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공주파 김미애 3

3.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by 김운용


여학교와 우리 학교 사이에 있는 운동장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

얼굴도 화끈거리고 이마에 땀마저 흐른다. 내가 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선건 순전히 미애 때문이다.


여학교를 향해 계속 걷는 동안 몇 번이고 여학교 쪽으로 발로 차 건네주고 돌아가고 싶어도 미애가 혹 보고 있을까 봐 끝까지 참고 간다.


너 뭐니?

예? 이 공 여상(여자상고)껀데......


버벅거리며 여학교 선생님한테 공을 얼른 건네주는데 갑자기 와와ㅡ 창문으로 여자애들이 이른 아침 참새떼처럼 소리를 지르며 난리도 아니다. 너무 쪽팔렸다.


내 일생에 오늘처럼 쪽을 팔아본 적은 더 이상 없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여학교 쪽으론 아예 발길을 끊었다.

체육시간에 여학교 쪽에서 배구공이 내 앞으로 넘어와도 못 본 체 흘러 보냈다.






미애는 오빠나 남동생은 하나도 없고 딸만 일곱인 데 위로 언니 셋 아래로 여동생 셋 미애가 딱 가운데다.

우리도 3남 3년데 미애네도 대식구다.


미애 아버진 탄광에서 일할 때 다친 사고로 허리를 심하게 다쳐 일도 못하고 늘 집에만 있었다. 탄광에서 일하면서 진폐증이란 진단도 받았는데 결국 폐결핵으로 미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사람 좋고 재주 많은 우리 아버지가 미애 아버지 무덤 땅도 이장님한테 말해서 구했고 상여까지 준비해주셨는데 미애도 우리 아버질 큰아버지처럼 좋아했다.


아버지가 뜨개질로 미애 벙어리장갑을 떠준 적도 있다.


미애 언니들은 고등학교도 다 안 마치고 서울로 취직하러 갔고 바로 위 언니만 이 도시에 있는 kyy란 자크 공장에 다녔다. 미애 언니들도 다 예뻤다.


엄마를 닮아서 애들이 다 착하고 예뻐. 특히 미애는 우리 며느리 해야겠다. 크면.

미애 엄마가 우리 엄마 가게에서 잠시 도우며 지낼 때 우리 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미애 엄마도 고생을 숱하게 해서 그렇지 인물도 좋고 착하다며 우리 엄마가 중앙시장 양키 물건 파는 뚱땡이 아줌마한테 미애 엄마를 자기 동생처럼 돌봐주고 일자리도 알아봐 주라며 그렇게 소개했다.


양키 물건 파는 뚱땡이 아줌마는 미애 엄마를 자신이 잘 아는 미군부대 앞 양색시 누나들이 일하는 포주 집에서 빨래도 해주고 밥도 해주는 일을 구해줬다.


그러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미애네는 아예 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 거다.






고2 겨울방학 때부터 난 누나 친구 준식 이형네 집에 거의 매일 놀러 갔다. 준식이 형은 누나 국민학교 동창이고 준식이 형 동생 정준규는 내 동네 친구다.


준규보다 준식이 형이랑 더 친했다. 준식이 형은 기타도 잘 치고 팝송도 모르는 게 없다. 월간팝송책도 준식이 형이 가져가서 보라고 몇 권씩이나 그냥 줬다.


준식이 형방에서 같이 밤새 팝송도 부르며 놀다 형방에서 잔적도 여러 번 있다.


준식이 형방에서의 밤샘이 내 인생을 살짝 꼬이게 했다. 준식이 형은 명동에 있는 돌체랑 본전 다방에서 Dj를 하고 있다.

형이 자신의 보조를 하라며 꼬시는 통에 얼치기 Dj보조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준식이 형의 소개로 본전 다방 뮤직박스란 곳에 처음 앉아 마이크를 잡던 날 문득 체육시간이 떠올랐다. 처음이라 다리도 후들거리며 떨리고 식은땀이 흘러 정신을 못 차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준식이 형한테서 LP판 배치며 찾는 요령이며 턴테이블 조작법이며 며칠 동안 영업 끝나고 텅 빈 다방 안에서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근 한 달을 헤맸다.


DJ 보조는 메인이 방송 멘트 하라 지시할 때까지 말없이 신청곡만 찾아 틀어만 주기 때문에 처음엔 사실 부담이 별로 없는데도 남 앞에 선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남들은 한참 대학 예비고사 입시공부에 밤을 새우는데 난 뮤직박스에서 밤을 새웠으니 인생이 거기서 살짝 꼬여버린 것이다.






고3. 12월 초쯤이다.

수업 끝나고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는데 1,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절친 태호가 야 급하다 네가 대타로 가야 한다며 마구잡이로 손을 잡아끌어 단체미팅 장소에 나갔다.


가는 길에 준식이 형한테 들러 사정을 얘기하고 로마 제과로 달려갔다.


자리에 앉으며 어느 학교냐 물으니 여상애들은 아니야. 인마. 태호가 여상 빼고 삼대삼 짬뽕이라며 자신 있게 딱 자른다.

암튼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기다리는데 여자 애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는데 별로다. 셋다 또 노는 애들이다.

재주도 능력도 좋다 했더니 태호도 이젠 약발이 다 떨어졌나 보다.






자리를 끝내고 미안한 마음에 다시 다방으로 갔더니 준식이 형이 여전히 박스에 앉아있었다.


미안해. 형. 내가 할게 했더니,

지금 몇 신데. 인마.


7시 메인 타임이구나.

형 자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 옆으로 내려놓은 판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신청곡 쪽지를 들이민다. 총세장인데 준식이 형한테 순서대로 넘겨주려고 정리하며 펴보니 용식아. 이 노래 틀어줘.


왠지 낯익은 글씨다.

형한테 신청곡 쪽지를 주고는 누군지 궁금했지만 일하는 시간에 개인행동하다 걸리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일 그만둬라던 준식이 형의 경고가 걸려서 뮤직박스 바닥에 다시 쪼그려 앉았다.


30분이나 지났을까 또 다른 메모지에 나

간호보조 학원 다닐 거다. 연락해.


미애 구나.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본전 다방에서 일하는 걸 알고 일부러 찾아온 거였다.


간호보조 학원 가려면 공부 좀 해야 하는데 원래도 공부 잘 못했는데 칠 공주애들하고 노느라 공부는 아예 담을 쌓았을 텐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미애와는 참 많은 인연이다. 이사를 갔어도 일부러 만나려고 찾지 않아도 몇 번씩이나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 걸 보면.


전생에 사이좋은 남매 아니면 금실 좋은 부부는 아니었는지 지금까지 참 많은 사연이 쌓였다. 끝.






후일담


미애는 지금 세상에 없다.

간호보조 학원을 다니다 그만두고 룸살롱에 다니며 호스티스 하다가 미국 갔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미애하고 친한 성자 얘기로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