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비가 내리는데

도선사에 비가 내린다.

by 김운용

모처럼 혼자 산엘 갔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주말마다 절친한 후배 출하 고 셋이서 산행을 한다. 경험 많은 등산 전문가 후 배가 등산 일정이며 코스를 알아서 잘 준비해 나는 그냥 따라가기만 했다. 근데 오늘은 휴가라서 사진 도 찍고 머리도 비울 겸 혼자 산행을 나섰는데 단체 산행과 비교해 좋은 점도 있지만 스스로 알아서 준 비해야 하니 불편하기도 했다.


산을 잘 아는 후배가 있을 땐 남은 시간과 거리를 계 산해 페이스도 조절하고 날씨를 고려 빠른 하산 길을 안내줘 좀체 머리 쓸 일 없이 앞만 보고 따라가면 됐는데 은근히 신경 써야 할게 많다.


그래도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정기적인 산행 경험 이 도움은 많이 됐다.


오늘 산행 목적지는 북한산 정상 백운대로 정했다. 주말이면 정상으로 가는 길은 등산객이 너무 많아 대기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어 그동안 몇 번 정상에 오르려 하다 중도에 포기했었는데 오늘은 평일이고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한산 정상을 가기로다.


세 시간 만에 백운대에 도착했다. 사람이 안 보여 서 나 혼자거니 생각하고 간식으로 가져간 김밥 한 줄과 자두 두 개를 꺼내 먹으려는데 소리도 없이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바짝 엎드려 나도 좀 달라고 몸으로 주문하길래 오늘은 김밥 한 줄밖에 안 가져와서 너 줄게 없다며 냉정하게 말했는데도 미동도 안 하고 요지부동이다.


김밥 몇 개 갖고 쪼잔한 것 같아서 몇 개 집어 앞에 놓아줬는데 잠시 쳐다보다가 먹기 시작했다. 먹는 게 불편해 보여 김밥을 해체해 작게 잘라줬더니 번개같이 해치우고 다시 날 쳐다보길래 그래 반씩 나눠먹자며 내 몫에서 조금 더 나눠줬다. 그렇게 고양이랑 단둘이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데 송추 쪽에서 시꺼먼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하는 도중에 비가 조금씩 내 리기 시작했는데 쉽사리 그칠 거 같지 않아 급한데 로 우선 비를 피하기로 하고 도선사로 방향을 틀었 다.


산 정상부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뛰다시피 내려왔다.

원래 하산길이 더 위험하고 무릎을 비롯한 하체에 많은 충격을 주게 되는데 비를 피하려 평소보다 무 리해선지 너무 지쳐 산길에서 가깝고 절간에선 산 쪽으로 제일 위쪽에 있는 삼성각으로 가 기단 아래 돌계단 끝에 체면치레 생략하고 털썩 걸터앉았다.


산사에 비가 내리고 있다.


타는 목마름을 못 견뎌 갈증부터 풀어보자며 물부터 마시고 싶었으나 움직이는 게 귀찮고 힘이 들어 물이고 뭐고 그냥 쉬고 싶었다.


산행으로 지친 피로로 다리에 맥이 풀려 뒤로 벌렁 눕고 싶은데 삼성각에 계시는 산신령이 노하실까 봐 참았다.


삼성각에는 산신령과 부처님의 제자라는 나반존자 그리고 별 중의 별 칠성신 등 세분을 모신 곳이어서 삼성각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신성시 여겨 산 에는 산신령이 살고 있어서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덕을 베푼다 해서 맘씨 좋은 할아버지 모 습으로 상상해왔는데 삼성각에 모셔진 탱화를 봐도 역시 기다랗게 허연 수염을 늘어뜨린 영락없는 맘 좋은 할아버지 그대로다.


대부분의 산악회가 연초에 시산제를 지내는 대상도 삼성각에 모신 바로 그 산신이고 시산제를 지내는 이유도 산행 중 발생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바람 때문이다.


삼성각 지붕 기와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아까 보다 양이 훨씬 많아져 빗방울이 떨어지는 땅 끝이 더욱 깊게 파인다.


그래도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다. 하산을 하려면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삼성각 뒤편 산 정을 올려다보니 비구름이 서서히 산아래로 몰려 가고 있다.


