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좋다. 친구가 있어서

박만성 2

by 김운용


사람이 좋으면 구설수에 오르거나 안 좋은 일에 연루되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박만성이 이 친구 역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기획부동산 중개인의 달콤한 속삭임에 속아 대출도 받고 저축해놓은 비상금까지 톡톡 털어 넣었다가 결국 사기를 당했다.


젊어서부터 산을 좋아해 산악회도 여러 군데 가입해 우리나라 산이란 산은 훤하게 꿰고 있다. 산을 잘 아는 친구가 돌멩이뿐인 산을 전원주택지로 속아 사기까지 당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나와는 직장동료이자 나이도 같아서 아주 절친한 친구사인데 사기를 당해 우울증을 앓게되니 짠했다.

어머니 장례식 때 근무 중이었는데도 사흘 동안 퇴근하고 빈소에 와서 계속 밤을 새워주었고 장례 마지막 날에도 장지까지 동행해서 뒷일을 도와주었던 절친한 친구다.


사람이 좋고 편하고 어수룩하면서도 재밌게 행동해 여직원들도 두루 좋아한다.

얼마 전 퇴직할 때 직원들로부터 등산재킷에다 스카프, 등산용 스틱, 심지어 김용임을 좋아하는 걸 아는 어느 여직원은

노래방 마이크까지 선물로 사줬다.




별명도 많다. 한량, 만만디, 오지랖, 사오정 등인데 각각의 사연도 많다.

한량이란 별명은 놀기 좋아해서 노는 자리라면은 언제라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참석해 날 새는 줄 모르고 놀아제끼니 불려지게 된 것이다.


노래를 썩 잘하진 않는데 멋들어지게 불러서 돈만 있으면 한량끼를 발휘했을 텐데라며 못내 아쉬워하면서 본인 입으로 자주 언급하다 보니 굳어진 별명이다.


오지랖이야 말 그대로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람을 오지랖이 넓다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관여 안 하는 일이 없다 보니 직장동료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도 종종 개입해 그때마다 당사자들로부터 핀잔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사실은 오지랖이란 자신의 앞가슴을 말하는 것인데 오지랖이 넓다는 건 남을 배려하고 감싸줄 정도로 마음이 넓다는 뜻이다.


여간한 일로는 화내는 법도 없을 뿐 아니라 자기주장을 강하게 고집하지도 않는다.

이해심도 많고 남에 대한 배려심도 넉넉하다.


그런데 왕왕 지나쳐서 남을 귀찮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수선하고 약간의 불편을 느끼게 할 때도 있어 부정적인 의미로도 불린 별명이다.


사실 오지랖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이해관계로만 따져 처신하는 좁고 옹졸한 좀스런 인간들이 더 문제 아닌가.


사오정이란 별명은 이 친구도 나처럼 청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보니 더러 눈치 없이 행동을 하거나 딴짓을 해서 생긴 별명이다.


다른 사람 얘기를 적극 호응하고 싶어도 잘 안 들리다 보니 웃어야 할 상황을 놓치고 엉뚱한 타임에서 반응을 보여서도 그렇지만

눈치가 많이 부족한 편이다.




키도 크지 않지만 나름 옷을 멋을 내며 입는 스타일리스트다. 콤비나 재킷 같은 세미 정장을 잘 입고 다니는데 그런대로 백발이 희끗한 나이에 걸맞게 중후한 분위기도 풍기고 잘 어울린다.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체격들이 비슷해 아들들의 옷도 곧잘 입고 다니는데 그만큼 소탈하다.


또 하나 음식 솜씨가 웬만한 전업주부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모임 때마다 공식 셰프로 주방을 차지해 솜씨를 자랑한다. 북엇국 떡국 겉절이 등 못 만드는 밑반찬이 없다. 오랫동안 비염을 앓아와 냄새를 전혀 못 맡는데도 맛을 내는 걸 보면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나와 단둘이 산행할 때에도 보온병에다 구수한 된장국을 담고 플라스틱 반찬통에 두부조림, 시래기 무침, 콩자반, 겉절이 멸치 고추볶음 등 새벽에 일어나 직접 만든 반찬을 푸짐히 만들어 가져온다.


그런 성의를 보인 친구에게 나는 하산 후 뒤풀이로 답례할 뿐이다.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는데 직업도 전공과는 무관하고 그쪽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살아와 퇴직 후 미래설계를 위해 이제부터라도 전공을 살리겠다며 최근 한 달 전부터 두문불출 열공 중이다.




백세시대라는데 나이 육십이 많은 나이는 아니라 할지 모르지만 지나간 많은 세월 동안 참 다양한 종류의 군상과 인간성들을 겪어봤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멀쩡했던 신발끈을 매거나 딴전을 피우는 사회성 떨어지는 인간들, 공평하게 분담하자며 그게 부담도 없고 정확하다며 깔끔한 척하는 정 떨어지는 인간들,

그런 처세가 더 현명하고 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솔직히 어울리기 싫다.


나와 친구들은 아무 말없이 슬그머니 먼저 계산대로 다가간다.

나와 친구들은 숱한 고난을 겪어오면서도 변치 않는 우정을 오늘까지도 꿋꿋하게 지켜오고 있다.


지난날 나와 친구들은 가난했었고 지금도 별로 넉넉하진 않지만 인간미만큼은 부자 부럽지 않게 느끼며 느끼게 하고 살아왔다.

눈치 보며 신발끈 매고 깔끔하게 술값이나 나누어서 여유가 생겼다친 들 그 돈 몇 푼 죽을 때 단 한 푼도 못 가져가는 게 인생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현명하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안 살 것이다. 만나면 그냥 좋은 친구로 살자. 앞으로도. 만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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