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소설 태백산맥
한반도의 등줄기같이 웅장하게 이어진 태백산맥이 지나가는 땅.
설악산 점봉산 방태산 한계령 진부령 미시령등 험산준령이 버티고 선 땅
워낙 험하고 외딴 오지라서 경제적 이득이 많지않은 탓에 전쟁이 끝나고도 서로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않아 언제나 변방으로 내몰렸던 땅
이 땅에 사는 사람들도 외부에 대한 경계심이나 텃새를 갖지않아 지역색이란 것도 없다.
흔히 말하는 강원도 사람들 특유의 순박하고 선한 정서가 서려있는 땅이다.
그저 소양강 사백리 물길을 따라 뗏목을 타고 세상밖 소식을 보고 들어야 했던 소박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해방이 되고나서 소양강을 가로질러 남과 북을 갈라놓은 북위 삼십팔도선이 지나가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휴전선이란 대치전선이
만들어지면서 군부대가 곳곳에 자리잡게되어 반공이데올로기라는 극단적인 환경이 조성되었고 사람들의 정서도 따라서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외부에서 온 이주민들도 뿌리를 내리지않고 잠시 거쳐가는 곳이란 의식이 강해 대대로 향토색을 바탕으로한 공동체 유대감들이 점점 엷어지고 사라져가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소양강하류를 막아 댐이 생겨나면서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해 갈고 닦아온 피땀서린 땅을 잃어버린 채 속절없이 터전을 떠나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역사마저도 잃어버린 망각의 땅이 되고 있다.
용식은 고향에 돌아오고 나서 부터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과 지명 등 그 유래가 궁금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방태산 방내골에서 꽃가마타고 서방님따라 와 내린천에서 다시 뗏목을 타고 소양강으로 흘러들어 새달마을로 시집을 온 어머니,
대대로 소양강을 젖줄삼아 뿌리를 내린 새달마을 언덕위에 열두 형제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일가를 지켜온 아버지는 새악시생각에 하루종일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했다
지척에 있어도 어쩐지 자주 올라가게 되질 않았던 설악산이 태백산맥의 최고 정점이요 시작이란 사실을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용식은 열권짜리 소설 태백산맥을 밤을 새워가며 읽고 또 읽었다. 일주일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시간만 지나갔을 뿐 당시와 현재의 시대상황이 별다르지 않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많은 부분 비슷한 점을 느꼈고 등장인물들과 자신의 심경과 처지를 연결하여 무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정희와 만난 날 용식은 그녀의 선물 태백산맥을 주제로 길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땅 지주 소작농 소작쟁의 농지개혁 친일파 청산 공산주의 빨치산 지리산 여순반란 염상진 하대치 이해룡 안창민 외서댁 들몰댁 소화 이지숙 서민영 김범우 심재모 이현상 염상구 토벌군 인민유격대 벌교 625전쟁 분단 이념.
만일 우리가 그때 살았었다면,
과연 우리는 어느 땅 어느 입장에 서있었을까.
생과 사 갈림길에서, 정의와 불의앞에서,
그때 우린 어느 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가졌던 용식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의문이자 스스로의 답변찾기였다.
" 지금 거의 다 읽었습니다. 9권까지 읽었고 10권 읽을 참인데 10권은 노조사무실에 있는 책으로 전에 미리 읽어서 결말은 알고 있어 일부러 남겨놨거든요. "
" 용식씨가 재미있어 할 거 같았어요.
" 용식씨는 처음 볼때부터 특이했어요.
자유분방해보이고 카리스마도 있었구요."
"포스가 장난아니었어요."
