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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May 29. 2022

야단났네.


대형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직도 그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수십년만에 갑자기 연락을 해온 친구녀석 하고 둘이서 초저녁부터 거하게 한잔하며 추억의 책가방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학교는 달랐지만 교복을 벗어 가방에 구겨넣고 골목길을 누볐던 철없던 시절을 안주삼아 즐기다보니 날짜선까지 넘긴 시간에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옛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술자리라 그런지 평소보다 취기도 오르지 않고 말짱해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그간 간간히 모아놓은 글을 한번 훑고는 복사를 해 브런치에 올리려던 순간


잠시 전에 헤어진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잘들어갔냐는 안부전화였습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세.


통화를 끊고 나니 친구녀석이 문자 메세지도 보내왔습니다.

사십년도 더 전인 고등학교때 캠핑가서 찍은 사진과 함께

'고2때 여름 강촌갔을때 찍은건데 기억나느냐고요.


자식. 세월 참 빠르다. 잘 쉬어라.


복사한 글이 궁금해 짧게 답장을 보내고 다시 메모장을 열어 브런치에 붙여넣기를 했더니 아무 글씨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술이 확 깨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뒤지고 다녀 보았지만 흔적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꽃잎 편지란 제목으로 연재를 해왔는데 6-4편 토요일엔 비가 내린다 라는 글이 통화를 하고나니 죄다 날라가버린겁니다.


가슴이 아리고 쓰라렸던 젊은날 어설픈 로맨스의 기억을 되살려 총 12개의 소제목과 15~7회의 분량으로 나누어 글을 쓸 계획을 세웠었고 현재까지 9번째 글을 올렸습니다.


요즘 글을 쓸 시간도 여유도 없어서 짬이 날때마다 짜깁기하듯 조금씩 모으고 살을 붙여서 수정을 한 뒤 메모장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보관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몇날 몇일을 공력을 들였었건만

한순간 백지만 남다니 친구녀석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자식은 잠도 없는지.

여태껏 연락도 없다가 새삼 뭐그리 정깊다고

안부는 낼 술깨고 묻던가하지.

암튼 학창시절때도 중요한 껀수가 있을때마다  다된 밥에 초를 더니

수십년이 지나도 도움이 안되네요.


평소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왔지만 한번도 이런 불상사는 없었거든요. pc와 달리 지워진 글을 복구하는 기능이 스마트폰에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나는 소재나 줄거리들을 바로바로 메모할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왔는데 아 망했습니다.

 

용식과 정희, 춘영, 세사람의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한 연애사의 항로가 서서히 결정지어지는 장면이라 관계자들의 자문과 고증을 받아가며 기록해놓았건만 아 속이 쓰립니다.


다시 시작은 해야겠는데

그날 이후 메모장을 열려는 마음이 안생깁니다. 새로 쓰려니 맥이 풀려서요.


밥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고 어쩐지 허전합니다.


한번은 썼던 글이라 첨쓰는 것보다는 부분 부분 줄거리나 맥락은 언뜻 생각이 납니다만은 낚시가서 다 잡았던 물고기를 놓쳐버린 것처럼 아쉬움이 너무 커 친구녀석한테 문자보냈습니다.


범수야. 당분간 밤에 전화하지마라. 문자도 보내지마라. 너때문에 기억지워졌다.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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