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해를 입은 피해를 미처 다 복구도 하기 전에 밤의 포식자 부엉이가 예고도 없이 까치마을을 무단 침입해 왔다.
부엉이들도 이번에 내린 큰 비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자신들의 둥지 중 상당수가 손실을 입게 되자 까치마을을 빼앗아 자신들의 둥지로 삼으려는 야욕을 품고 자연의 법칙을 깨면서까지 남의 땅을 불법으로 침범한 것이다.
야행성 조류는 밤에만 활동해야 한다는 수천 년 전에 정해진 자연의 법칙을 필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전면 무시했다.
백주 대낮에 평화로운 까치마을을 침범한 부엉이들의 행위는 조류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 마땅한 명백한 불법이지만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에선 이미 정의나 법칙 따위는 힘의 논리에 짓밟혀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된 지 오래였다.
부엉이들은 마치 자신들의 땅인 양 까치마을을 점령한 후 무자비한 발톱을 앞세워 온갖 만행을 저지르면서 까치 마을 전체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그간 까치마을은 스스로 정한 공동체 규칙에 따라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잘 유지되어왔으나 부엉이들의 불법 침략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온 마을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구심점이 무너지자 우왕좌왕 대혼란에 빠져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부엉이를 몰아내고 다시 마을을 되찾을 대응책을 제대로 논의할 수도 없었다.
붕괴된 마을자치시스템을 재건하고자 동분서주 날아다닌 우리의 주인공 젊은 까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원로 까치의 이름으로 긴급 임시 대책회의가 열렸다.
긴급 임시 대책회의의 안건은 논란을 벌일 것도 없이 일사천리로 결정되었다.
까치마을을 무단 점령한 부엉이를 몰아내고 까치마을을 재건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 외에는 이 위기상 황하에서 다른 문제를 거론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임시 대책회의가 긴급하게 소집은 되었지만 잔뜩 겁을 먹은 원로들과 간부 까치들에 의해 힘이 없으니 지금으로선 부엉이의 침략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현실론을 앞세우는 탓에 처음부터 맥 빠진 분위기였다.
젊은 숫 까치는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여
'부엉이 땅을 인정하는 순간 까치들은 전부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고 결국엔 까치마을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임시 둥지로 이동해 노약자 까치들을 대피시킨 후 젊고 건강한 까치들로 대항군을 편성해 맞서 싸워야 한다'
며 열변을 토했지만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았다.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전부들 고개만 숙일뿐 대응책이 만들어지길 기대하기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미 까치마을을 무단 점령한 후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부엉이의 난동을 방치한 체 부질없는 논의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
젊은 수컷 까치는 지지자 까치들과 회의 둥지를 박차고 나오면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으니 일단 흩어졌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암 껏 까치와 나란히 자신의 둥지로 걸음을 옮겼다.
둥지로 돌아온 젊은 수컷 까치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암컷 까치는 말없이 뒤따라 나와 함께 걸었다. 한참을 걷던 젊은 수컷 까치는 돌아서서 굳은 표정을 짓더니 아무래도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거니 이해해달라며 암컷의 부리를 자신의 부리로 부비며 이내 머리를 숙였다.
암컷 까치는 까만 눈을 깜박이며 말없이 수컷 까치를 응시하다 수컷의 부리에 자신의 부리를 살며시 부벼댔다.
결심이 선 듯 빠른 동작으로 결전 채비를 갖춘 수컷 까치는 평화의 땅 까치마을을 맘대로 유린하며 점령군처럼 버티고 있는 부엉이와의 결전의 장소인 큰 밤나무 근처를 향하여 힘차게 날개짓하며 상공으로 날아 올랐다.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누군가는 해야 했기에 단신으로 맞섰다.
암컷 까치는 행여 하는 마음에 만류하고 싶었지만 불같은 성격에다 싸움도 잘하고 의협심이 강한 용감한 연인의 굳은 결의를 보고 아무리 말린다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 단념하고는 옆에서 돕기로 하고 자신도 싸울 채비를 단단히 갖추고 뒤를 따라나섰다.
부엉이는 새들의 세계에서 독수리나 매와도 견줄만한 전투능력을 보유한 막강한 상대다. 승부는 결정 났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젊은 수컷 까치는 침입자들과의 무수한 전투를 통해 쌓은 실전 경험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일당백의 무용과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으로 조류 세계에 이름을 떨친 특급 무사였다.
절대 열세라는 전력차로 인해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밀릴 것이란 예상은 시작부터 빗나갔다.
특유의 빠른 방향 전환 기술과 날카로운 발톱질과 부리 박기 공격 기술로 몸집이 커서 행동반경이 느린 부엉이의 머리를 집중 공격하자 부엉이가 충격을 받아 몸을 비비 꼬고 목을 웅크렸다.
