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주변에 사는 길냥이 일가족의 겨울나 기에 얽힌 사연인데,
아파트 단지 내 전 지역이 금연구역이라 담배를 피우려면 단지 바깥으로 나가야 합니다. 습관처럼 저녁식사 후 잠들기 전 늦은 밤까지 단지 바깥으로 나가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서너 차례 담배를 피우 는데 주로 단지 후문으로 연결된 작은 공원이 내 흡연구역입니다.
어느 날인가 온통 까맣게 생긴 길냥이 한 마리가 내 주변을 맴돌길래 너 뭐야 인마! 하고 혼을 내줬는데 도 실실 쪼개듯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는데 괜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무시하려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게 불만이니 딴 데로 가라고 시위하는 것 같아 결국 단지에서 더 먼 곳까지 이동해 피우다 남겨진 담배 한 개비뿐인 식후 디저트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단지 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주친 까만 기량 이와 나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걸어오다 단지 입 구에서 짧지만 인상 깊었던 첫 만남을 뒤로하고 그 만 헤어졌습니다.
이후로도 술 약속 없이 맨 정신에 귀가하는 날 늦은 밤이면 어김없이 까만 길냥이와 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늦은 밤 단둘이 자주 만나다 보니 서로가 익숙해져 서인지 길냥이도 더는 자기 구역에서의 나의 흡연을 시비 걸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았고 나 역시도 공원 벤치에 한껏 여유로운 자세로 끽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절친한 동료들과 한잔하다 다소 길어져 새벽 즈음에 귀가하게 됐는데 얼큰하게 취하기도 해서 찬바람에 술도 깨고 담배도 한대 피자는 생각으로 멀리 가기 귀찮지만 습관대로 단골 흡연구역 장소인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새벽, 깜장 길냥이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냥이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새벽 마주친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얼룩무늬의 몸집 큰 사내 냥이 그녀 곁에 도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캣맘들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사실 길냥이 그녀는 우리 단지 주변 냥이들 세계에서도 제법 돋보이는 미모의 소유자로 몇몇 숫 냥이들로부터 구애와 스토킹도 당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나이는 두 살,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꽃다운 청춘입니다. 몸매도 적당히 탄력 있고 그녀의 검은 모발은 윤기가 흐르며 고양이답지 않게 귀도 길고 뾰족합니다.
길냥이의 남자, 얼룩무늬 그에 관한 무용담도 캣맘 들로부터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길냥이 주변을 맴돌던 숱한 무리들을 오로지 힘 하나로 제압해 한 순 간에 단지 전체를 평정해 길냥이 그녀의 맘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사실 길냥이의 남자는 그리 호감 가는 인상도 몸매 도 아닙니다. 저렇게 생긴 고양이도 있을까 할 정도로 못생기고 뚱뚱합니다.
오로지 힘 하나로 길냥이의 남자가 된 것입니다.
어쨌든 얼룩이 사내와 길냥이 그녀를 지나쳐 내 지정 흡연 석인 벤치로 걸어가는데 아! 그들에겐 올망졸망 숨겨놓은 새끼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도 아닌 넷씩이나 말입니다.
태어난 지 한 달 좀 더 넘은 꼬맹이 네 녀석이 마치 자기들 안방처럼 내가 주로 앉았던 지정 흡연 좌석을 무단 점령한 채 놀고 있었습니다.
끽연의 자유를 누리던 나만의 공간을 무단으로 점 형 하고도 당당한 길냥이 그녀와 그녀의 사내, 고삐 풀린 망나니 같은 그들의 새 액끼들.
수많은 밤 그렇게 많은 만남을 가지며 애정과 호의 를 베풀었어도 곁도 안 주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 던 도도한 그녀가 비밀리에 이토록 겹겹이 쌓인 사연 많은 길냥녀인줄은 상상도 못 했었기에 순간 그녀가 미워졌습니다.
지하철에서 한자리만 노리고 그 앞에 쭉 서있었다 가 내 앞자리 좌석이 비자마자 멀리서 쏜살같이 나타나 나를 밀쳐내고 자리를 강탈해간 눈뜨고도 자리를 빼앗겼던 개념 없고 황당무계하고 어이 상실했던 그 어느 날의 기억이 번쩍이는 섬광처럼 빠르게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무개념 한 지하철의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귀엽고 깜찍한 길냥이와 그녀의 아이들이 저 지른 만행이라서 얼마 안가 웃고 말았지만 말 입니 다.
길냥이 그녀와 그녀의 남자 얼룩이는 미웠지만 새끼들은 고슴도치를 빼고는 다 이쁘단 말처럼 사랑스럽고 너무 귀여웠습니다.
네 녀석이 벤치 위에서 서로 때리고 올라타고 놀면 서 아래로 떨어지며 재롱을 부리는 꼬맹 냥이들을 쳐다보니 손바닥만 한 것들이 귀엽기도 해서 오늘도 내 지정 흡연석을 기꺼이 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