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옛날엔 귀신이 진짜 있었다.

by 김운용

옛날엔 귀신이 진짜 있었다.

1. 호랑이 외삼촌


1982년 겨울

연 사흘째 눈이 내리던 때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1902년에 태어나셔서 1982년까지 사셨으니 여든한살이면 당시로는 장수하신 편이다.


외삼촌이 환갑때 우리어머니가 날 낳으셨는데 외삼촌과 나는 띠도 같고 육십갑자도 같은 임인년생이다.


족보상으론 틀림없는 외삼촌인데 나이차를 따지면 할아버지나 다름없다.


일찍 상처하고 평생 혼자 사는 큰오빠를 늘 안타까워했던 막내여동생인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역마살이 끼어서 그렇다며 우리 큰오빠 불쌍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동학에 적극 가담하시며 소접주로 활동하시다 동학도를 진압하기위해 지주들이 만든 민보군에

쫒겨서 만주로 도피하셨다.


아버지대신 7남매의 맏이로 농사일이며 집안일을 도맡아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던 외삼촌이 어느날 불쑥 외할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만주로 떠났다.


1년만에 돌아오셨는데 노인이 다된 추레한 모습의 외할아버지와 젊은 여인과 함께 였다. 어떻게 만주까지 가서 외할아버질 찾아 모시고 왔는지 자세한 사정은 듣지못해 알수없지만 어째든 색시감을 데리고 왔으니 장남 노릇을 했으니 체면은 세웠다.


동학도로 활동할때 당한 피해의식때문에 외할아버지는 일가를 이끌고 더 깊은 산골로 터를 옮기셨다.


한번 외지맛을 본 외삼촌은 그때부터 외할아버지와 두분이 횡성 홍천 평창 양양등 장터를 다니시며 소장수를 시작했다.


한달이면 보름이상을 그렇게 외지로 돌아다니던 차에 외삼촌이 데려온 색시가 보따리를 들고 어느날 야반도주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외삼촌이 젊어서 상처했다던 어머니 얘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외삼촌 체면을 생각해 우리에게 둘러대신 것이었다.


외삼촌은 눈썹이 진하고 눈도 서글서글 크고 인물이 미남이셨는데 성정이 불같고 얼굴상도 호랑이상을 가졌다. 키도 크고 힘이 장사라 산에가서 땔나무를 해올때 다른 사람들보다 곱절은 많이 지고 오고

면소에 있는 왈짜들도 우시장에서 혼줄이 나고부터 촌놈이라 얕보거나 무시하질 못했다고 한다.


내가 외탁을 했더라면 미남소릴 들었을텐데

유감이다.


어째든 호랑이같은 외삼촌이 말년엔 자신의 막내 남동생집에 의탁해 있다가 돌아가시기 일주일전에 방문을 걸어잠그고 일체 곡기를 끊으셨다.

매일 아침 방앞에 와 큰형님이신 외삼촌의 안부를 챙기던 막내외삼촌이 그날은 아예 인기척이 없어 창호지를 덕지덕지 겹쳐붙였으나 힘으로 잡아당기면 부숴질 허술한 문을 뜯어내고 방안으로 들어가봤더니 호랑이답게 큰외삼촌은 웅크린채 앉아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외삼촌의 형제분들이 많아 그 후손들까지 장례를 치르러 모였으니 그 수가 40여명이 넘어 평생을 홀로 고독하게 지낸 외삼촌의 마지막 가시는 길은 외롭지않았다.


그때 난 사정이 있어 외삼촌장례에 가질 못했다. 아버지담배 몇개비빼서 가져다드렸더니 좋아하시며 괴나리봇짐같은데서 엿조각 하나 꺼내주셨던 내겐 자상한 할아버지같이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분인데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자리하지못해 두고두고 죄스럽고 아쉬웠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사촌매형이 우리집에 들려 어머니 아버지 형님들을 모시고 장례에 참석하셨다.


삼우제가 끝나는 날까지도 눈은 계속해서 내렸다. 부모님은 며칠 더 계시기로해서 큰형님은 사촌매형이 모는 택시를 타고 밤길을 나선 것이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려 오지가 별로없지만

홍천 양양 인제 세곳이 겹치는 지역 방태산 아래 아홉싸리고개마을은 오지중에 오지였다.


구불구불 아홉번을 휘돌아가야 넘어 갈수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자동차로 올라갈때 얼마나 지대가 높으면 기압차가 생겨 갑자기 귀가 멍해질 정도다.


쫒기던 동학도와 가족들이 선택할수밖에 없었던 최후의 수단이었기에 산중 깊은곳으로 들어가 살았던 것이다.


사촌간인 처남 매부 두사람은 눈이 내리는 밤길을 그렇게 나섰다.

구불구불하고 가뜩이나 미끄러운데 부모님이 만류하는데도 밤길을 나서긴했는데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한참을 가는데 누군가 저 만치 앞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눈발이 날려서 동물인지 귀신인지 자세히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워 상향등까지 밝히며 천천히 뒤를 따라갔다.


옆자리에 탄 큰형님은 사흘나흘 밤을 샌 탓에 코를 골며 잠에 떨어져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사촌매형은 무섭고 긴장도 되고 해서 큰형님을 흔들어 깨우고는


"저 앞에 누군가 계속 앞서가다 서다 반복하는데 눈도 많이 내려 잘보이지않고 무서우니 처남도 자지말고 저앞을 봐봐"


큰형님도 사촌매형의 긴장한 듯한 떨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전조등이 비추는 저만치앞을 바라보니 누군가 허연 물체가 자신들이 탄 차량의 속도를 원격조절한 듯이 가다 서다 반복을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사람은 아니란 걸 확인한 두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뭔가 모를 섬찟한 기분이 들어 머리가 서고 침이 마를 정도로 긴장이 됐다.


그렇게 한시간이 지났을 무렵 어느새 고개를 거의다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호랑이같은 커다란 동물이 차앞쪽으로 다가와 한참을 쳐다보더니 산쪽으로 날아가듯 튀어 사라졌다.


예상하지못했던 일이라 화들짝 놀란 두사람은 얼이 빠진 듯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발도 조금씩 그쳐가고 있어 멀리 인가도 보이니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내렸다. 도대체 누군데 그 밤중 눈내린 산길을 앞서서 길을 챙겨주려고 안내하듯 했단 말인가 궁금해 눈길에 남겨진 발자국을 찾아보았다.


동물의 발자국 같기도하고 뭔가 쓸고간 자국같기도 해 발자국만으론 정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회상한 거지만 두사람은 날이 환하게 밝아오는 새벽 눈쌓인 산길의 그날을 잊을수 없다했다.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옛날이야기다. 아버지의 추측은 아마 그날 돌아가신 니들 외삼촌이 잠시 호랑이로 환생해 눈내리는 밤길 안전하게 길안내를 해준게 아닌가 싶다고 위독하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계실때 병실의자에 앉아 밤새던 날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무서운 옛날 귀신얘기다.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고 구수하게 들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