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도 눈 많이 왔다며?
뉴스를 보니 눈이 꽤 내렸다던데 눈길 다닐 때 조심해라.
아빠 어렸을때 눈하면 아빠 고향 강원도를 연상할 만큼 많이 내렸었는데 언제부턴가는 호남 충청 서해안지방에 폭설주의보가 자주내리고 첫눈 소식도 그쪽이 더 빠른걸 보면 기후문제가 심각하긴 한가보다.
멸종하는 동식물도 늘어가고 점차 사막화되어가는 지구온난화를 우려해 기후협약을 거론하면서도 거대자본의 손이 작용해 대책이 쉽게 만들어지지 못하는가 보더라.
겨울이 와도 눈내리는 날이 적어졌고 이젠 좀처럼 폭설을 보기가 힘들다. 눈많이 오면 불편한 점도 있지만 눈이 제때 적당하게 내려야 식물의 생식에도 도움을 주는거다. 설날 전후 눈이 내리는 걸 보고 할아버지가 올해 농사는 풍년이 되려나보다 하셨지.
아빠 어릴땐 눈이 무릎까지 쌓인 적이 자주 있었다. 눈쌓인 십리나 되는 길을 어린애들이 다니기엔 너무 위험하니까
그런 날은 학교에 안갔다. 갈수가 없었거든. 그만큼 눈이 많이 왔지.
아침에 일어나 눈부비고 문밖으로 나가면 밤새 눈이 엄청 내려 온통 하얀눈 밖에는 안보였다. 아빠 기억에 눈은 밤에 더 많이 내렸던거 같애.
지붕위에 쌓인 눈을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 쓸어내리고 있고 나도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빗자루를 들고 나와 우리집에서 옆집까지 쌓인 눈을 쓸어내며 길을 열었다. 자기 집 앞에 쌓인 눈만 치우는게 아니니까 동네사람들이 다 나와 힘을 합쳐 눈을 한곳으로 쓸고 모아놓고나면 작은 눈탑이 생긴다.
눈을 쓸고 난 후에는 고모하고 둘이 눈사람도 만들고
나만 보면 얼굴을 핥아대는 누렁이란 키우던 개하고 동네 한바퀴 돌다가 눈밭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마냥 신났었지.
동네 애들은 벌써 언덕진 곳에 눈썰매장을 만들어놓고 농사지을때 쓰는 비닐로 된 비료포대에 몸을 눕히고 경사진 길을 쌩하고 달리고 있더라.
그 신나는 재미를 행여 놓칠세라 고모랑 같이 만들던 눈사람의 눈과 코는
'누나가 달아줘."
고모한테 맡기고 뒤도 안돌아보고 집으로 뛰어 들어가 비료포대 한장 들고 언덕으로 낑낑대고 올라갔지.
누렁이도 덩달아 따라 올라왔지만 비료포대 눈썰매는 나 혼자 타고 내려오는데 그땐 무아지경이라 눈앞에 아무것도 안보여.
너도 눈썰매장가서 타봤으니까 알지. 그 짜릿함을.
눈많이 오는 날엔 학교에 안가도 되니까 기쁨은 두배다.
영하 20도씩 내려가는 날씨도 자주 있었는데,
내복도 시원찮고 지금처럼 거위털이나 고어텍스같은 방한 방수기능있는 옷이라곤 존재도 모르던 시절이라 외투라고 해봐야 두개 세개 옷을 두껍게 껴입는 게 다였지만 손발이 얼어도 아빠와 친구들은 굴하지않고 온종일 눈밭을 뛰어다녔지.
하루종일 놀다가 할머니가 밥먹고 놀라고 몇번을 부르며 데리러 와야 눈썰매타기는 끝이 났다.
저녁무렵 할머니손에 강제로 끌려 집에 들어와서는 고봉(밥그릇위로 쌓인 밥이 밥그릇안 밥보다 많은 걸보고 고봉밥 이라 불렀다)으로 퍼주신 밥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나면 피곤에 겨워 저절로 잠이 들게되는데,
할아버지(아빠의 아버지)가 옆자리로 와 누우시면서
" 무서운 옛날이야기 하나 해주마."
그러셨지.
