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는 너무 비정하고 야만적이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약육강식, 먹고 먹히는 지배 피지배의 관계만 존재할 뿐이다.
천적의 무자비한 발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필사의 탈출, 실패하면 무차별적인 죽음뿐이다.
집 뒷산에 까치들이 집단으로 서식하는데 평소 까치보다 상위의 포식자들이 잘 나타나지 않아 까치들의 천국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포식자로부터 공격을 당해 찢긴 날개로 비틀대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아예 날지도 못하는 까치가 최근에 종종 눈에 띄었다.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제때에 영양공급이 안되니 목선도 가늘어지고 깃털까지 빠져 병색이 역력했었던 까치의 죽엄을 며칠 지나 산길에서 목격했다.
평화로웠던 동물의 세계 봉래산,
무법천지로 변한 폭력의 난장판을 바로 잡아줄 적임자였던 까치,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못 이룰 사랑마저 노둣돌을 놓아 인연을 맺도록 이어준 까치들의 둥지를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그들도 사랑을 하고 있었다.
1. 봉래산의 아침
봄비가 모처럼 촉촉이 내리다 그치고 난 후 아직 밀려나지 못한 회색빛 비구름 사이로 부챗살 같은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치니 야트막한 작은 산 공기도 오늘따라 유난히 더 상쾌하고 짙푸르렀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크기라 조선 시대 신경준이 작성한 산맥지도 산경표에는 표시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 왕실 내지는 사대부들의 공식 지정 묘역으로 관리해오던 이름이 있는 엄연한 산이다.
비록 높이는 낮아도 백두대간 한북정맥의 주요 진산인 북한산으로 이어졌었던 산세가 아직 남아있어 제법 넓고 깊은 숲엔 고목이 울창하다. 오래전에 물이 말라버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계곡도 꽤나 많다.
아기자기한 작은 능선을 타고 내린 경사면마다 물이 흘렀던 계곡의 흔적이 여러 곳이나 되는데 조상들이 산밑 안골마을에서 살았다는 주민들 얘기로는 옛날엔 계곡마다 물이 많아 그래서 새들이 많이 살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작은 산 봉래산에 새들이 참 많은 편이다.
이른 아침 봉래산의 적막을 깨고 부지런한 참새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며 아침 먹이를 구하려고 연신 땅바닥을 통통통 튕기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방을 연신 살펴보며 빠르고 잰 발걸음으로 아침먹이 준비에 바쁜데 실은 다른 천적들이 언제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위협을 할지도 모르니 본능적으로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는 것이다.
부지런함만 따지면 참새 못지않은 욕심 꾸러 기 직박구리들도 이곳에 산다. 다른 곳에서 살다 이곳으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되는데도 이유 없이 비호감을 주는 목소리로 위세를 과시하며 영역을 점차 늘려가더니 천적으로부터 안전한 자리에다 터를 잡고 벌써부터 텃새 행세를 하고 있다.
까마귀들도 예부터 봉래산에 살고 있다.
검은 신사 까마귀들 얘기는 다음에 쓸 글 목록에 예정되어 있어 이글에선 주연이 아닌 관계로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점잖고 듬직한 풍모를 가졌고 지능도 까치 이상으로 좋아서 호감 가는 일화도 많아 새 들의 세계에선 신사로 불릴만하다.
불길한 일을 몰고 오고 썩은 고기만 먹는 나쁜 새라는 잘못된 편견을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심어놓은 탓에 악명을 뒤집어쓰곤 있지만, 불길하고 안 좋은 일이 생길때마다 미리 알려주는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왜곡된 오명만은 꼭 벗겨주어야 한다.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는 위치의 높은 산 바위 위나 고사목 가지 위에 앉아서 주위를 살피다가 비라도 내릴 조짐이 보이면 먼저 알아채고 깍 깍 긴 울음소리로 빨리 대피하라는 위험신호도 보내주는 좋은 새다.
그뿐인가. 실제로 까마귀는 남의 곡식이나 과일을 탐내지 않는다.
간혹 남의 둥지 근처를 기웃거리면서 둥지 안에 있는 다른 새들의 새끼들에게 부리로 툭툭 건드리는 건 해코지하려는 게 아니라 까마귀들만이 가진 특유의 장난기일 뿐이다.
