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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Mar 11. 2022

2. 44번국도와 봄

44번 국도를 달린다.


철정검문소를 십여분 지나면 두촌이란 마을이 나온다. 도로변을 따라 길옆으로 집들이 이어져있고 면사무소가 있는 그리 크지않은 마을이다.


지명에 들어간 촌이란 말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사연이 있는터라 푸근하고 더 정이 가는 곳이다. 마을을 지나 국도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2~3분 정도 약간의 경사진 아스팔트길을 올라가면 길끝에 1950년대 말 미국의 선교단체가 설립했다는 제이드병원이 있었다.


단층짜리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목조건물이었던것 같은데 잔듸가 깔린 정원도 있었다.


그 제이드병원에서 아버지가 6.25전쟁때 총상으로 입은 파편을 10여년 넘게 몸에 지니고 있다가 제거 수술을 받았다.


아버지가 수술하시던 날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는 아버지께 드릴 음식을 만들어 찬합에 넣어 보자기에 쌓아들고 어린 아들 손을 꼭붙잡고 완행버스에 올라 병원을 찾아갔다.


수술이 끝나지않아 병실밖에서 대기하던중 잔듸밭에서 그네를 타고 놀던 대여섯살때의 기억이 지금도 영상처럼 또렷히 떠오른다.


의사선생님이 아버지와 동갑이셨고  북한에서 피난내려왔다는 비슷한 처지라 그랬는지 볼때마다 내게 밀크캬라멜을 몇개씩 손에 쥐어주었다.


미르꾸 미르꾸라 발음했던 밀크캬라멜 한개 껍데기를 까서 입에 넣고는 삘리 녹는게 아까워 절대로 씹어먹지않고 녹여서  먹었었다


아버지도 의사선생님도 두분 다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우거진 숲속에 잡초만 무성한 가운데 병원터만 남아있다. 가난한 동네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를 하며 돌봐준 그분의 뜻을 기려 돌아가시고 난 후 마을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총상을 입고 불구의 몸이 되셨다는 아버지의 고단했던 이야기를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전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 두분의 증언에 의하면 영화 국제시장과 달리 일사후퇴때 흥남부두에서 대다수의 피난민들은 군수물자를 미군배에 실어주고도 철수하는 미군배를 타지 못해 걸어서 피난길을 내려왔다고 한다.


가족들을 데리고 걸어서 피난을 내려오다 남하하는 인민군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인민군들은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민간인들을 차출한다며 피난민들중 아버지를 비롯한 젊은 장정들을 끌고갔다.


일제때 징용으로 북해도로 끌려가 전쟁을 경험한 아버지는 이대로 보급대로 끌려가게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가족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붙들려온 사람중 흥남부두에서부터 같이 피난길을 걸어온 남자와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기회를 엿보다가 의자에 앉아 보초를 서고 있는 인민군 둘을 제압하고 탈출했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쫒아오며 쏘아대는 총탄이 아버지의 오른쪽 허벅지를 관통해 쓰러졌고 같이 도망치던 남자의 부축을 받아 무사히 가족들과 만나게 되었다.


인민군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는데도 어머닌 아버지의 이야기를 거론하는걸 꺼려 하셨다. 술자리에서 아버지가 6.25때  헤어진 부모형제들과 북한에서 살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누군가 이를 듣고 빨갱이라 신고를 해 한달이나 경찰서로 끌려가 곤혹을 치루셨기 때문에 행여나 또다시 피해를 입게 될까 이를 우려한 어머니의 사려깊은 처사였다.


 


홍천과 인제의 경계인 건니고개를 넘어서자마자 44번 국도변 오른쪽으로 나가는 길을 따라 가면 조선시대때부터 질좋은 참나무를 잘구워 숯을 만들었다던 숯둔골이 나온다.


숯둔골을 따라 가는길 옆으로는 바닥에 엎드려 입을 대고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한 물이 흐르는 오계탕이란 계곡이 있다.   현재 과학전술훈련단이란 군부대가 주둔하며 관리하고 있어 출입은 자유롭진 않지만 여전히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


스무살  봄.

좌표를 잃고 고민하다 고향집에 잠시 가있을 때였다. 서울서 내려온 재야사학자 한분이 마의태자 유적을 찾아 발굴하려고 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면사무소다니는 선배로부터 듣고 용돈도 벌 겸 호기심도 생겨 따라 나섰다. 망국의 한을 품고 광복의 꿈을 꾸었던  마의태자의 전설이 우리동네의 얘기였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잡목이 가득한 수풀속을 헤치고 들어가 커다란 나무밑에 전신이 파묻혀있는 비석을 곡괭이와 삽으로 파서 일으켜 세우고 물을 뿌려가며 붓으로 어내니 비문에 새겨진 여덟 글자가 확연히 드러났다.


'신라 경순왕 제1자'


마치 금덩이를 발견한 것 만큼이나 격하게 소리를 질러댔지만 수천년의 세월속에 봉분은 다 슬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비석만 남아있었다.


사십년전 봄의 일인데 어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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