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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Mar 01. 2023

봄바람


1.  봄바람.


계절은 어김없이 순번에 따라 자리를 바꾸 첫눈 오던 날 약속도 없는 길을 나서며 설랬던 겨울도 저만치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고 있다.


아직은 옷깃을 여밀 만큼 바람이 차가운데도 몸으로 느껴지는 봄소식을 기다리는게 답답 서둘러 봄을 찾아 나선 상춘객들의 조바심은 겨끝 찬바람일랑 아랑곳 없다.


애당초 먼 남쪽에서 불어오는 훈풍을 차분하게 기다릴 생각은 아마 없었을거다.


맞이 이벤트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바람에 팔랑거린다.




삼월의 오후 ○○역.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햇살이 따스한 봄 날이다.


○○역 주변은 언제나 오가는 인파로 북적북적거린다. 사람들 만큼이나 비둘기떼들까지 역 주변으로 우루루 떼지어 몰려드니 더욱 혼잡하다.


인적이 뜸한 전철역 뒷편 골목길로 접어 들려는데 찬바람을 내면서 달리듯 걷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에 놀라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오른다.


엄마손을 잡고 걷던 아이가 화들짝 놀라 양손에 쥐고 있던 붕어빵을 그만 땅바닥에 떨구었다.


순간, 비둘기들이 몰려와 아이가 떨군 붕어빵 조각에 머리를 조아리며 한참을 사투를 벌이다 붕어빵조각이 더는 남지않았는지 무리에서 벗어난 두마리의 비둘기가 내가 서있는 근처 가까이 다가와 수다를 떤다.



비둘녀 A : 어머 쟤네들 좀 봐

                  바람났나봐.

비둘녀 B : 그래 그런가 보네.

                  혼자 도도한 척 하더니

                  비둘C 쟤 볼때마다 재수없다야.

비둘녀 A : 비둘남도 실망이야.

                  비둘C 쟤가 뭐 볼게 있다고.

                  몸매도 별로고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기나 하는데 비둘남

                  도 눈이 삐었지.


비둘녀 B : 지눈에 안경이지 뭐.

                  비둘남 K 쟤도 별루야.

                  우린 붕어빵이나 마저 먹자.


비둘녀 A와 B가 붕어빵 조각을 뜯으면서도 고개를 돌려가며 연신 뒷담화를 날리는 건너편에는 푸른깃을 가진 비둘남과 가냘픈 목선이 돋보이는 비둘녀 C가 다정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비둘남 K : 붕어빵은 많이 먹었습니까?

비둘녀 L : 전 땅에 떨어진 거 잘 안먹어요.

비둘남 K : ...... 아 그럼 저기 ○○바게트 앞으

                 갈까요. 거기가면 비닐봉지안

                 에 포장된 맛있는 빵 많습니다.

비둘녀 L : 괜찮아요. 전 바람이 좋아서

                  나왔어요. 같이 걸을래요?

비둘남 K : 그러죠. 그리고 저도 사실은

                  땅에 떨어진 거 안먹습니다.


비둘남 K와 비둘기 L은 주상복합 상가 뒷편에 있는 인적이 드문 작은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둘기 A : 어머 비둘녀 C. 오랜만이예요.

                  한 동네 살면서도 얼굴 잊어버리  

                  겠다. 어디 갔어요?

비둘녀 L : 그냥. 바빴어요.


비둘녀 A는 방금전까지도 무수히 뒷담화를

날렸던 일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비둘녀L의 목에 자신의 목을 부비며 호들갑을 떤다.


비둘녀 B는 가뜩이나 뾰족한 부리를 삐죽거리며 냉담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가 비둘남 K를 곁눈으로 흘기며


누구? 아 저기 교회종탑에 사는 그 분이시네. 안녕하세요. 근데 둘이 사귀나봐.


특유의 까칠한 성격 그대로 한마디 던진다.


비둘기 A와 B  그리고 L은 같은 동네에 살고

모임도 같이 하며 때론 멀리 ○○산이나 ●●천으로 단체여행도 다니고 가끔씩은 까페에 모여 수다도 떨었던 적당히 친분이 있는 사이다.


얼마전엔 비둘녀 A가 생일이라며 비둘녀 B 는 물론 L을 포함해 서넛의 비둘녀를 자신의 집 아파트옥탑으로 초대해 밤을 샜었다.

그런데도 안면을 무시하고 비둘녀 L을 향해

깐족거리며 속보이는 너스레를 떨고 있는 것이다.


K는 비둘기 사회에서 매너좋고 인정많고 책임감도 강해 다들 신뢰가 깊다. 외모는 누와르지만 속은 다정다감하다며 특히 비둘녀A, B가 속한 모임의 대표인 비둘녀C의 무한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어

인근 비둘남들이 을 낼 정도의 호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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