" 그래요? 자유분방하다는 말은 좋은 말인지 모르겠지만 카리스마있다는 말은 기분나쁘진 않네요. "
사실 용식은 타고난 반항아기질로 학창시절 유명했다.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집단적 위세를 부리고 어깨에 힘을주고 다니던 흔히 논다는 친구들과도 친분을 유지하며 지내면서도 그룹에 소속되어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삥을 뜯는 비열한 일에는 가담하지 않았으며 자기반 친구들에게 행여 그런 일들이 발생할 경우에도 적극 나서서 제지하거나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용식을 독고다이라고 부르며 의리있는 친구라 더러들 촣아했다.
용식은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차부(車部 -
버스표를 판매하고 버스가 정차하거나 첫차나 막차가 대기하는 곳을 가리키는 옛말)로 뛰어갔다.
정희가 놀러오기로 해 도착하기전에 미리가 기다리고 있기 위해서 였다.
정희가 한시에 퇴근하고 곧바로 버스를 타도 심십분 정도 걸려야 도착하니 여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일찍 가 기다리고 싶었다.
금강운수 서울행 초록색 직행버스가 두 대째 지나갔고 시간은 두시가 다 되어가는데 다음 버스로 올려나 용식은 대합실 입구쪽 긴 나무의자에 앉아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 전집을 선물받은 후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하려는 뜻으로 밥이나 사겠다 했던 건데 면사무소가 있는 작은 동네라 읍내처럼 분위기있고 특별한 곳이 없어 오붓하게 지낼만한 데가 마땅치않아 그녀와 오늘 밤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스러웠다.
용식은 대합실을 나와 그녀가 타고 올 버스가 오는 길로 시선을 고정하고 담배를 빼물었다.
'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은데 막상 만나면 어쩐지 거리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연애를 한다한들 결혼에 대한 준비나 인식도 무지한데 한편 두렵다. '
'발을 담근 이상 위험한 일이 닥쳐올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자신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때 피하지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타협없이 부딪쳐 나갈텐데 누구를 좋아해 정이 깊어지게되면 상처를 입히고 자신도 아플 수 있잖은가. '
연애와 현실, 혼돈이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연애를 시도하는 건 아닌가 회의가 밀려왔다.
" 나와 계셨네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 방금 왔습니다. "
버스에서 내려 망설임없이 다가오는 정희 의 모습, 티셔츠에 청바지 그녀의 변함없는 패션이다.
시골 버스정류소라 오가는 사람도 많지않지만 일부러 눈에 잘띄라고 승강장 앞에 서있었다.
용식은 차나 한잔하자며 대합실 건너편에 있는 다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군인부대가 많은 곳이라 다방 당구장 여관 식당 호프집이 한집 건너 다닥다닥 붙어있고 집집마다 모르는 일 없이 쫘악 꾀고 있는 손바닥만한 작은 동네라 어느 집을 들러도 시선을 받게 될일이라 주저할 것도 없었다.
노벨다방. 주인아저씨가 신문보급소까지 겸하는데 용식의 아버지와 친분도 두터워 적지않이 신경이 쓰였지만 가까운 곳을 택한건 소양강변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를 타고 온 정희를 위한 배려였다.
" 어머니가 정희씨 데려오랍니다. 시골이라 갈곳도 없고 식당에서 밥먹지말고 집에와서 밥먹으라시네요."
"괜찮아요. 갑자기 불편해하실텐데 담에 하시죠.."
" 그럽시다. 나도 집에 여자친구 데려가는 일도 처음이고 또 갑자기 어색해서 놔두시라했더니 어머니가 솜씬없지만 집에서 밥한끼 멕여야한다시니 알았습니다 했는데 담에 하죠."
배달을 마치고 금방 다방문을 열고 들어온 다방레지아가씨가 빠른 손놀림으로 커피 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돌아서는데 그바람에 구수한 다방커피냄새가 익숙하게 풍겨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우리탁자에 커피를 가져다준 레지아가씨가 어느새 큰소리로 나 배달갔다와요 소리를 치며 다방문을 나서고 있다.
" 태백산맥 다 읽으셨다고요? 그새요. "
" 공부 잘 하셨나봐요."
