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다냐!
K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출공장을 했는데 자금 사정이 악화되자
자신의 집 빌라 옥상에서 투신을 했다.
목숨을 끊기 두어시간전 같은 빌라에 사는 지인과 점심식사를 하며 막걸리 한잔을 할때도 전혀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K의 아내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않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문상을 간 남편의 지인들을 향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문상을 마치고 최근까지도 K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던 B로부터 상세한 내용을 추가로 더 들을 수 있었다. 수십년만에 만나는 J도 옆자리에 와 앉았다.
K는 가정환경이 어려워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사출공정기술을 배운 후 공장에 취업을 했는데 책임감이 좋고 손재주가 뛰어나 능력을 인정받아 남보다 빠르게 작업반장도 되었다.
기술도 좋고 거래선도 알게 되자 K는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공장을 차렸고 그동안 쌓은 인맥과 신용으로 직원을 십여명씩 고용할 정도로 사업실적도 좋았다.
집도 넓은 아파트로 옮겨가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고 했는데 거래처로부터 자금결재가 부도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하게 공장운영에 어려움이 생겼다.
처음 몇번은 은행에서 발행한 어음으로 결재해주던 거래처들이 어느 순간부터 문방구어음으로 결재하기 시작했고 사람좋은 K는 자신의 집을 팔아 직원들의 임금을 지급하는 등 운영자금을 근근히 조달해오며 버텨왔는데 설상가상 하나뿐인 아들이 빈번하게 사고를 쳐서 수시로 경찰서에 붙들려가게되자 그 뒷처리를 위해
쫒아다니면서 가슴앓이가 심했다는 말을 여러차례 털어놓았다고 한다.
K의 소식을 듣고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K의 점퍼 안주머니에서 나온거라고 그의 아내가 거래처에서 수기로 써준 문방구 어음 한다발을 건네주면서 오열을 하더라는 말을 전하는 B는 따라줄 사이도 없이 연거푸 소줏잔을 들이켰다.
문방구 어음.
말그대로 은행이 아닌 문방구에서 파는 어음양식에 적은 지불각서이다. 법률적으론
차용증서와 같으나 채무자가 지불기한을 어기거나 약속을 이행하지않을 경우 채권에 대한 지불보증을 받을 수 없어 부도의 위험이 크다. 이렇듯 부도의 위험이 큰데도 문방구어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중소규모 영세사업장들은 원청기업으르부터 거래가 끊기거나 하청을 주지않기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위험부담을 감수한 채 문방구어음이라도 받아두는 것이다.
나와 K와 B 그리고 J는 죽마고우다. 면소재지가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나는 초등학교때 도회지로 나와 초중고를 다녔고 K와 B와 J는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다.
J는 아버지가 군인장교여서 군부대 근처 관사에서 살았는데 학교까지는 2km 가까이 떨어져 있어 늘 아버지의 관용차인 지프를 타고 등교를 했다.
당시 학교에 자동차를 타고 오는 건 J뿐이었다.
지프차에서 내리는 J를 교문앞에서 만나면 다들 J에게 다가가 지프차를 만지며 부러워했다. J는 몇몇 친구를 수업이 끝날때 지프에 태워 주곤 했다.
K는 J와 같은 반 짝이라 절친했다. K는 J아버지 지프차의 주 탑승객이었다.
공부는 중간 정도했으나 J는 덩치도 크고
운동도 제법했다. 더군다나 축구공도 두개씩이나 갖고 있어 운동장에서는 대장노릇을 했다.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는
" 축구하고 싶은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자신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펴서 높이 쳐들고 자신의 주위로 다수의 친구를 불러모았다.
J의 눈에 찍힌 나를 비롯한 마이너리그 아이들은 별수없이 뒷동산이나 개울가로 달려가 전쟁놀이를 하거나 고무신을 벗어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그시절 대부분의 친구들은 깜장 고무신을 신고 있었는데 J와 교회 목사님 아들 C와 정육점하는 집 D, 그외 두엇 정도만 운동화를 신고 있어 고무신을 신은 아이가 달리기를 잘한다쳐도 운동화를 신은 아이와는 공을 차고 노는 축구기량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났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K의 사정을 털어놓는 B와는 달리 J는 어린 시절 K와의 추억을 늘어놓는데 어쩐지 귀에 와닿지않았다.
