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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Mar 17. 2022

3. 꿈속의 봄

44번 국도를 달린다.


국민학교 일학년.

부처님 오신날 새벽, 어두컴컴한 산길을 어머니와 단 둘이 올랐었다.

사월의 끄트머리에 걸친 날인데도 산사로 가는 새벽길은 서늘했다.


전날 밤 어머닌 연본홍빛 치마저고리에 풀을 먹여 정성스레 다림질해 놓으시고는 정갈하게 목욕을 하시면서 내일 부처님을 보러갈때 신을 코가 날렵한 흰고무신을 하얗게 닦으셨다.


부엉인지 소쩍샌지 분간은 안가는데 산모퉁이를 돌때마다 우리 뒤를 따라오며 울어대는 통에 은근 겁이 났다.


올려다보면 절터라는데 산사로 오르는 길은 무척이도 멀게만 느껴져 괜히 따라왔나 싶어


" 엄마 아직 멀었어?"


작은 소리로 투정을 부려도


" 이제 다왔다. "


매정하게 어머닌 앞만 보고 걷기만 했다.


아까부터 다왔다는데 올려다봐도 절은 보이질 않았다.

슬그머니 어머니손에서 손을 빼고 두어발짝 뒤쳐져 갔더니


" 여기서 쉬었다 가자."


앞서가던 걸음을 멈추시더니 한복앞섶을 끌어 당겨 여미고는 작은 바위에 걸터앉으시 이리오라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어느새 날은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바위위에 걸터앉은 어머니의 흰고무신이 새벽빛을 받아 더 새하얗게 빛이 났다.


" 저기 보이지. 엄마말 거짓말아니지."


어머니가 가리키는 손을 따라 올려다보니 소나무사이로 절터가 드러났다.

돌계단을 세며 어머닐 앞질러 뛰어가니 절마당 가득하게 연등이 풍선처럼 줄지어 달려있었다.


부처님을 찾아 불공을 드리러 새벽 산길을 오르는 신자들을 맞이하기위해 절마당에 나와 있던 스님을 만나자 어머닌 공손히 두손을 모아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어머니가 쉬지도않고 곧장 대웅전에 올라가 끝도없이 제배를 올리니 따라서 절을 하다 흘낏 부처님을 쳐다보는데 부처님옆에 험상굳게 서있는 도깨비를 보고 깜짝 놀라 얼른 어머닐따라 힘드는 줄도 모르고 엎드려 절만했다.


" 이놈아. 도깨비아니야. 악귀를 쫒고 부처님을 지켜주는 수문장 금강역사라는 분이다."


목탁을 두둘기며 불경을 외던 스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머릴 쓰다듬으며 일러주었다.


무릎도 안아픈가 어머니는 대웅전을 나와 절 뒷편 삼성각으로 올라가 또 절을 했다.


삼성각은 좁기도 했거니와 힘들어하는 내맘을 알고는


" 넌 여기있어라."


어머니는 삼성각 법당안으로 혼자 들어가셨다.


제배를 마치고 절마당으로 내려와 연등을 하나들고 삐뚤빼뚤 서툰 글씨로 자식들의 이름을 하나도 빼지않고 적은 부적을 연등에 달고 그 앞에서 또 절을 하셨다.


월남전에 참전하는 군인이 된 맏아들의 무사함과 자식들의 안위를 허리를 숙여가면서 하염없이 빌고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어머님의 불공이 끝나고 맛있는 떡이며 비빔밥으로 차려진 절밥을 먹고 산사를 내려왔다.



봄을 찾으려 나선 44번 국도를 다시 달렸다.


코스모스가 나풀거리는 길가로 일렬로 줄을 맞춰 십리나 걸어 학교 가던 길,

소양댐이 생긴 이후로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물에 잠겨 볼수가 없다.


근처에 수변공원을 만들고 보를 막아만든 낚시터와 겨울철 빙어축제장이 있어 추억을 찾으러 이따금 찾았다.


높은 언덕위에 작은 예배당은 물에 잠기지않고 모습 그대로인데 세월따라 요양원으로 이름은 바뀌었다.


소양강이 가물어 물이 빠지고 난 자리에는 드넓은 들판에 무수한 들꽃 들풀들이 팔랑거리는게 초록빛호수와 같다.


나무로 만든 삼팔선 다리가 있던 자리에 칠십년 뒤에 강을 가로질러 새로이 다리를 놓았는데, 다리이름은 그대로 38교다.