" 공부요? 글쎄요. 공부 안했습니다. 역사소설을 좋아하는데 재밌잖아요. 읽다보니 등장 인물들과 요즘의 나와 비교가 되고 책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특히 염상진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단호하고 냉철하고 치밀하고 무엇보다도 헌신적이라는 점이 끌렸습니다."
건너편 그녀가 덧니를 살짝 드러내며 식어버린 커피잔을 입에 대고는 이내 내려놓으며
" 제가 보기엔 용식씨는 하대치와 비슷한 느낌인데요. 용감하고 힘세고 남자답잖아요. 정도 많고."
" 어허! 정희씨 왜 이러십니까.
나 무식하고 무대뽀아닙니다. 고등학교 입학때 우수학생으로 뽑혀 교감선생님의 특별관리도 제안받았고요.
공부 안해서 그렇지 제대로 했으면 난리 났을겁니다."
" 용식씨 머리좋은거 알아요. 얘기들었어요. 과장님 아드님하고 친구라면서요. "
" 알고 있었네요. 그 친구는 좋은 대학가고 난 다방에서 턴테이블에 판이나 갈고 다 지 운명이죠. "
"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죠. 친구녀석이 중국집하는데 짜장면이 맛있습니다. 거기 갈래요? "
" 좋아요."
신일방. 용식이 사는 작은 면소재지마을에 있는 유일한 중국집인데 용식의 친구가 사장이요 주방장을 겸하고 있다.
짜장면이 맛있기로 소문이나 주말이면 휴가나온 군인들이나 면회온 가족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가정형편이 안좋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서울로 올라가 공장이며 구두닦이며 안해본게 없이 고생하다 나쁜 일에 휩쓸려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나와 중국요리를 배워 고향으로 돌아와 중국집을 차렸다.
" 정규야. 짜장면 최고로 맛있게 두그릇 만들어봐라."
" 오케이. 이제 퇴근하냐? "
" 어 그래. 형님 데이트중이다. 짜장면 진짜 맛있게 만들어라. "
" 데이트? 우리 용식이 애인 얼굴이나 한번 보자. 어어. 안녕하세요. 야 미인이십니다."
용식이 친구인 정규는 원래 변죽이 좋기로 친구들 사이에 유명하다. 처음보는 어느 누구와도 10분안에 말을 트고 친구나 형님동생으로 손쉽게 관계설정을 해내는 타고난 친화력을 보유한 친구다.
" 용식이 이놈 횡재했네. 참 예쁘십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산전수전 다 겪어본 터라 사람 볼줄을 압니다. 얼굴만큼이나 인간성도 아주 좋아보이십니다. 용식이 애인만 아니라면 저도 반하겠네요.
제가 오늘 짜장면 최고로 맛있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용식이 멋진 놈입니다. 남자답죠. 친구들 힘들고 어려운 일 당하면 물불 안가리고 젤 먼저 나서서 해결해주는 친굽니다. 이름이?
아 정희씨. 용식이 잘 만났어요."
" 정규야 인마. 배고프다. 빨리 들어가 짜장면이나 갖고와라. "
" 새끼. 알았다. 용식아 내 오늘 특별히 탕수육하나 쏘마. 정희씨 좀만 기다려요."
이정규. 역시 천하의 오지랖이다. 용식은 정희에게 엽차를 따라주고는
주방으로 들어가는 정규의 뒤에다 대고 웃으며 말을 던졌다.
정규의 유난스런 너스레를 정희도 싫지는 않은 듯 덧니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었다. 그리 도드라지진 않지만 정희의 덧니는 웃을때 확실히 윤곽이 드러나는데 귀엽기까지해 더 매력이 느껴졌다.
" 소설 태백산맥에 태백산맥은 거의 안나옵니다. 그거 알았어요? "
" 몰라요. 그게 뭐 어때서요."
