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

1980년 5월 18일

by 김운용

1980년 5월 18일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그때 춘천에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대 부분 학생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난 거의 매일 걸어서 다녔습니다.


운동을 위해서도 아니고 버스토큰을 살 돈이 없어 서도 아닌데 그냥 걷는 게 좋아서 걸어 다녔습니다.


춘천은 그때 인구 15만 정도의 작은 도시였지만 두 갈래의 강, 소양강과 북한강이 시가지 둘레를 휘감아도는 호수의 도시라서 봄가을엔 안개가 시내 전체에 자욱하게 내려앉아 운치가 그만입니다.


춘천이란 이름은 순우리말로 봄내라 부르는데 그 이름에 걸맞은 도시지요.

서울에 사는 대학생 고등학생들이 경춘선 열차를 타고 M.T장소로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1980년 5월 18일로 돌아가 봅니다.


그 당시 시대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는 청와대 주변 안가에서 정권 핵심인물들과 술자리를 하던 중에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졌고


그 사건을 빌미로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보안 사령 관 전두환을 비롯한 군부 내 박정희 친위세력들이 자신들의 권력탈취 음모에 방해가 되는 참모총장을 강제 체포한 후 박정희 독재정권을 향한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을 제압하기 위해 부산 마산에 극한 돼 있던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전두환을 앞세운 군부 쿠데타 세력들은 자신들의 권력탈취 음모에 장애가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고자 박정희의 정적이자 야당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기대 중을 비롯한 정치인을 불법으로 구속하였고


김대중의 출신지역인 광주와 호남에서 이를 계기로 전두환 퇴진과 민주주의 쟁취를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 노동자들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환은 광주에서 불붙은 민중 항쟁이 들불처럼 전국 각지로 확산될 것이 두려워 공수부대를 투입해 실탄을 발사하는 한편 헬기와 전차를 동원해 평범한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하고 잔인한 집단 인명살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광주 민중항쟁이 전개된 발단은 김대중 구속과 민주화 요구 등이었지만 공수부대의 잔인한 인명 살상 만행이 가해지자 전두환 퇴진이란 항쟁으로 전화되었습니다.


공수부대의 만행에 맞서 노동자 시민 학생들은 스 스로 항쟁 조직을 구성하고 무장을 갖추었으며 무 격해진 행정기관을 대신해 시민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자율적인 자치 공동체까지도 운영했습니다.


전두환은 철저히 언론보도를 통제해 광주 민중항쟁을 간첩과 폭도들의 소요라며 고립시켰고 도청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민중에 의한 민주주의를 목숨 걸고 사수하려던 젊은 청년 노동자 학생들은 끝내 공수부대와 계엄군의 총탄과 발굽 아래 쓰러져 갔습니다.



다시 1980년 또 다른 기억의 장소 춘천으로 이동합니다.


광주에서 전두환 일당의 잔인한 만행이 자행되던 5월 어느 날 난 어김없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마침 그날 같은 운동장을 쓰고 같은 재단인 여학교 학생들과 미팅이 있어 사복으로 갈아입으려고 부지런히 귀가 중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파출소가 있는데 언젠가부터 짭새는 없고 파출소 앞에 군바리들이 총을 들고 눈을 부라리고 있어 지날 때마다 괜히 눈에 거슬렸습니다.


파출소 앞을 지키던 군바리, 계급은 중사였는데 어찌나 무게를 잡고 위압감을 주는지 지나던 시민들도 파출소 앞에선 겁이나 빠른 걸음으로 지나갑니다.


야! 고삐리 새끼야. 모자 똑바로 써! 날 부르는 건가 싶어 잔뜩 인상을 쓰고 돌아보니 문제의 중사 계급장을 단 그 군바리가 나를 향해 욕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차고 어이도 없고 성질도 나서

" 어이. 군바리 왜 욕지거리야. 남이야 모자를 삐딱하게 쓰든 말든 네가 뭔데. 개자식아. "

군바리에게 겁도 줄 겸 한껏 불량스러운 자세로 맞받아쳤습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가려는데

"저 고삐리 새끼 잡아" 소리를 신호로 짭새 두 명이 달려와 내양 팔을 잡아당겼습니다. 천지에 무서울 게 없는 고삐리였던 난 경찰들의 불법연행에 맞서 거세게 저항했고 지금과는 달리 상당한 운동능력을 가진 몸매였기에 날렵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경찰들을 물리치고 안전하게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물론 미팅은 무사히 참여했지요.


문제는 다음날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니 아침 조회시간 끝날 때쯤 담임선생이 교무실로 오라는 것입니다. 평소 담임선생과 거의 교류가 없었기에 의아한 생각에 교무실로 가니 담 임 선생이 너 어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곰곰이 어제 일을 더듬어보니 여학생들과 사복 입 고 콜라텍 갔던 일밖에는 별로 거리 길 것도 없어 별일 없었다 하니 파출소에서 연락 왔었다며 일단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담임선생이 지금 광주에서 불량배들이 소요를 일으 혼란스러우니 조심하라는 잔소리까지 붙이길래

알았다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교무실을 빠져 나왔습니다.


반성문은 결국 안 썼습니다.


고3 때 겪은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제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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