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연애론

꽃잎편지

by 김운용

6. 연애론

스탕달은 시대를 초월한 연애지침서 사랑에 대하여를 집필할때 연애의 쓰라린 아픔을 수백번씩이나 곱씹으며 써내려갔다고 한다.


일생 단 한번의 열정적인 연모의 정을 연상의 이혼녀 마틸드에게 쏟고자 했으나 끝내 거부당하자 진실한 고백을 담아 연애론을 썼다고 한다.


마틸드라는 백작부인이 스탕달같이 인간미넘치는 평등주의자이며 감성이 풍부한 페미니스트의 구애를 어떤 까닭에 거부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인이 어렵다.


스탕달은 화려했던 여성편력에도 불구하고 미틸드라는 한여인을 향한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 느꼈던 감정들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사랑으로 인한 최고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처음으로 잡는 일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잠시의 희망이나 착각이 하루나 이틀 후 절망으로 바뀐다해도 아주 작은 희망만으로도 사랑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가득해진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리하면 돌아보는 남자와 여자의 심리, 사랑을 갈망하는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로맨틱해진다고 했다. 행복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스탕달이 연모의 정을 품었던 평생의 연인 마틸드 뎀보스키는 폴란드 출신이며 백작인 남편과 별거중이었고 아들이 둘이나 있었는데도 스탕달의 플라토닉한 구애를 거부했다. 그녀가 35살이란 젊은 나이에 죽자 스탕달의 슬픈 연정은 결국 짝사랑으로 끝이 났다.


사랑했지만 연애에는 결국 실패해 입술을 깨물며 연애의 이론을 써낸 스탕달은 본래

글쓰기는 물론 음악과 미술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어 많은 여성들과의 염문을 뿌려왔다, 그러다 비밀 혁명조직에 가담해 국외로 쫒겨났다 거리에서 쓰러져 5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랑엔 나이도 제한도 필요치 않다.

현실적으로 계산하는 여자도 사랑의 표시를 한다.

연적을 향한 너그러움이란 바보짓이다.

연애를 하려면 감출 줄도 알아야한다.

모두에게 두루 호감을 사는 사람은 깊은 호감을 받을 수 없다.

여성은 이성보다 감성적이다.」


------ 스탕달의 연애론 요약





6-1 연애에 빠지다.


하루종일 정희 그녀 생각뿐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여 딴 생각은 나지 않으니 아무래도 연애의 늪에 빠졌나보 다.


용식은 머리맡에 쌓아둔 책을 읽으려 펼쳐는 보지만 좀처럼 머리속에 들어오지않아 누웠다 엎드렸다 뒤치닥 거리길 한시간 넘게 반복하고 있다.


단숨에 읽어야 겠다는 욕심만 앞서 머리맡에 열 권을 그대로 쌓아놓았다.

열흘이 다 되가는데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지만 사실 한번은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정희가 선물로 준 건데 책장을 넘길때마다 책장속에서 환하게 웃는 정희의 얼굴만 떠올랐다.


다시 읽을때 찾기 쉬우라고 책갈피와 함께 짧은 편지가 적힌 메모지를 끼워 놓았었다.


" 용식씨한테 잘 어울릴걸요."



노조일로 바삐 돌아다니느라 여유가 없어 사무실에 모처럼 출근을 했는데 말을 걸 기회를 엿보며 다른 직원들을 의식해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정희 그녀가 먼저 다가와 어느샌가 옆자리에 서 있었다.


보자기를 용식의 옆자리 빈의자에 올려놓고는 말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보자기를 풀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정희가 앉아있는 자리를 지나치며 눈으로 인사만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음날 아침 용식은 정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희가 받을 확률이 높은 전화라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용식은 농담을 섞어 말문을 열었다.


" 보자기에 쌓여있길래 맛있는 거라도 들어있는 줄 알았습니다. 솜씨도 좋은데 말이죠."


" 책이라 무거워서 보자기에 쌓은 거예요. 집에서부터 들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 아! 그럼 미리 말을 하시죠. 집근처로 갔을텐데요. 담부턴 힘든데 무거운거 들고 오지마시고 미리 말을 하시면 즉시 달려가겠습니다. 그책 한번은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선물 고맙습니다."


" 용식씨하고 잘 어울릴거 같아서요."


"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빨갛게 보였습니까? "


사실 정희의 눈에 비친 용식은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옷차림새도 자유분방해 보였고 반항아적인 행동으로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 직원들이나 상사들을 대할때도 직설적이었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졌다. 오히려 윗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분위기라 정희 역시 특이한 사람임을 진작에 느끼고 있었다.


남자답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해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가곤 했었다.


" 정의감도 있고 노조일이 힘들고 다들 피하는 일인데 선뜻 나섰잖아요.


" ......... "


" 아마 용식씨한테 잘 어울릴걸요."


용식은 수화기 너머 정희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가늘고 여린 음색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비음이 약간은 섞인 단정한 그녀의 목소리를 끊고 싶지않았다.


" 여보세요? "


" 듣고 있습니다. "


" 틈날때 조금씩 읽어보세요. 밤새지 마시고요."


" 누가 준건데요. 읽고 또 읽을 겁니다.

깨끗하게 읽고 돌려드릴께요."


" 안주셔도 됩니다."


" 우리 동네 뒷동산에 어릴때 썰매타고 놀던 작은 연못이 있는데 거기 올라가면 멀리 소양강도 내려다 보이고 풍경이 좋아요.


연못옆으로 라일락꽃도 피고 자두나무도 있고 오솔길도 있어 걷기에 좋은 곳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날 보러 오지 않을래요."


" 시간되면 놀러 갈께요."