기회는 이때다. 승부를 결정짓겠다며 회심의 일격을 가하려 부엉이의 머리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충격을 받고 비틀거리며 방어에 급급하던 부엉이가 반사적으로 휘두른 왼발 톱에 젊은 수컷 까치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암컷 까치는 수 껏 까치가 공격당한 장면을 목격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암컷 까치는 수컷 까치를 향한 부엉이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공격할 듯이 요란한 소리만 내며 날갯짓만 퍼득여 왔다.
그러다 수컷 까치에게서 벌어진 돌발적인 상황을 뒤늦게 알고는 충격을 받고 놀란 나머지 부상을 당해 쓰러져있는 수컷 까치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잔뜩 독이 오른 부엉이가 수컷 까치에게 다가가려고 돌아선 암컷 까치를 향해 무자비한 발톱을 휘둘렀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암컷 까치마저 수컷 까치가 쓰러져있는 바로 옆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수컷 까치는 심각한 부상은 입었어도 젊고 워낙 단단한 신체라 아직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기에 다시 정신을 차려 반격을 하려 했지만 암컷 까치가 공격을 당해 피를 흘리며 자신의 옆에 쓰러지자 공격을 포기했다.
쓰러져있는 연인에게 다가갔지만 상처도 심하고 출혈이 많아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러나 앞에는 부엉이가 턱 버티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연인이 죽어가는 걸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기에 수컷 까치는
마지막 사력을 다해 싸우기로 각오했다.
반쯤 부러진 날개에 다시 힘을 주며 힘차게 날갯짓으로 시동을 걸어 날아오르려는데 갑자기 부엉이 뒤쪽에서 젊은 수컷 까치의 동료 까치들이 요란한 함성을 지르며 연인들을 도우려 단체로 날아오고 있었다.
까치들이 단체로 몰려오는 기세에 놀란 부엉이는 자신도 수컷 까치의 날카로운 공격을 받아 심각한 상처를 입은 터라 움직임이 쉽지 않은 데다 까치들의 지원군까지 몰려오니 더욱 기가 꺾였다.
이내 주춤거리다가 부자연스러운 날갯짓으로 자기 둥지가 있는 산너머로 도망쳐버렸다.
수컷 까치는 다른 까치들의 도움을 받아 큰 밤나무 위 자신들의 둥지로 암컷 까치를 옮겼다.
수컷 까치는 힘없이 축 늘어진 암컷 까치를 부리로 비비고 자신의 체온으로 식어가는 암컷의 기운을 일으키려 애를 써봤지만 암컷 까치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식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방법을 찾으려고 온 골짜기를 헤매다 문득 어릴 적 황조롱이로부터 공격을 당한 자신의 상처를 까마귀밥나무 열매가 해독과 염증치료에 좋다며 높은 산까지 날아가 구해와 치료해주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수컷 까치는 자신도 아직은 부상에서 다 낫지 않았지만 부러진 날개를 억지로 펴고는 까마귀밥나무 열매를 꼭 구해올 테니 그때까지 돌봐달라며 이웃 까치에게 부탁하고는 멀리 북한산까지 힘겨운 비행을 시작했다.
북한산까지 부러진 날개로 비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까마귀밥나무 열매를 찾아 꼭 살려야겠다는 절실함이 통했는지 몇 날 며칠을 헤매다 의로운 파랑새의 도움으로 계곡 주변 상수리나무 밑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까마귀밥나무 열매를 구했다.
날개에 심한 부상을 당한 몸으로 멀리 날기 어려우니 휴식을 취하고 나서 가라고 만류하는 파랑새에게 감사인사를 한 뒤 다시 봉래산 둥지로 서둘러 날아왔다.
까마귀밥나무 열매를 입에 물고 둥지로 돌아오니 자신이 없는 동안 암컷 까치를 돌봐주던 이웃 까치가 자신을 보고 울먹이며 돌아섰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둥지 안쪽에 누워있는 암컷에게 다가가 보니 따뜻했던 그녀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렸으며 숨도 멎어 있었다.
수컷 까치는 숲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자신의 머리를 나무벽에 마구 부딪치다 그 충격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동료 까치들도 너무나 곱고 착한 암컷 까치의 비통한 죽음을 앞에 두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의식을 차린 수컷 까치는 말없이 암컷 까치를 굴려 자신들이 이곳 봉래산에 처음 왔을 때 사랑을 나누었던 또 다른 추억의 장소인 큰 밤나무 아래에다 묻어주었다.
그리고 둘만의 애틋하고 달콤했던 사랑의 기억이 새겨진 빈 둥지로 돌아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몇 날을 또 그렇게 울었다.
진달래 흐드러지게 핀 고향 영취산에서 수리 무리의 공격으로 부모님을 잃고 나서 아픔을 함께 위로하며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자 꿈을 따라 날아왔는데 이제 그녀는 가고 혼자만 남겨져 그 슬픔을 못 이겨 울고 있는 것이다.
수컷 까치는 진달래꽃 피던 영취산 골짜기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하염없이 울었다.
부리를 하늘로 치켜세우며 울부짖기를 몇 날 며칠을 반복하더니 얼마 후부턴가 먼저 움직임이 멈추었고 이어 울부짖음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