까마귀들 그들이야말로 봉래산의 진정한 터줏대감이다.
언젠가 한번은 늘씬한 까치녀에게 실없이 수작을 걸다 퇴짜를 맞고 쫒겨나 비록 스타일은 구겼지만 성격 좋고 배려심 많고 의협심도 강한 검은 제복의 신사 까마귀선생이 조용한 걸 보니 아직은 출근 전인가 보다.
그 외에도 곤줄박이, 박새, 빨간 줄 오색 딱 다구리, 물까치, 파랑새, 두견새 등도 사이좋게 어울려 살고 있는 여기 봉래산은 높이 는 낮아도 텃새들의 집단 거주지 로서의 자연환경은 인근의 큰 산들과 견줘 결코 크게 뒤지지 않는다.
참새들의 아침 먹이 확보를 위한 행군을 자신들의 먹이를 탐내서 기웃거리는 걸로 오해하고 잔뜩 못마땅해하던 성질 급한 직박구리 한놈이 콩알만 한 것들이 감히 우리 구역을 넘보다니 도저히 못 참겠다며 기습적인 선공을 시도했다.
이를 신호로 나머지 직박구리들도 일제히 땅으로 내려오면서 참새떼들을 집단으로 위협했다.
그런데 참새는 직박구리들보다 먼저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원주민이다. 굴러온 돌이나 다름없는 침입자 직박구리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느니 운운하며 참새들을 내쫓을 처지는 아니다.
그런데도 유독 참새들의 약한 모습을 노린
굴러온 조폭 직박구리들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고 잦아지자 평소에도 이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해왔던 까치들이 주변을 떠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다 이를 지켜보던 까치들은 맑고 청명한 아침의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깨진다 해도 오늘만큼은 직박구리들의 횡포를 확실하게 제압해야겠다며 날갯짓을 서서히 펴기 시작했다.
만만찮은 조폭 직박구리를 상대해야 하니 까치들도 나름 굳은 결의를 다지고 난 후 날렵하고 용맹한 젊은 까치들의 힘찬 날갯짓을 신호로 일제히 저공비행을 전개했다.
이곳 봉래산엔 원래부터 까치들이 많이 살고 있다. 까마귀와 함께 오랜 시간 이 작은 산을 지켜온 터줏대감들인데 감히 근본도 없는 직박구리 잡새들이 무법천지로 날뛰며 평화롭기만 했던 봉래산을 휘젓고 다니니 평화의 지킴이 까치들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머리 좋은 까치들은 일단 직박구리들의 기도 꺾고 기선도 제압할 겸 자신들이 가진 또 다른 무기인 시끌벅적 요란한 목소리로 위협을 가하는 한편 이웃에 사는 다른 까치들 한테도 신호를 보내 연합군을 규합하며 세를 과시했다.
직박구리도 조폭다운 만만찮은 성격의 소유자라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까치들의 기습 공격에 당황해 처음엔 밀리는 형세를 보이다가 날렵한 비행 솜씨로 곧바로 반격을 시도했다.
덩치는 까치보다 작다 해도 머리털을 곧추 세우고 덤벼들면 까치들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까치들이 누군가. 오랫동안 봉래산 이골 저 골짜기를 수도 없이 많이 비행을 해와 눈감고 날아다녀도 될 만큼 산세에 정통하다.
따라서 지형지물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머리 좋은 까치들의 효과적인 공격은 성질만 앞세우며 어깨에 힘만 주고 가오나 잡던 직박구리보다는 역시 한수 위였다.
체격도 직박구리들 보다 크고 비행속도도 빨라서
객관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보유한 까치들은 대오 맨 앞에서 나름 용기 있게 싸움을 독려하고 있는 두목 직박구리를 타깃으로 집중 공격을 가했다.
승부는 금세 결정 났다.
역시 새들의 세계도 인간들의 세계나 마찬 가지인 것 같다.
항우와 같은 용맹함보다는 장자방과 같이 지혜와 머리를 쓰는 전술, 두뇌회전이 필요하다는 세상 이치를 새들의 전투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직박구리 무리들은 선두에 선채로 새들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던 두목이 까치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자 황급히 자신들의 둥지로 도망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