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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Mar 07. 2022

1. 봄 어디쯤 오고있나.

44번 국도를 달린다.


1. 봄 어디쯤 오고있나.


이태(2년)씩이나 무던하게 기다려왔지만 바이러스감염으로 단단히 걸어 잠근 통제의 빗장은 올 봄에도 쉽게 풀릴 거 같지가 않다.


이젠 자유가 그립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냥 외부의 간섭이나 구속이 없이 만나고 이동하고 싶을 따름인데 통제가 지나치다. 이러다 다들 속병이나 생겨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답답한 생각에 틈만 나면 혼자 산과 바다를 찾 다녔지만 꽉막힌 가슴은 시원스레 뚫리질 않았다.


겨울은 이미 떠날 채비를 하고는 칙칙하고 두터운 껍질을 벗어제끼고 삼동을 버티고 있던 자리까지 비웠건만 왠일인지 봄 아직 돌아올 기미를 보이질 않아 어디까지 온 건가 조바심끝에 발걸음이 더딘 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비가 와도 우산은 들지않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뛰지않는 성질이라 길을 떠나는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 행동하는 준비형 인간도 아니고 무슨 일이든 생각나면 즉시 실행으로 옮긴다는 좌우명을 맹신해온 성격이라 속옷이나 여벌옷 세면도구 등 여행을 위한 준비물은 단 한가지도 챙기지 않았다.



오래된 내 소장품 그랜드카니발 그대만 있으면 언제나 자유다.

긴 시간 운행을 해야하니 타이어의 공기압을 점검하고 단골주유소에 들러

오일등도 보충해 그랜드카니발의 건강상태를 꼼꼼히 체크한 후 봄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목들은 어디든 소통이 원활치 않아 급체가 와 꽉막힌 속마냥 갑갑하다.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바삐 오가야하는 통에 발목에 힘이 들어가 출발한지 오래지 않은데도 벌써부터 무릎에 통증이 오고 하품마저 연신 터져 나오려 한다.


태릉을 지나 덕소로 빠져나오자 꽉막혔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기 시작해 속도계를 보며 지긋히 발끝에 힘을 가했다. 규정속도는 60km지만 상습정체구간을 거치면서 탁트인 한강변이 나오니 나도 모르게 질주모드로 자동변환되고 있다.


팔당을 지나면서 아직은 차갑지만 창문을 활짝 내리 하얗게 얼어 붙었던 얼음이 녹으면서 깨끗하게 용해된 강바람이 빠른속도로 들어와 이산화탄소로 찌든 차안을 박하담배향마냥 시원하게 정화를 시켜주었다.


신선한 강바람으로 차속 가슴속까지 후련히 충전 했으니 기분이다 양수리 두물머리로 핸들을 돌렸다.



두개의 강들이 합쳐지게 되면서 온도의 차이로 인해 다른 곳보다 물안개가 더 뿌옇고 수면하고도 거의 닿을 듯이 낮게 피어올라 어디까지가 물이고 어디가 안개인지 경계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짙은 물안개때문에 두갈래 물길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의 넓은 광경, 그 전신이 온전하게 보이진않지만 끝없이 몰려오는 물길을 바라보며 우뚝 몇년을 못봤어도 변함없는 저 느티나무.


원래 각기 다른 뿌리였다는데 따로 흘러온 두줄기 강물이 하나로 합쳐진 것 처럼  갈래 갈래 가지를 뻗어 마주잡고는 큰나무로 연을 맺어 수백년 동안 이 강을 지켜온 늠름한 수호신이다.


느티나무를 올려다보며 한바퀴 돌아 다시 왔던 길로 나오는데 교각밑에 뱃머리가 묶여 이리저리 흔들리는 작은 나룻배 하나를 발견했다. 언제부터 묶여 있었던 건지는 모르나 뱃머리끝에 글자 지워져 거의 윤곽만 남아 는걸로 봐서 오래됐나보다.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두물머리 네글자중 끝엣 글자 리는 아예 지워져 보이지 아도 배의 이름을 온전하게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유성페인트라 쉽게 바래지 않을텐데 뱃이름이 다 지져가는 걸 보면 모질게 밀려드는 세파에 꽤나 시달렸었나보다.




용두리 버스터미널에서 삼거리를 빠져 나오면 여기서부터 44번 국도가 시작되는데 삼백리 멀리 속초로까지 이어진다.


10여분을 더 지나가면 갈기산으로 오르는 들머리 신당고개가 나온다. 갈기산에서 금물산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경기도와 강원도를 구분하는 지맥이다.


신당고개를 넘어가면 산세도 지형도 다른 옥수수와 무궁화의 땅 강원도 홍천이 나온다.


홍천강을 내려다보는 이차선 좁은 국도변을 따라 노오란 개나리꽃이 연봉교 다리부근까지 십여리나 길게 이어져 드디어 처음으로 유채색으로 칠이된 봄과 마주쳤다.


여름 홍천의 관문인 연봉교를 건널때면 무궁화꽃이 만발해 여기가 무궁화의 땅이구나 실감하게되는데 아직은 마른 가지만 뚝방길을 막아서고 있다.


홍천강의 상류엔 화양강이 흐른다. 예전 동부전선에서 군복무하는 아들 또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갈때 화양강을 내려다보며 악명높은 철정 검문소를 지나야 했다.


버스는 완행 직행버스를 구분하지 않고 검문소에서 잠시 서야했고 정복입은 경찰관과 권총을 찬 헌병이 버스위로 올라 차안을 한바퀴 돌고 수상타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 검문을 다.


경찰관이나 헌병들과 괜시리 눈을 마주치면 검문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 꼬와도 눈을 감고 차창에 기대어 잠든 척하는게 속이 편.


긴머리 날리던 어느 날 눈을 감고 잠든척 하고 있는데도


" 잠시 검문있겠습니다. 신분증 제시하시죠"


경찰관이 내자리 앞에 다가와 서있다. 만일 신분증이 없으면 차에서 내려 신원조회를 받고나서 이상이 없을 경우 경찰관이 다음 시간에 오는 버스를 태워주기는 하지그날은 재수 옴붙은 날이다.


팔십년대에 이십대를 지나친 젊은이들은 다들 한두번씩은 겪어본 추억 아닌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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