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문 위에 부착된 대형 스피커가 부르르떨며 요란하게 울렸다. 문틀이 흔들릴 정도로 큰 경보음이 울린 건 드문 일이었다.
"비상! 공습경보. 공습경보.
금일 오전 5시 30분 공습경보를 발령한다.
드래곤플라이 비행단 전 대원들은 지금 즉시 출격 대기하라.
북한산 백운대 상공 북쪽 100m 전방에서 모스키토군 2개 편대가 남하하고 있으니
선발대 레드윙 편대는 지금 즉시 출격하라."
대원들은 최근 몇 년간 울리지 않았던 경보기가 갑작스럽게 울려대자 실전이 없어 나태해진 습관 탓에 다들 쉽사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이 야심한 시간에 모스키토 이놈들은 잠도 없냐. 개자식들."
"모스키토 쟈들은 시도 때도 읎이 문다야. 아주 징헌 놈들 이랑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침대위에 걸터앉은 밀잠 대위와 잠충 대위는 반쯤은 감긴 눈을 연신 손으로 부비며 머리맡 사물함에서 전투복을 꺼내 입으면서도 반복해서 울리는 비상공습 경보때문에 잠이 깼다며 투덜거렸다.
"다들 서둘러라. 1분 안에 신속히 비행대에 집결한다. 실시! "
편대장 물잠 소령은 모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뼈속 깊이 사무친 원한도 있는데다 매사 철두철미한 군인정신으로의 정신무장과 행동을 앞장서 실천해온 터라 다른 대원들보다도 앞서서 날개를 퍼득이며 비행점검을 마친 후 뭉그적거리는 대원들을 독려하며 출격준비를 재촉하고 있었다.
"모스키토 개자식들 때문에 발 뻗고 맘 편히 잠도 한번 못자니 피곤해서 비행인들 제대로 하겠냐."
"야! 밀 대위. 그만 투덜대라. 오늘 비행 선두는 밀 대위 너다. 신속하게 준비하라."
"예! 알겠습니다."
비상소집이 내려진 지 불과 5분이 채 안되 대원들은 모두 다 비행장에 집결했다. 편대원들 가운데 편대장인 물잠 소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공중에서의 실전 투입이 처음이다. 드래곤 플라이 비행학교에서 실전과 다름없는 훈련을 했다고해도 전투경험이 전무한 햇병아리요 초짜들이다.
주로 후방에서 지원 임무를 맡아온 밀잠 대위와 잠충 대위 정도가 그나마 비행경험이 있는 편이라 선두에 서라 한 것이다. 하지만 적과의 직접적인 공중교전 경험이 없기때문에 위급한 경우에 언제라도 자신이 선두에 나설수 있어야 하기에 편대장 물잠 소령은 밀잠 대위 뒤를 자신이 지원하기로 대오를 편제하였다.
"박멸! 편대 출격준비 완료했습니다."
어느새 밀잠 대위는 편대원들을 비행대오로 정렬하고 출격 전 준비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편대장 물잠 소령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도열해있는 대원들을 향해 전의를 다지는 구호를 외치게 한 후 활주로를 이륙, 비행에 나섰다.
지난 여름 비가 자주 내려 모기들의 침입이 잦을거 라는 정부의 특별담화문도 있었기에 비상공습에 대한 경계는 늘 해왔었다.
부족한 실전경험도 크게 염려가 되진 않았다.
가을이 깊어진 북한산은 아직은 이른 새벽임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단풍이 빨갛게 물든 산 아래를 내려다보다 편대장 말잠 소령은 문득 지난해 여름 갑자기 내린 큰비로 가족들을 잃게 된 가슴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최근 몇년간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굶주림에 허덕이게 된 모기들이 잠자리들의 집단 둥지를 무단침범하면서 잠자리들은 졸지에 안락한 보금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둥지를 잃게된 말잠소령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마귀와 직박구리무리같은 천적들을 피해 저공비행을 해가면서 몇날 몇일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갈대숲이 우거진 늪지대부근에 둥지를 마련했다.
키가 크고 촘촘한 갈대잎들은 자연스럽게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든든한 방어벽이 되주었고 수량이 풍부한 늪이라 먹을 것 또한 풍족했다.
자신의 가족들이 편안하게 지낼 둥지를 마련해주었다는 기쁨도 잠시 수 십년 만에 내린 홍수로 늪지대 상류에 있던 둑이 터져 안전지대였던 늪지대 전지역에 급류가 흘러들어와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아이들을 잃고 말았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어버린 참극을 겪고 난 후 말잠소령은 오랜시간 주위동료들과의 접촉도 끊어버린채 두문불출 해왔었다.
가슴시린 슬픔과 분노를 애써 참고 짓눌러왔지만 북한산 상공을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 긴박한 상황하에서도 오색 단풍이 곱게 물든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애잔한 감상에 잠기고 있었다.
그때 잠충 대위의 긴박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편대장님! 전방 3시 방향에 2개 편대 규모의 모스키토 군이 나타났습니다.”
“여기는 한강, 전 대원들은 2인 1조로 흩어져 양쪽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한다. 공격 개시! ”
쾅! 쾅!
“여보!!!.”
쾅! 쾅! 쾅!
“ 오늘 재활용폐기물 버리는 날 아니야?
얼른 일어나 재활용 쓰레기 좀 분류해서 갖다 버려.
허구 헌 날 거실바닥에서 뒹굴다 잠만 자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지?
그리고 잠자면서 뭐라고 중얼거린 거야? 꿈꿨어?
밀 무슨 대위가 어쩌구 모스키토가 공습을 해온다느니 헛소리나 질러대고.
어떻게 머리댈곳만 있음 코를 골고 자냐. 너무 너무 신기하다.
아파트 뒷산이나 올라가든지 아니면 요 앞에 공원이라도 돌다와.
퇴직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늘어져 있으면 어쩔려고 그러냐? "
“...... 알았어.”
워낙에 논리가 정연하고 박학다식한 아내의 공습 역시 한번 시작되면 마침표와 쉼표도 없이 줄기차게 터져 나온다. 그때마다 억울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었지만 섣부르고 준비되지않은 어설픈 반발은 오히려 전면적이고 무자비한 대공습이 발발하기때문에 입술을 곱씹어가며 참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나마 거실바닥에 비스듬이 누워 하루종일 넷플릭스 공짜영화를 씨리즈로 즐기는 안락함마저 잃지않으려면 덜떨어진 맹구나 영구처럼 약간은 정신줄 놓고 사는 게 백번은 속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