굵어진 빗줄기 덕분에 충분한 휴식을 취했더니 피 로도 빠르게 회복된 듯하고 갈증도 풀고 절간도 둘 겸 대웅전 앞마당으로 이동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연등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 도로 빽빽하게 걸려있다. 다른 절의 초파일 연등제와 비교해봐도 규모가 못지않게 크다.

아마 도선사가 북한산 산사 중에서도 규모가 큰 절이라 신도가 많아 그럴 것이다.


부부, 모녀, 연인인 듯 꽤 여러 사람이 연등 밑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특히 많은 걸 보면 불교는 역시 우리 전통신앙이 맞긴 한가 보다.


무병장수와 자손의 번창, 사업의 성공, 자녀의 대학 합격,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중생들의 많은 바람을 연등에 달아 스님이 대신 제를 지낸다.


그런데 대웅전 옆자리에 관음보살상이 있는데 그 앞에 비를 맞으며 서있는 50대 남녀 두 사람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글쓰기 시간이 늘면서 눈에 띄게 관찰력도 늘어나 고 관심사도 많아졌다.


부부 같기도 하고 남남 같기도 한데 남자보단 여자가 더 절실하게 기도를 한다. 여자는 비가 오는 궂은날 씬데도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여자는 가끔 흐느껴 울기도 한다. 남자는 두어 발짝 옆으로 비켜서 있다.


여자와 가까운 누군가가 죽어서 천도재나 사십구재를 지내러 온 건 아닐까. 남자는 여자의 남동생이 고. 이렇게 추론하는 근거는 우선 남녀의 모습이 닮았고 부부라기엔 다정한 손짓이나 대화가 보이지 않는다. 10여 m 떨어진 뒤에 서있어 뚜렷이 들리진 않았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누나라 부르는 것도 같다.


여자가 산사를 찾아 서럽게 우는 경우 십중팔구는 어린 자식의 애석한 죽음이 다수다. 혼자 키운 자식을 잃어버린 후 산사에 찾아와 구천을 떠돌지도 모 르는 아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날 짓궂게도 비가 주 적 주적 내리고 있다.


여자에겐 자신의 모든 걸 잃어버렸으니 비통하고 애절한 심정일 거다.


죽은 사람은 사십구 일 동안 구천을 떠돌기 때문에 죽은 날로부터 매 칠일째 되는 날 일곱 번의 재를 지내 영혼을 달래는 칠월칠석기도가 곧 다가오니 도선사를 비롯한 여러 산사가 곧 요란한 제등행사를 가질 것이다.


칠월칠석날 칠성님께 불공드리러 돌아가신 어머니와 손잡고 작은 산 사엘 갔던 기억들이 새롭다. 그때 어머닌 칠석날뿐 아니라 초파일이며 불공을 드려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새벽 험한 산길을 겁도 내지 않으시고 큰형이 구해온 군용 플래시를 내 손에 쥐어 주며 앞세우고 걸으셨다.


플래시를 들었는데도 행여 내발 밑이 어두울까 봐 날 앞서 걷게 하신 우리 엄마.


그 잘 난 아들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한 많은 여자의 길을 걸으셨는데도 끝내 좋은 일 하나 못 보고 아픔만 가득 안고 돌아가셨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만에 하나 비상금으로 필요할지 몰라서 이만 원을 챙겨 왔는데 작은 연꽃 촛대를 한 개 사서 우리 엄마 이름과 생년월일을 부적에 써 붙여 불전함 뒤에 가만히 세워 놓았다.


비 내리는 산사에 오래 머물다 보니 옛날 기억들이 새록새록 사연되어 떠오른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겨 참고 있었던 목마름이 갑자기 일어났다. 혼자 오는 산행이기 때문에 물을 좀 더 여유 있게 챙겨야 했는데 부족했다. 평소보다 암튼 힘든 산행이었다.


물어 물어 물이 있는 곳을 찾아 겨우 기념품을 판매하는 건물 뒤편에서 계곡에서부터 연결된 호스를 발견했다. 생수병으로 한가득 채워 다 마시고 난 후에 새로 생수병에 가득 채웠다. 그새 비는 거의 그쳤 다.


버스정류장 갈 때까지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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