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1-13. 스위스 여행으로 극복한 짧은 향수병
*BGM:: Cristina - Sebastian Yatra*
겨우 6개월이었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주어진 내 시간은. 향수병은커녕 한국에 대한 생각이 나긴 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한국, 무엇보다 그곳에 있는 내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리운 순간이 꽤 있었다.
특히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유럽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종종 한국인들끼리 통하는 대화나 노는 방식이 그리웠다. 예를 들자면, 유럽의 대학생들은 보통 친구네 집에서 Pre-drink를 하고 2차로 펍이나 클럽에 간다. 우리나라처럼 진득하게 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시작으로 진지한 얘기까지 하는, 대화 위주의 술자리가 아니다. 게다가 유럽은 한국처럼 먹는 것에 진심이지 않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1차, 2차, 3차를 막론하고 무조건 간단하게라도 안주가 세팅되어 있어야 한다면, 유럽에는 안주 문화 자체가 없다. 기껏 해봤자 포카칩과 같은 감자 과자가 다이다. 술 마실 때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애초에 이해를 잘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저런 다양한 안주를 먹으며 소줏잔을 기울이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한국의 술 문화가 그립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한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웠던 것 일지도. 어떤 편견도 없이 현지의 친구들과 친해진 나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교류로 서로를 잘 아는 편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피할 수 없었다.
한창 이런 마음이 들 즈음, 나는 생각했다. 환기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스페인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선택지는 '스위스'였다.
전라남도 땅끝 마을 근처가 고향인 나는 자연이 참 친숙하다. 그래서 스위스의 광활한 대자연이 궁금했다. 그곳은 어떤 모습일지 직접 보고 싶었다.
도착한 스위스에서의 4박 5일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대한 산맥과 에메랄드 빛 호수,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눈 쌓인 알프스 산맥의 눈부신 풍경까지. 모든 순간이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자 어이없게도 한국에 대한 향수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유럽에서는 단 몇 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이렇게 색다른 풍경과 문화, 언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내가 못가 본 유럽의 정말 많은 나라들이 있는데, 한국이 그리울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한국 자체가 그립다기보다는 그곳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운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나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스위스 여행 이후, 어느 하나에 갇혀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하는 것을 지향하는 나의 삶의 모토에는 유럽에서의 생활이 딱 맞다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언어에 대한 흥미와 욕심이 큰 내게 단 한두 시간만 교통수단을 타고 가면 새로운 언어가 들리는 유럽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곳에 있으면 삶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물러야지. 그러고 싶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생각정리를 마치고 돌아온 말라가는 전보다 훨씬 더 반갑고 편안했다. 오랜만에 듣는 스페인어는 너무나 정겨웠고, 뜨겁게 내리쬐는 11월의 남부 스페인 태양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내린 결론은 "역시 스페인이 최고야."
그렇게 나는 짧은 향수병을 극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