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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Aug 21. 2023

물신주의와 순수에 대하여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 스마트폰형 인간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혼자노는게 재밌어졌고 스마트폰의 위치는 언제라도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포진, 반경 1m안을 채 벗어나지 않는다.


퇴직하기 전까지는 F북, T그램, I스타, T윗 같은 SNS 류의 계정은 아예 만들지도 않았거나 만든 것도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았다.


딱히 필요하지도 않았고 얼굴을 맞대고 직접 대면하며 행동하는 걸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공지글이나 전달사항을 주고 받기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올려야 하니까 어쩔수없이 밴드나 카톡 정도는 빈번하게 사용을 해왔지만 스마트폰의 쓰임새는 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혹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는게 전부였다.


그저 손에 든 전화기로만 사용해오다가 퇴직을  깃점으로 해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퇴직을 하니 만나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시원찮은 능력이지만 글쓰기나 그림그리기 사진촬영 등 가물에 콩나듯 가졌던 취미의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 역시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루에 두갑 조금 넘게 즐겨오던 담배를 제끼고 대신 스마트폰이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톡톡 두둘기면 화면이 열리고 기능별로 어플리케이션이란 로고들이 정열된 화면이 먼저 뜬다.


구글이 만든 안드로이드라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전용 운영체제안에 기능별 작은 소프트웨어를 어플리케이션이라 하는데

안드로이드와 어플리케이션 바로 이 친구들

이 있어 사진 인터넷 음악 SNS 네비게이숀 인증서비스 유튜브 등을 무료로 편리하게 손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로 얘기하자면  컴퓨터라는 기계(하드웨어

)를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명령체계인 윈도우와 거의 같은 거다.


구글에서 제공하는 플레이스토어라는 무료 어플가게에서 필요한 어플을

검색해 다운로드만 하면 어떤 일이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혹자는 스마트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를 에디슨에 버금가는 문명의 발명가요 세상을 바꾼 위인이라 극찬을 한다.


하기사 만약에 전기가 없었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암흑과 같은 어둠의 세계였을 것이고 스마트폰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네 삶도 조선시대쯤으로 회귀해버려 호롱불이나 밝히고 살았을테니 충분히 공감이간다.


편리함을 추구하기에는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 한편으로 억세게 운이 좋다.


스마트폰 이전시대에는 직장 또는 단체와 같은 사회집단에의 직접적인 참여와  교류를 통해서만 사회활동이 가능했고 연대와 소속감을 갖고 정치적인 요구와 행동을 분출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폰이 세상살이의 필수품이 되버린 지금은 혼자서도 할일이 무수히 널려 있다.


스마트폰이 손안에 있는 한 혼자있어도 혼자가 아니다.

불특정 또는 특정 다수의 사람들과도 내가 의지와 욕구만 발동한다면 언제든 즉시 교류하고 소통도 가능해졌다.


일방통행만이 가능했던 시대에 쌍방 내지는 다수와도 친교를 맺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촘스키, 수잔 서랜든, 한수산,

호세 무리키,  강산에 같은 유명인사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가 있으니 좋은 세상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무명의 작가들도 자신의 글을 혼자서도 책으로 발간할 수 있 나같은 얼치기도 스마트폰을 손안에서 놓치 못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치가 양지가 있으면 그늘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스마트폰 속 세계란 가상의 공간에 혼자있어 자아실현과 자기보호를 위한 욕구 발산은 차고 넘치고 언제라도 보강도 가능한 반면에


연대보다는 개인을

팀웍보다는 개인주의가

감성보다 감정이

사고보다 직관이

우선시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코로나 백신을 전 지구인에 주사해 통제가 가능한 칲을 심는다는 프리메이슨류의 음모론이야 무시한다쳐도 일상의 모든 데이터를 기록 저장해놓은 스마트폰이 빅브라더의 손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다니까

두려운 생각까지 든다.


자동으로 입력되고 취합된 개인의 데이터를 가지고 감시시스템으로 일상을 통제하고 정보를 독점해 굴종하게 한 뒤 절대권력을 휘둘러 모든 사람들을 노예화한다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독재권력 오세아니아같은 빅브라더가 등장하는 암흑의 세상이 도래하게 될지 알수 없는 일이다.


돈으로 등급을 매기고 실적성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유행과 추세를 쫒아 능력을 저울질하는 물신주의가 판을 친다면 빅브라더가 실재할

 있다고 본다.


인간에게 감성이 없으면 독재시대가 와도

분노가 일어나지않을 것이며 문학을 논할 실력은 못되지만 글을 쓰는 작가에게서 순수한 감성을 외면하도록 강요한다면 문학은 묘비명에나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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