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솜씨 - 엄마의 생일상
아들에게 쓰는 편지24
지금 새벽 다섯시 반이다.
내일이 엄마 생일인데, 몇일 고민되더라. 새삼스레 이벤트니 외식이니 갑자기 준비하려니까 속보이고 해서 말야.
인터넷에 아내의 생일이란 제목으로 검색해보니 아빠나이에 걸맞는 내용은 참고할만한 것도 별로 없더라.
절친한 아빠 직장 동료 황아저씨 알지. 그 친구한테
" 몇일 있으면 애들엄마 생일이다. 뭘 해야 하냐? "
물으니 자긴 생일날 서해안 섬에 있는 팬션가서 생일파티를 했다면서 자랑만 할뿐 도움이 될만한 말도 안해주더라.
그러면서 자기는 생일날 저녁에 아내의 발을 씻어주었다며 당신도 한번 해보라는데
그건 엄마도 성격상 질색할거고 아빠도 어색하고 낯뜨거워서 못하겠더라.
고민을 해봐도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않아 부족하나마 아빠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생일상을 차리기로 했다.
부엌이나 싱크대에 들락거리는걸 질색하시던 완고한 할머니덕분에 아빠는 음식만드는 일에는 영 자신이 없다.
근데 어쩌냐. 인터넷검색해 간편 레시피보고 없는 솜씨라도 발휘해 성의를 보여야 하지않겠냐.
일단 생일상 차릴 목록은 대략 정했다. 생일날엔 장수를 바라며 국수를 먹는데 아빠는 국수대신 잡채를 계획하고 있다.
생일상 구색을 맞추려면 호박, 고추전, 달걀말이, 오이무침, 미역국, 고등어구이, 불고기등 거창하게 준비하려 한다만 재료 망가뜨릴까봐 살짝 염려도 된다.
생일케익은 어제 미리 주문해놨고 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미역국끓일 준비 해놓고 있다.
넌 동영상으로 축하메세지 낼 아침에 엄마한테 보내라.
( 다음날 편지 이어서 )
새벽 2시에 일어나서 미역국 끓이고 고추전 호박전붙이고 오이무침에다 불고기 볶았다. 불고기재료는 양념까지 마트에 있더라. 별거 아니더라.
미리 주문한 케익에 음식 간단하게 차려서 케익도 자르고 생일축하행사를 마쳤다.
생일상이 부실한 점은 앞으로 개선하겠다며 농을 섞어 분위기전환을 위해 말했더니 엄만 특별한 반응이 없더라.
원래 조용하고 입무거운 엄마니까 이해한다. 속으론 나쁘지않았을 걸 아빠는 알지. 엄마와 같이 산 세월이 삼십년이 넘는데 왜 모르겠냐만 좀 서운하다.
어째든 다음에 너 집에 오면 돼지제국 가자.
2021년 6월 하짓날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