" 아. 그게 말입니다. 짜장면에 짜장은 없고 된장이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세요. 이상하잖아요. "
용식은 재미로 꺼낸 말이었지만 읽을때마다 의문이 들었으나 이유를 확인할 길 없어 궁금해 했었다.
물론 염상진과 하대치를 비롯한 빨치산들이 주로 활동했던 지리산은 태백산맥의 한 지류인 소백산맥의 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고 크기나 웅장함으로 보아 설악산 금강산과 함께 산이 많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이니 상징적인 의미로 작가가 쓰였던 들 중대한 하자가 있는 건 아니다.
" 전 그냥 재밌었어요.
정희는 언제나 한 문장 이상 길게 말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용식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짧게 말하는 습관을 가진 정희의 속생각을 헤아려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저도 역사소설 좋아해요. 일본사람들 밑에서 아부하던 친일파 경찰들이랑 지주들이 해방이 되었는데도 처벌도 안받고
큰소리치며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탄압하는 일은 있을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소작민들도 먹고는 살아야하는데 굶어 죽을수 밖에 없도록 죄 다 빼앗아가니까 저항하려고 빨치산이 된거잖아요. 너무 불평등해요. "
" 지금도 마찬가지죠. 친일파의 후손들이 자본가가 되어 노동자들을 착취해 부를 독점하고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달라 주장하면 감옥에 갇히고 해고가 되는 불평등한 세상은 여전해요.
노조, 집회 결사의 자유 있으면 뭐합니까. 뻑하면 불법으로 모는데요.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마다 눈에 불이 납니다."
용식은 모처럼 정희가 진지한 표정으로 길게 말을 꺼내자 기회다 싶어 요즘 자신이 겪고 있는 노동조합일로까지 주제를 확대해
화제를 이어갔다.
정희와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선 공통된 관심사로 많은 시간 대화를 주고 받아야하고 특히 그녀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 간부로 나서자 그녀는 누구보다도
용식을 도와주었다. 총회나 엠티같은 노조행사가 있을때 사전 준비며 뒷처리까지도 말없이 도맡아 하곤 했었다.
그때마다 용식은 정희에게 눈길도 가고 연모의 정도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녁 손님이 뜸해지자 용식의 친구이자 중국집 주방장 정규가 손수 탕수육이 담긴 커다란 접시를 들고 두 사람이 앉은 자리로 다가와 용식의 옆자리에 앉았다.
" 자 탕수육이 왔습니다. 정혜씨. 드셔보세요. 이래뵈도 제가 서울 L호텔 중식당에서 배우고 닦은 일류 요리삽니다. "
" 정규야 이름 똑바로 불러라. "
" 아 예 정혜씨? "
" 정흰데요."
" 음. 어째든 말이죠. 멀리서 보니 두사람 아주 다정해보였습니다. 저희 식당은 식사외에도 밤이 깊어 길을 잃은 다정한
연인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잠자리까지도 제공하오니 막차끊길라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드시면 좋겠습니다."
용식은 순간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화끈거려 건너편 자리의 정희의 눈치를 얼른 살폈다. 연인들의 잠자리도 제공한다는 정규의 노골적인 언급이 마치 자신의 음흉한 속내를 정규녀석을 통해 대신 전달하게 한 것은 아닌가 정희가 오해를 하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 아니예요. 막차놓치면 택시타고 가야죠. 아버지한테 혼납니다."
정희는 별다른 거부반응없이 웃으면서 정규의 진한 농담을 가벼이 받아쳤다.
야 임마! 정희씨 일찍 가야되.
용식은 정규의 어깨를 툭치며 나무라는 듯 시늉을 냈지만 오늘밤 정희와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와 목소리엔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규는 주방정리를 위해 자리를 떴고 정규가 탕수육을 가져오면서 함께 가져온 고량주 중 두 병째 병의 뚜껑을 따고 연거푸 석잔을 순식간에 들이킨 용식은 정희에게도 술을 따르고 나더니
" 정희씨.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