 이렇게 기억은 잘 떠오르는 건지 모를 일이다.
아마 간절했었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30여년이 더 지나간 오랜 시간인데도 지금도 또렷
하게 기억이 난다.
그녀와 나 우리들의 고향이기도 한 한계령 아니 한계산, 공교롭게도 그 산의 높이가 1004m이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한참을 올라가다보면 허리를 감고 도는 구름낀 한계산을
오늘 다시 보고싶다.
한계령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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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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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있는데 종결을 하게 될는지 알수없다. 그래도 다들 휴식에 젖는 시간에 난 소설을 쓸거다 나만의 탈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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