강건너편 아버지의 고향이자 남편이 머나먼 북해도 징용으로 끌려가 이제 갓 시집온 새댁이 홀로 남아 고단한 시집살이를 이어갔던 땅이 있다.



미군 제3야전병원 후송트럭이 동네를 한바돌고난 후 동구밖에서 캬라멜을 나눠준다길래 까막 고무신 발끝에 걸고 번개같이 달려갔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 같이 뛰어간 애들보다 먼저 트럭앞으로 다가서니 미군이 씽긋 웃으며 밀크캬라멜을 한줌 쥐어주었다.


호주머니에 넣으려고 발밑을 내려 보니 아뿔싸 고무신 한쪽이 보이지않았다.


오던 길을 고대로 돌아가며 두리번거리니 잃어버린 내 고무신이 신작로한복판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마터면 잃어버린 고무신이 아까워서 밤새 잠못들뻔 했는데 천만다행이다.


소양강 물길을 피해 산허리를 파서 만든 굽이굽이 아스팔트길로 사십리를 가 군축령이란 고개를 넘으면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인제읍이 저 아래 보인다.


경사가 심한 군축령 고갯길을 오르던 완행버스가 느릿느릿 가다서다 헉헉대더니 기어이 푸룩푸룩 시동이 꺼지고 멈춰 서버렸다.  


"군인 아이씨들, 학생들, 내려서 버스좀 밀어."


운전기사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학생 군인 누구하나 군말없이 뛰어 내려가 모두들 달라붙어 영차 영차 버스꽁무니를 힘차게 밀었다.


그렇게 모두의 힘으로 완행버스는 탄력을 받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무사히 고개를 넘었다.


젠더니 양성평등이니 각을 세우지않아도 그때의 남자들은 젊은이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의무임을 누구하나 의심치 않고

버스를 밀었다.


어느 해 초여름 밤, 달무리가 너무 크고 밝아서 다른 밤보다 더욱 서러웠었지.

넓은 자갈밭을 걸어나가 강변 가까이 앉아 홀로 밤을 지샜었던가.

이루어지기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그놈의  미련이 남아 주변을 서성댔는데 내일이면 떠나야하니 깨끗이 잊어야지.


소양강처녀와의 슬픈 로망스는 아직 지워지지않고 기억속에 남아있다.


방태산에서부터 내려오는 내린천이 한계령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계곡물과 인제 합강 두물머리에서 한데 어우러지고 이내 곧 합쳐져 강이 되니 그강이 소양강이다.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다.'


이 말은 멀기도 할뿐더러 험준하고 폭설이 내리는 높은 산으로만 둘러쌓인 땅에서의 고된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허가를 받아 부대앞을 나서는 병사가 회한을 그린 말이다.


또한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은 그옛날 금강산으로 가는 인제땅의 절경이 너무도 좋아 언제 다시 돌아와 볼수 있을까 아쉬웁고 원통한 심경을 그의 대표작 관동별곡에 남겨놓았다.


44번 국도 이제 한계령으로 치닫는다. 한때 전국민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았던 명태,

명태하면 국민생선이라 불리울 어류중에서도 으뜸아닌가.

죽은 사람의 젯상에도 불변의 포지션을 수백년간 굳건히 사수해왔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단 하나의 버림도 없이 입맛을 살려주는 명태.

태백산맥을 타고 불어오는 차고 메마른 높새바람이 특히나 거센 용대리 삼거리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황태말리는 덕장들이 있다.


44번국도를 따라 봄을 찾아 나선 길 거의 끝에 다와간다.


소등골처럼 굵은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서 있어 동해로 빠져나가려면 미시령 진부령 한계령 세고개중 한곳을 넘어가야 한다.


조미미 누님이 불렀던 진부령 아가씨 노래가 들려오는 진부령 휴게소에서

멀리 동해바다를 바라다본다.





너무 오래잤나보다.

코로나방역지침으로 통행금지시간이 새로 생기자 한잔이라도 더 마셔야한다는 의무감으로 인해 급하게 마셨더니 단기기억장치인 해마가 기능을 상실했다.


차안에서 잠시 쉬었다가야지 했다가 잠이 들었는데 꽤나 취했던가보다. 추억속을 향해 시동을 걸고 44번 국도를 달리는 꿈을 다 꾸었으니.


봄비가 내린다. 내리는 빗방울알갱이의 입자가 너무 작아 빗물이 보드라운 안개와 같은 느낌이다.


꿈속에서 말고 다시 44번국도 그 길을 찾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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