할아버지는 입담이 좋으셔서 재밌는 얘기들을 구수하게 자주 들려주셨다.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눈내린 어느 날의 옛이야기를 마침 눈이 내렸다고 하니 돌아가신 할아버질 대신해서 전해주마.
할아버지는 젊은 날 이 마을 저 마을과 오일장터를 돌아다니시면서 곡식들을 사오곤 하셨었는데 요즘말로 하면 중간 거래상격이었지.
곡식을 사두었다가 자동차를 대절(렌트)내서 한번에 실어와 소매로 파시는 양곡상을 하셨거든. 곡식을 사러 산골마을까지 두루 다니시다보니 날이 곧 어두워졌고 눈도 많이 내려 버스종점이 있는 큰마을까지는 도저히 걸어갈 수 없게 되셨다.
할아버지가 지금 아빠보다도 훨씬 젊으셨을때 이야기야. 아빠야 한 열살쯤 됬을 건데 그러고보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내년에 백살이시구나
그때는 전화도 전기도 택시도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해지면 발이 묵여 오도가도 못했었지.
어쩔 수없이 아까 끝으로 들렀던 집을 다시 찾아가 하룻밤 신세를 지는 수 밖에는 없어 돌아가서 집주인인 노인한테 부탁을 했단다.
어딜가든 인심이 후했던 시대라 노인은 할아버지를 반가이 맞아주면서 아들 내외한톄 손님 저녁상까지 준비하라고 했다는구나.
저녁상을 물리고는 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에선 노인과 할아버지가, 건넌방에서는 아들내외와 손주들이 잠을 자게 되었지.
외지에서 온 손님이 귀했던 터라 노인과 할아버지는 쉽게 잠을 못이루고 누운 채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두런두런 사연들을 주고 받고 있는데
그순간
주인장! 누군가가 울타리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단다.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울림이 크게 퍼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노인은 나이에 걸맞게 신중함이 몸에 밴 분이라 건넌방에 있는 아들내외를 향해 세번 부를때까지 나가지 말거라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고는 잠자코 기다렸단다.
잠시후 또
주인장! 주인장!
두번을 더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노인은 물론 건넌방아들내외도 대꾸를 하지않았다.
한참이 지나고나서 노인이 문을 삐끔이 열어보고는 이제 갔으니 다들 안심하고 자거라 하며 할아버지한테 멀리 눈밭을 가리키며 저기 가고 있구랴 하시더란다.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지만 할아버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구나.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에 노인이 새벽같이 일어나 바깥을 둘러보고 방안으로 들어오길래 할아버지가 어젯밤 혹 밤손님(빨치산을 가리킴)이 왔다간건가요 물어보니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 그 냥반이 댓돌위에 놓인 내 고무신 한쪽을 뒤집어놓고 갔구료. 하긴 갈때가 됬지."
하더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할아버지는 아들내외에게 하룻밤 신세를 지게되었으니 고마움의 표시로 약간의 돈을 건네주고는 노인한테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서는데 누군가 왔다갔는지 할아버지 발자국이 아닌 다른 발자국흔적이 보이더란다.
이 산중에 밤새 눈이 내려 찾아올 사람도 없었을텐데 자못 궁금했던 할아버지가 발자국을 살펴보니 사람발자국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더란다.
그리고는 이듬해 가을에 산골마을 노인의 집을 다시 찾아갔는데 노인이 보이지않아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는 올봄에 돌아가셨다며 손님이 오셨을때 귀신이 찾아와 아버지 고무신한짝을 뒤집어 놓았는데 저승사자들이 자길 데리러 온거라며 살만큼 살았으니 염려들마라 시더니 얼마 지나지않아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흘리더란다.
그러면서 저승사자가 찾아와 주인장이라 부를때 세번을 부르기전에 나가면 그사람이 곧 죽게 되기 때문에 자신들을 나가지 못하게 당부를 했었던 것이고 아버지가 자기들을 대신해서 돌아가신거라면서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짓더라는구나.
오십년전에 들려준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지만 아빤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서울에 언제 첫눈이 오려는지
첫눈 오는 날 할아버지의 옛이야기 또 들려주마.
2021.11.23. 아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