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고목의 등걸 같이
웅크린 절망의 가지 끝에서
파릇한 새순으로 돋아나는
희망의 풋풋한 노래가
종달새 지저귐 마냥 더욱 정겹다.
따스한 햇살 그리운 하늘가
간밤에 본 고운 꽃꿈들이
아지랑이 속에서 보석처럼 빛날 때
향긋한 남풍의 고운 숨결에
꽃보라처럼 숨 가쁘게 휘날리는
아! 이 황홀하고 찬란한 봄날.
둘째형의 묘비석 위에 새겨놓은 봄날이란 제목의 시다. 작자는 물론 형이다.
형이 시를 100여 편이나 써두었다는 이야길 형의 장례식이 끝나고 삼우제 지내던 날 누나들과 형의 맏아들로부터 첨 들었다.
형이 묻힌 무덤 옆에 그늘막을 쳐놓고 살아있는 형제들은 빠진 사람 없이 다 모였다. 판단력 뛰어나고 현실감 좋은 큰누나가 먼저 제안을 했다.
어느 날 불쑥 전화해서
누님 드라이브 가고 싶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라며 허허 실없이 웃어주던 내 동생.
맘 좋고 착한 내 동생 다신 볼 수 없어서 서운한데 동생이 남긴 시집을 내자. 거창하게 출판사에 연락하고 그런 거 하지 말고 가족들이나 형제들이 형 또는 오빠 동생을 기억할 유품으로 시집을 내자고.
똑똑하고 추진력 있는 큰누나의 논리 정연함에 작은 이의조차 누구 하나 제기하지 않았다.
나 역시 무조건 찬성했다. 형은 나에게도 형을 그리워할 많은 추억이 있어 형이 쓴 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가끔씩 형이 보고 싶을 때 그가 쓴 시라도 보아야 하니까.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았지만 한 번도 권위를 내세우질 않았다.
형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다.
화내고 발끈해 성질을 부린다거나 다른 사람과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맘 좋고 너그럽고 착한 형이 지금 나와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보고 싶다.
화를 가슴으로 삭이고 울분을 참으며 쉽게 따라 흉내 낼 수 없는 애절하고 구성진 형의 옛 노래 휘파람 소리는 멀리서 들어도 보지 않아도 형인 줄 알았다.
홍민의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고와 고향에 찾아와도 가 주 레퍼토리다.
기교는 없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로 구성지게
불러 특히 누님뻘되는 동네 여인들이 좋아했다.
죽기 얼마 전에 어머니 모시고 형제들끼리 갔던 노래방에서도 홍민의 찔레꽃을 불러 모두 다 돌아서서 눈물 흘리게 했었다.
다니던 농협 그만두고 돈 좀 한번 벌어봐야겠다며 남의 땅 만평이나 빌려 사료용 옥수수 일하는 사람들 일당 주고 심던 날 경사진 밭 맨 위 둔덕 오디나무 그늘 밑에 앉아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파란만장했던 고단한 현대사 속 젊은 날의 사연들을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기억해내 내게 들려주던 형.
유난히 가족애 형제애가 강했던 성격 이어선지 감동적이고 생생하고 구수한 입담이 아주 좋았다.
형이 건네준 옛날 우리 집이 겪은 애환과 추억들을 형이 가고 없는 지금 기억해 줄이 나밖에 없는데 기록으로 옮기려니 힘들다.
형은 다른 형제들과도 생김이 다르다. 눈도 가장 크고 특히 코는 유태인들처럼 매부리 코다. 체격도 키가 180 정도였고 체중도 100kg이 조금 넘는 전형적인 장사형 체형이었다.
형이 국민학교 일 학년 때쯤인가로 들었다. 밖에서 놀다가 갑자기 집에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책가방에 옷가지 등을 챙기고 나서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는 쪼끄만 게 기도 안찰 일이라 어이없어하면서도 왜 그러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붙잡고 물어보니 동네 아줌마들이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애다 너희 집 찾아가라 했다 그래서 자기 집 찾으러 가려고 한다 고.
주워 온 아들이 아니라고 돌사진을 증거로 보여주며 한참을 달래주니 가방을 벗더란다.
가슴에
壇(단)을 쌓고
그리움의 불꽃을
지피면
그대는
아스라이 멀리 있고
나는
지금 여기 남았지만
우리는
항상 咫尺(지척)에 있다.
---------- 「그리움」 별 립 씀
형의 그리움이 무얼 향한 건지, 누구를 그리워했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늘 겨울에서 봄 사이에 서 있었던 거 같다.
내일은 소주 한 병에 북어포 하나 사서 형의 산소에나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