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둣방 사장님- 2. 이호수의 첫사랑

by 김운용


인구 2만의 소도시에서 4km 정도 떨어진 외곽에 있는 항공대대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이호수는 사뭇 희망에 부풀었다.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에서 육군항공대 장교가 되었으며 헬기까지 조종하게 된 자신이 대견하고 뿌듯했다.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동기들과 읍내로 외출이라도 할 때면 항공점퍼만 골라 입고 잔뜩 멋을 부렸다.


20대 팔팔한 총각들이 일주일 내내 부대 병 영안에서만 생활하다가 토요일 오후 부대 밖 세상으로 외출을 하니 시끌벅적 요란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조건이 안돼서 못해본 것들 다해보자며 읍내 온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다방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단골로 가는 식당에서 밤새도록 술독에 빠져보기도 했고 난생처음 당구도 쳐봤다.




이호수는 동기생들의 소개로 몇 차례 아가씨를 만났으나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부모들이 교제를 완강하게 반대해 서 제대로 사귀어 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기는 했지만 이호수는 이미 어려서부터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군생활에 성실히 임했다.


대위로 진급하는 날, 동기들과 부부동반으로 축하연을 갖기로 하고 읍내에 있는 연강춘이라는 중국집으로 갔다. 군인들은 장교 건 하사관이건 간에 직업 특성상 결혼을 일찍들 했다. 이호수의 동기생들도 대부분 결혼을 했다. 오늘 모임에 혼자 참석한 건 이호수뿐이다.


이호수는 술도 잘 못 마시기도 하고 혼자라 어색해 식당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대 빼어 물었다.


" 이제 주조종사가 됐구나 "




담배를 비벼 끄고는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데 동시에 안에서 나오는 사람과 부딪혔다.


미안합니다 앳된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닙니다 반사적으로 답변을 하고는 쳐다보니 짜장면 그릇이 바닥에 엎어져 짜장면이 쏟아져 있다.


" 이거 어쩌죠. 제가 변상하겠습니다."

" 아니에요. 아버지한테 다시 해달라고 할게요 "


누군가 했더니 아까 동기들이랑 중국집 들어올 때 홀에서 봤던 식당 주인집 딸이었다.

아깐 우르르 단체로 들어가는 바람에 스치듯 봐서 몰랐는데 바로 눈앞에서 자세히 보니 예쁘다.


일단 짜장면값을 계산하고 나서 동기들 있는 자리로 돌아왔는데 아가씨 얼굴이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가슴도 두근거리고 얼굴도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모임이 끝나고 영내 숙소로 돌아와서도 눈에서 아른거렸다.


" 담주 토요일에 다시 가봐야겠다. ''




이후 거의 매주 토요일 근무시간이 끝나자마자 중국집을 찾아갔지만 짜장면만 주문해 먹고선 말 한번 제대로 못 걸고 나오거나 아님 바깥에서 서성대다 얼굴만 보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용기도 없었고 일하느라 바빠서 말을 걸 틈이 생기지 않았지만 우선 편지라도 전해야겠다 싶어 국민학교 3학년 남동생을 누나와 나사이에 편지를 전달해주는 연락병으로 만들기로 했다.


사랑하는 선자 씨. 저는 이호수라고 합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가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연애편지를 써서 남동생 편에 십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고는 이 편지 누나 꼭 갖다 줘야 한다며 몇 번이고 다짐받았다. 동생 편에 편지를 일고 여덟 번이나 보냈을까 드디어 답장이 왔다. 연강춘을 들렀을 때 그녀가 웃으며 먼저 인사를 했다.


짜장면 곱빼기 주세요 주문이 미처 끝나기 전에 그녀가 물컵 옆에 쪽지 모양으로 접은 편지를 내려놓았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 선자가.




쪽지에 다른 건 없었다. 그러나 이호수는 뛸 듯이 기뻤다. 영내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편지를 썼다. 이번 주 일요일 만나서 놀러 가자고 써야지.


그렇게 만남이 이어지면서 이호수는 아예 중국집 연강춘 내실로 이어지는 안채에 딸린 방을 세로 얻어 입주하게 되었다. 인생 최고의 선물을 손에 쥘 기회가 의외로 쉽게 생긴 것이다.


장선자의 중개로 중국집 연강춘의 주인이자 선자의 아버지가 이호수에게 월세로 뒷방을 내주게 된 것이다. 이호수와 장선자가 사실상 한 지붕 밑에 살게 된 것이다.


이호수는 훈련도 없고 비상도 아닌 일요일에는 중국집 일도 도우며 마치 가족같이 지냈다.



그러다 얼마 후 비행훈련 중 사고로 불시착하면서 한쪽 다리를 잃게 되었다.

의식을 잃을 정도로 위급했고 몇 차례에 걸친 수술 끝에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선자에게 편지를 썼다.


사고 난 지 석 달만이다. 처음엔 편지도 주고받으며 위로도 받고 했지만 몇 차례에 걸친 재수술과 재활치료로 입원이 길어지면서 차츰 답장이 뜸해졌다.


불안한 생각에 몇 차례 편지를 더 보냈는데 아예 답장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선자의 편지는 오지 않고 일 년이나 넘게 입원해 치료를 받았어도 한쪽 다리를 절단했기 때문에 군생활이 불가하다는 전역 통보만 받았다.


그렇게 전역자 신분이 되면서 국군병원에서 도 퇴원을 해야 했다. 택시운전을 하는 매형이 자기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퇴원하는 날 병원으로 왔다.




서울로 가기 전에 얼굴이나 보려고 2시간을 달려 연강춘으로 갔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쪽 다리를 절단해 목발을 짚고 나타난 내 모습을 선자가 어떻게 대할까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보다 못한 매형이 내가 잠깐 들어갔다 온다며 말릴 틈도 없이 연강춘을 향해 뛰어갔다.


혼자 나온 매형은 아버지가 이제 만날 수 없다니까 잊어버리고 서울로 가잔다.


이호수형님이 내게 들려준 사랑 얘기는 여기서 일단은 끝이요 뒷이야기도 더는 없었다.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더 이상 궁금해하지 도 않았다.


서울로 올라와 불구자라 취직도 어려워 처음엔 힘들었지만 매형이 소개해준 매형 고향 친구한테서 앉아서 할 수 있는 구두수선과 도장 파는 기술을 배웠다. 원래 손으로 만지는 일에 재능이 있어 마포세무서 앞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첨으로 구두수선 도장 파는 일을 시작했다.


누나네가 화재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어린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돌봐주면서 대학까지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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