태백산맥. 조정래. 해방전후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격동의 시대 치열했던 역사. 대하소설.


작가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집필하는 동안 삼년을 두문불출하며 글만 쓰다보니 엉덩이가 물러터져 피가 맺히는 줄도 몰랐다니 대단한 집념이 담겨진 책이니 작가의 열성을 생각해서라도 대충 읽을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선물로 주기 이전에 노조사무실에 비치되있어 회의전에 틈틈이 읽어본터라 간단히나마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다.


용식의 부모님이 살아오신 시대가 태백산맥의 주요 배경이 된 해방전후시대와 겹쳐 비슷한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여러차례 들어온터라 암울하고 고단한 역사를 직접 체험이나 한것 마냥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옷을 갈아 입으려 가끔씩 집에 들를때마다 어머님이 경찰들이 자꾸 찾아와 물어보고 간다며 행여나 별일은 없냐 걱정어린 시선으로 물어보시곤 했는데 어머니는 태백산맥에 나오는 좌우 극한대립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 겪으셨고 군사독재정권시절 반공이데올로기를 강제 주입하고 죄악시하며 총칼로 위협하고 통제하던 어둠의 시대가 지금도 여전하니 노조일한다며 돌아다니는 아들의 안위가 몹시도 불안하고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 그냥 둬요. 다큰 놈이 지가 알아서 하겠지.

그런다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예전에 겪어봤잖소. "


경찰이 다녀가고나면 밤새 잠을 못이루고 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닐 보며 아버지는 무덤덤한 말투로 나무라셨다고 했다. 예전에 월남전에 참전했던 큰아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매일같이 사발에 밥을 퍼 부뚜막에 올려놓으신 후 뒤뜰에 가 장독대위에 정한수 물 한그릇 떠올려놓고 기도하시던 어머니.

아들 셋이 대를 이어가며 그 작고 메마른 가슴을 졸이게 하고 애를 태웠다.


어머니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전쟁의 깊고 쓰린 상처를 평생 안고 사셨던 아버지 역시 담배만 연거푸 빼어 무셨다 한다.


'세상을 똑바로 돌아가게 만들자는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빨갱이로 취급해 불온하게 몰아가는 몰상식한 세상이다. '


용식은 부모님들이 가슴을 졸이며 잠을 못이루고 계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못내 아팠다.


유목민같은 불안한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아들이 애써 안정이 되었다며 안심하고 기뻐했던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면서도 간부를 맡아 노동조합의 주동인물로 지명이 되고 경찰의 사찰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섣불리 나설 수 없다는 책임감이 더 무겁게 다가와 용식은 갈등이 밀려왔다.


용식은 스프링이 달린 노트를 꺼내 정희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꽃이 필때 꽃이 질때



꽃봄은 너무 짧다.

겨우내 추위에 떨면서도

굳굳이 선 나무들 보며

꽃피는 봄날이 조금 더 길어지길 바랬었는데


껍질같이 온기없는 얇은 옷하나 걸치고

길고 지루한 긴 날을 견뎌왔는데

때로는 아무도 찾아와 주지않는 적막한

숲속에서 외로워 아파했고

가슴을 에는 찬바람에 서럽게 윙윙 울어 대며 슬픔에 몸을 떨어


기어이 꽃을 피워냈건만

열흘을 채 못다 피고 지고 마는지

서럽다.


다른 꽃들 여름 내내 가을이 올 때까지도

잘도 피던데

어이 봄꽃들은 이리 꽃핌이 짧아야하는지

기구하다.


꽃지고 그 자리에 잎이 나니

짧게 꽃이 피는 까닭을 모르지 않지만


이 봄

또 아쉬움에 꽃봄을 떠나 보내야만 하니

꽃잎 떨어진 자국마다 구구절절한 사연만 따라서 쌓여 간다.


해마다 피는 꽃 그때마다 조금만 더 견뎌내길 바래보지만 그때마다 야속한 바람은 꽃잎을 다 떨구고 지나간다.


지나갈 일들이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생성의 과정이라 죽을만큼 슬프고 애통하다해도 한낱 미물이 거쳐갈 찰나요 영원으로 이어질 조각들이기에

담담히 받아들여야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꽃잎 다 지고나면 사월은 가고

꽃봄은 그렇게 스치듯 짧게 흘러 갈거다.


사월이 잔인한건 화려했던 꽃들의 향연이 끝나고 잎들이 나기 전 빈가지가 너무나 허전하기 때문이리라

그것도 갑자기.



정희씨.

노조일 한답시고 몇일씩 집에도 들어오지 않으니 부모님이 잠도 못 주무시고 걱정을 하시네요.

경찰들도 집으로 찾아오고 했다니 저 역시 조금은 불안하고 걱정이 되네요.


불평등한 세상.

내 비록 특출한 인물도 아니고 능력도 별로 없지만 물러서고 싶진 않아요.


정희씨를 비롯한 여직원들한테 하대하고 막말하는 사무실 분위기도 싫었지만 노조간부로 나서고나서부터 부당한 현실을 타파하는데 절대로 몸을 사리지말자 나 자신도 모르게 의식으로 단단히 무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닥쳐올지도 모릅니다.

구속이 될 수도 있고 해고가 될 수도 있는데

내 성격으로 볼때 두려워할지라도 피하진 못한다는 거 지켜봐서 잘 알겁니다.


힘이 되어줘서 고맙습니다.

낮에 스치듯 언뜻 봤지만 보고 싶네요.

잠이 오지않는데 정희씨가 준 선물

태백산맥이나 읽어야겠습니다.


잠못드는 사월의 마지막 날 밤에 용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