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는 가을에 핍니다

순정

by 김운용


가냘픈 몸매의 코스모스 꽃들이 한들한들 몸을 흔들며 길게 줄을 선 아스팔트 옆길을 따라 1학년 부 터 3학년까지 나는 걸어서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세 살 위 누나의 손을 잡고 십리 가까운 코스모스길을 따라서 학교에 갔습니다.


새벽 찬 바람 타고 하얗게 내려앉은 가을 서리는 햇살이 더 크게 번지는 고갯마루에 올라와서 보면 붉은 아침 햇살에 뒤섞여서 그런가 파랗게도 보랏 빛깔로도 보입니 다.


코스모스 필 무렵 우리 동네 가을 하늘은 크레파스로 그린 하늘보다 색깔이 훨씬 더 파랗습니다.


코스모스가 피는 유난히 파란 가을엔 더 나이 들어 늙어도 또렷이 남을 이야기가 있습니다. 8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가을 하면 아마 어린 시절 운동회가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먼저 떠 오를 겁니다.


봄에는 소풍 가고 가을엔 운동회를 합니다. 추수를 끝내 고 조금은 한가한 시간이라서 부모들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을에 주로 운동회를 합니다.


가을운동회 하는 날 아침, 서늘한 날씨임에도 굴하 않고 학교에서 나눠준 까만 반바지에 하얀 러닝 비슷한 반팔 셔츠 입고 머리엔 청군(주로 청군만 했던 기억 탓에)을 상징하는 파란색 운동모자를 날아가지 않게 꾹 눌러쓰고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쏜 살같이 달려갑니 다. 그날은 누나 손도 잡지 않았습니다.


운동회 시간에 달리기 시합이 있어서 미리 연습하 려는 속 깊은 뜻을 남들이 눈치챌까 봐 친구가 이름을 불러도 못 들은 체 그냥 마구 달려갑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점심시간, 엄마가 아침 내내 땀 흘려 가며 만드신 맛 좋은 음식 생각만 해도 침이 절로 넘어갑니다.

찬합에 빈틈없이 꼭꼭 채운 지금은 그런 맛을 낼 수 없는 집에서 만든 옛날 단무지 들어간 김밥.


장 담그는 솜씨가 좋아서 장으로만 간을 맞추시는 데 고추장으로만 양념한 탓에 혀가 얼얼해 손바닥으로 연신 매운 혀를 비벼대면서도 결국은 한 점의 남김없이 해치 운 고추장 돼지볶음.


코를 쏘는 아픔이 눈물 나게 했지만 온전하게 한 병을 통째로 손에 쥔 달콤한 칠성사이다.


이 기쁨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듯 기분 최고 좋아 지요.


점심도 힘이 나도록 먹었고 아침에 잘 달리라고 응 원해 준 코스모스 꽃들 덕분에 달리기 시합에서 1등 한번 2등 한번 해서 상품으로 공책 세권하고 연필을 받았습니다.


운동회가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모스길에 서 달리기 시합에서 1등 하고 상품으로 탄 공책과 연필을 자랑삼아 양손에 들고 난 천천히 걸어 갔습니다.


운동회 갈 때와는 정반대로 절대로 뛰지 않았습니 다. 같은 반 단짝이 놀자며 뛰어가도 그냥 그냥 꿋꿋하게 집 앞까지 걸어갔습니다. 누나까지 연필하 고 공책을 타서 배나 더 기뻤습니다.


사실 여느 때에는 고학년인 누나가 공부시간 다 끝 날 때까지 운동장에서 놀면서 기다렸다가 같이 집으로 옵니 다. 왜냐하면 사실 혼자서 집에 가기엔 조금 무섭기도 하 고 누나도 지켜줘야 한다는 비겁 과 용기가 내 맘속에 교 차하고 있었거든요.


학교와 집이 있는 마을 중간쯤에 문둥병이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면 이유도 없이 괜히 무서웠어요. 누나가 같이 갈 수 없는 날 단짝 친구와 난 번개 같은 속도로 그 앞을 달려야 했습니 다.


나중에 보니 그때 무서워했던 아저씨와 아버진 절 친한 술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날이 오일장 서는 날이었는데 무서운 그 아저씨는 아버지가 손수 만든 기다란 나무의 자에 마주 보고 앉아서 아버지와 이 놈 저놈 하시며 막걸 리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나를 본 그 무서운 아저씨가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자네 아들이냐 묻고는 이내 과자 사 먹으라며 십원 짜 리 종이돈을 내게 주시는 거였습니다.


십 원짜리 지폐를 70년대 초반까지 사용했다는데 그때 십원이면 아이스께끼(지금 보석 바깥은 하드 바)를 두 개 나 살 수 있었으니 초등학교 1, 2학년 의 동심은 달콤하고 시원한 물욕에 이미 빠져 버렸습니다.


무섭게만 생각했던 아저씨의 존재는 십 원짜리 지 폐의 위력으로 어느 정도 까먹었지만, 아저씨의 상처에 놀란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 엉거 주 춤 서있는데 아버 지 친구가 주시는 거니 받아라는 아버지 목소리에 무서 운 아저씨가 주시는 십 원짜리 지폐를 번개 같은 속 도로 받았습니다.


그 길로 바로 내달려 동네에 몇 개 없는 구멍가게로 향했습니다. 아저씨한테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긴 했는 데 너무 작게 해서 아마 아저씨는 듣지 못했을 겁니다.

아버지와 아저씨, 두 분 돌아가신 지 30년이나 됐는데,

" 아저씨 죄송합니다."


그동안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었습니다. 그런데 코스모스 가 가을뿐 아니라 봄 여름에도 피는 걸 얼마 전 산행하다가 직접 목격했습니다.


골드 코스모스라는 노란색 외에도 크기와 모양과 색상 등이 다양한 열대지방이 원산지이고 관상용으로 들여온 유사 코스모스들이 본래부터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들의 역사를 무시하고 특유의 왕성 한 젊은 식욕으로 그 자릴 차지하고 있습니다.


길가나 들판에서 하늘거리는 가냘픈 몸매를 자랑하 면서 분홍색 빨간색 흰색의 곱디고운 사연을 각각 간직해온 옛날 코스 모스 꽃들이 피었던 그 자리에 말입니다.


꽃들은 각각 자기가 꽃피워야 할 시간과 계절을 선 택해 피어납니다. 코스모스가 오랜 세월 동안 벌과 나비와 싸 우기도 하고 공존도 해가면서 지켜온 생 존의 법칙이며 가을 찬서리에, 찬바람까지 맞으며 터득한 자연의 법칙 이거늘 오늘 그 법칙들이 무원 칙하게 바뀌며 변해가려 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 다.


오래되었지만 꼭 필요한 기억들이 잊히는 것 같아서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순정, 순수란 꽃말을 가진 코스모스도 세월 따라 이젠 변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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