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강아지풀

by 김운용


생식작용을 통해 씨(자손)를 퍼뜨리는 본능 또는 의식적인 행위의 산물을 생명이라 하는데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싹이 트고 꿈틀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들짐승이나 새들은 스스로 생식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필요에 따라 짝짓기를 시도해 개체수를 늘려가며 생존을 유지하지만

식물들은 별도의 매개수단을 통해야만 생식이 가능하므로 생존률이 적고 범위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새들이나 곤충류 혹은 바람이 홀씨를 옮겨준대도 사막이나 불모지에 떨어지면 생존이 불가능하고 용케 살아남아도 십중팔구는 동물의 먹이가 되고 그외에도 빗물에 쓸려가 버리게 되 경우에도 식물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환경의 영향게되므로 생존의 길 멀고도 험하다.


더군다나 급속한 산업화로 도시들이 생겨나 지형이 바뀌면서 질기디 질 생명력을 새로이 배양해내지않는 한 도시에선 살수가 없다.


산을 헐어내고 하천의 흐름을 끊 후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덮은 도로위를 헤매다가 비참한 생을 마치는 식물이나 동물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도시엔 작은 홀씨마저 날아가 뿌리를 내릴 곳이 별로 없어 살길이 막막한 곳이다.


어쩌다 가로수 나무아래나 공원 또는 하천뚝방같이 흙이 있는 곳에 떨어져야 생존하게 되면 그런 케이스는 운이 좋은 다.


바람에 실려 이리 쓸리고 저리 날리는 대부분의 홀씨들이 그때까지 숨이 남아 있으면 빗물을 타고 보도블록 틈새에라도 끼여 질긴 생명 겨우겨우 뿌리를 내린다.


1호선만 다니는 오래된 전철역 계단 맨 아랫칸에서 횡단보도로 이어지는 보도블록 갈라진 틈새로 강아지풀이 홀로 서있다.


벌써 한달은 된듯 싶다.


단단한 콘크리트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머리를 끚꽂히 세우고 선 강아지풀은 이 도시에서 억수로 재수가 좋은 거다.


하늘을 향해 머리를 일자로 뻗대고 있으면 금강강아지풀이라던데 생김새를 보니 머리를 꽂꽂하게 세웠으나 그냥 강아지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발길에도 머리를 수구리는 법을 보지 못했다.


한때는 곡식의 시조라 불리우며 각광을 받았던 강아지풀이 오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까닭은 무얼까?


하루종일 그늘하나 없는데 홀로 뜨거운 햇쌀을 맞으면서 시들지 않고 서 있다.


「 무상초(無常草)」

덧없는 삶 한낱 꿈에 불가하거늘

욕심없이 흘러가라.

노래로 공양한다는 심진스님의 목소리가 산사에 간 느낌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