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둣방 사장님- 3. 재회

by 김운용


공덕동 누님 집에다 짐을 푼 이호수는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의 훈훈함을 맛보았다. 비록 산꼭대기 방 두 칸 비좁은 집이지만 누나와 매형 조카들이 모두 활짝 웃으며 반겨주는데 나한테도 가족이 있었구나 새삼 느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선자와의 추억과 항공대 장교 시절의 기억들은 이제 다 잊자 눈을 질끈 감고 잊으려 애써 보지만 좀체 눈가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특히 선자 그녀는 무엇 때문에 날 만나려 하지 않았을까 이유가 궁금했다. 한번 만이라도 꼭 만나보고 싶다.


매형한테 딱 한 번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해봤지만 누나가 여자 맘 한번 돌아서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야. 싹 잊고 새 출발 하란다. 매형도 맞장구를 치며 처남 가지마란다.


몸도 불편하니 바깥바람 쐬러 외출하는 것도 싫고 하루 종일 방에서 뒹굴기만 할 뿐이다. 만사가 귀찮다.


어떤 날은 조카에게 술 심부름을 시켜 빈속에 소주만 들이켰다. 그렇게 방황하며 몇 날을 보냈는지 기억도 없다.


누나도 매형도 더는 정신 차리라 잔소리도 만류도 하지 않았다. 선자와의 이별보다도 한쪽 다리를 잃은 내 앞길을 더 걱정하기에 상처가 자연스레 아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택시운전 근무 없는 날 매형이 시장에서 자기 친구가 구둣방 쪼그맣게 하는데 막걸리도 한잔할 겸 가보잔다.


참 좋은 사람이다. 매형도 형제가 없다. 고향이 목폰데 아버지가 고깃배 타고 바닷일 나갔다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재가를 하면서 자신을 고아원에 맡겼다.


재가한 엄마를 만나려 고아원을 뛰쳐나갔다가 엄마도 못 보고 잡혀와 심한 매질만 당했다며 누나가 우린 그래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매형 친구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서려는데 꼭 엄마처럼 긴 잔소리를 보탠다.


매형 친구가 하는 구둣방은 공덕시장 입구 전집 옆 벽면에 블록으로 한쪽 벽만 올린 후 지붕을 슬레이트로 덧씌운 노점이었다.


매형 친구란 분도 왼쪽 손 약지 새끼손가락 마디가 짧았다. 그래선지 불구가 된 날 보자마자 대뜸 한마디 던진다.

" 이형 일이나 배워요. 같이 합시다. "




창밖으로 포플러 이파리가 바람에 날린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졌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더 지났다. 이호수는 창밖을 내다보며 시장에서 산 군용 잠바를 꺼내 입은 뒤 목발을 짚고 구둣방으로 출근 준비를 하던 중인데 조카가 삼촌 어제 온 건데 하며 편지를 건넨다.


미안했어요. 아버지가 무섭고 호수 씨 사고 난 것도 두려워서 편지도 면회도 할 수 없었어요.


선자 그녀가 보낸 편지를 보자 다시 설레지만 호수는 다 읽지 않고 이내 편지를 봉투에 넣어 버린다.


몸부림치며 애써 지운 사람이고 내 처지도 달라진 것도 없는데 이제 와서 다시 아프고 싶지 않다. 상처 받는데 익숙한 이호수라지만

이대로 외면하려니 너무 가슴 아팠다.


저녁을 먹은 뒤 누나가 선자의 편지 얘길 꺼냈다. 그때 매형이 선자 찾아갔을 때 직접 만나진 못했고 대신 아버지한테 퇴원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말을 전했더니


" 우리 선 자와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앞으로 오지도 연락도 하지 말라 "


며 주방에서 쓰는 칼을 도마에 내리치고는 호통을 치는 바람에 선자는 얼굴도 못 봤고 챙겨갈 짐이라도 있나 보러 가다 남동생을 만나 주소를 적어 누나한테 주라고 건네주고는 바로 나온 거라 뒷얘기를 해준다.




구둣방 일도 제법 손에 익어서 그런대로 재미를 느꼈다. 일을 마치고 평소대로

구멍가게에 들려 담배 한 갑을 사 피워 물고 언덕길을 올라오는데 집 앞에 누군가 서있다.


다 저녁 무렵 그렇게 우린 다시 만났다. 다시 봐도 가슴 설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 언덕길 아래 다방으로 갔다.


선자 얼굴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담배만 벌써 세대째 피우고 있다.


침묵 끝에 짐 싸서 서울 살라고 올라왔다는 선자의 말은 담배 세대 연달아 피우며 가라앉은 이호수의 맘을 다시 흔들어댔다.

그러나 흔들리는 속맘과는 달리 그냥 집으로 내려가세요. 그리고 목발을 짚고 일어섰다.


" 저 갈 데가 없는데요 " 선자가 뒤따라오며 던진 한마디가 또한번 내 맘을 흔들어 결국 걸음을 세웠다.




매형과 누나는 식당을 차리면서 바빠서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왔다. 호수는

구둣방 일에다 도장 새기는 기술까지 배우기로 했다.


선자와는 혼인식도 안 하고 같이 살기로 했다. 선자 아버지는 끝내 우릴 외면하셨다.


결혼식을 못 올렸으니 미혼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던 건 융통성 없는 이호수가 자신의 아내 선자에게 던진 사랑이요 최고의 조크인 것이다.


결혼식 사진 한 장 없고 면사포도 못 씌웠으니 시름 깊은 아픔을 농담으로 밖에는 할 말이 없었잖은가.


헬기 사고로 인한 후유장애 탓인지는 몰라도 둘 사이에 자식은 없다. 누나네가 화재사고가 난 후 선자가 분식집을 하면서 호수의 조카들을 친엄마처럼 챙겨주었다.


이젠 다자란 조카들이 교회나 절에서라도 결혼식 사진도 찍고 친척이나 친한 사람들 모여 간단히 식사하면 된다며 결혼식을 준비하겠다는데 자신도 아내인 선자도 그 돈 아껴서 니들 장가 밑 천하라며 고사를 했다.


내가 이호수 형님을 끝으로 본 게 2016년이다. 그때까지도 호수 형님 내외는 서로를 선자 씨 이대위님이라 불렀다.


대위로 예편한 지 삼십 년도 더 지났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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