아버지는 육군 중령 대대장인데 J는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스스로 육군대장이 되어 대장놀이를 즐기곤 했었다.
선생님도 J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수련장이나 전과와 같은 학습교재를 나눠주기도 하고 한달에 한두번 쯤 나오는 옥수수로 만든 배급(급식)빵과 연유를 나누어줄때도 우리들보다 하나씩은 더 주곤했다.
J는 중학교 졸업 후 자신의 아버지가 예편을 하자 서울로 이사를 가고 B역시 같은 시기에 타지로 이사를 갔다.
K는 고향에 남아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다가 서울로 올라와 공장을 다니면서 기술을 배워 자신의 공장을 차렸다가 안타깝게도 불행한 일을 당하게된 것이다.
B와 고인이 된 K와는 어른이 되고나서도 가끔 만났지만 J와는 수십년이 지나고나서야 몇년전 동창회 모임때 오랜만에 만났다.
휴양림을 빌려 밤을 새가며 술자리를 가지다 자연스레 옆자리에 J와 함께 하게 됐는데
대기업에 다니다 퇴직했다며 주식에 투자해 큰 손해를 봤다가 최근에 조금씩 복구를 했다며 자신의 과거사 대부분을 주식이야기로 할애했었다.
그때 건너편에 앉아있던 K도 J의 주식투자 이야기에 간간히 맞장구를 치며 호응을 하다가 내게 반박을 당했었다.
자신에게 일을 맡기고도 대금결재는 미루고
주식투기나 하고 내기골프나 치러 다니는 도둑놈들 조심하라고 취기가 오른 김에 목소릴 높였었다.
K에게 문방구어음을 남발하고 대금결재 약속을 지키지않은 원청업체 사장들도 부조봉투를 들고 문상을 왔다갔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취기가 올라서 더 이상 상가에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와
장례식장 주차장에 우뚝 서있는 큰 소나무밑 벤취에 앉아 담배 한대를 입에 무는데 B가 따라 나왔다.
문득 B가 자신의 핸드폰을 열더니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저께가 내 생일이었다며 사위와 딸들이 유명 고깃집에서 축하파티를 해주고 선물로 금송아지를 주더라며 자랑을 했다.
핸드폰 속엔 금송아지를 받아든 B와 그의 딸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천만원이 훌쩍 넘는다는 금송아지를 들고서 말이다.
" 내일 난 다른 약속이 있어 장지엔 못간다. 그만 가야겠다 " 며 일어서자
K와 절친했던 B는
" 운구할 사람도 부족하고 죽은 K와 K의 아내가 안쓰러워서 내일 새벽 장지까지 따라 갔다와야겠다 " 며 손을 내밀었다.
주식. 가상화폐.
돈놓고 돈먹기. 결국 남의 돈을 따먹는 일.
잃는 사람이 있어 따는 사람이 있는 투기와 도박으로 변질된 주식, 본래 기업의 투명하고 정직한 운영으로 생긴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는게 목적아닌가?
전 국민의 주식화.
불과 십여년전만해도 내가 다녔던 직장에 주식하는 직원은 극소수였다. 그만큼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사회연대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면서 개인주의 물질만능 투기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
돈이란 단지 상품 교환의 매개물일뿐인데.
주제넘은 생각에 골몰하다보니 어느새 마포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돈이면 최고냐!
돈있다 으시대고 잘났다 뽐내지만
겉 좋고 속 비면 쓸모가 있나요
돈 있다 거만해도 이 세상 모든 것이
맘대로 안 되지 돈이면 최고냐
돈이란 떠도는 것 때오면 버는 것
언젠가는 내 것이다 배도 한번 나올게다
돈이면 최고냐 빈손으로 가는 인생
----- 가수 : 남진(196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