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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Feb 06. 2023

어느 눈 내린날의 풍경.

원 프러스 원인데


전철이 마포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한강의 풍경을 아침 저녁으로 보고다니던 몇년전과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자리에 앉지않고 출입문에 난 창으로 한참을 쳐다보며 그때 그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데


내 나이는 되보이는 왜소한 체격의 사내가 통로에 서서 꾸벅 인사를 한다.


자신의 허리춤께나 되는 상자가 실린 카트를 세우더니 그 속에서 뭔가를 꺼내들고는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 승객여러분께 잠깐만 광고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요즘같은 겨울에는 길이 얼어붙어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이 많이 생기게되는데 그럴때를 대비해 꼭 필요한 상품 아이젠을 하나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신기도 편하고 가볍고 간편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원래는 한쪽에 오천원인데 시중에서 이만한 제품을 사시려면 만원은 주셔야하는데

오늘은 공장도 가격보다도 싸게 특별히 저렴한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한쌍에 오천원. 거기다 원프러스 원 하나를 더드립니다. "


이번 기회를 놓치지말라며 구매심리를 자극하는 멘트를 끝말에 붙이고 광고를 마친 사내는 가뜩이나 작고 왜소한 체구를 구부려 상자안에서 비닐케이스에 든 아이젠 몇개를 양손에 꺼내 들고 좌석마다 돌며 사람들에게 건네는데 다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저마다 핸드폰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아이 특별행사에는 시선도 주질않고 있었다.


아이젠을 판매하는 사내도 사람들의 반응 익히 짐작이나 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누가 전철안에서 물건을 산다고 팔러 다닐까 '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사내가 카트손잡이를 잡고 다음칸으로 이동하려는


"  아이젠 양반! 나 아이젠 하나 줘요. "


외면하고 있다가도 목소리가 하도 커서 누가 아이젠을 사는지 호기심에 목소리나는 쪽으로 사람들 다들  고개를 돌렸다.


노약자보호석에 앉아있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손짓으로 아이젠을 판매하는 사내를 부르고 있었다.


등산갈때 신을거라며 흐믓한 표정을 짓는 노인에게 아이젠을 건네는 사내의 표정이 처음 광고를 할때보다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잡상인들의 출입을 단속하는 바람에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십여년전만해도 자주 접하는

풍경이었다.



인터넷이나 홈쇼핑도 없던 8,90년대초 그때는 시외버스안에서도 호객행위들이 빈번하게 있었다.


순진했던 시절의 추억들이다.


8,90년대 시외버스를 타면 말쑥하게 양복으로 차려입은 두 사내가 올라와 한 사내는 앞에서 경품추첨광고를 하고 한 사내는 좌석마다 돌며 번호표쪽지를 돌린다.


번호표를 다돌리고나서 앞에 서있는 사내가 당첨번호를 부르며 당첨된 사람보고 손을 들라고 하면 번호표를 돌리던 사내가 번개같이 달려와 당첨되셨다며 시계를 건네주고는 할인가를 요구하는데 잔뜩 위압감을 주니 더러는 울며겨자먹기로 가짜 로렉스시계를 사고말았다.


그새 아이젠 장사꾼 사내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었고 노약자보호석에 앉아있던 노인도 하차를 했는지 보이질 않았다.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큰 눈이 내렸다.


특히 서울의 동북부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더니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아파트 담너머 뒤로 이어진 숲속이 눈으로 뒤덮여 작은 산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당산역 출구를 빠져나오니 눈길이 제법 미끄러웠다.



' 아이젠을 하나 살 걸 그랬나. 원 프러스 원이었는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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