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1-14. 스페인 여행을 통해 내가 다짐한 것
*BGM:: Vivir Mi Vida - Marc Anthony*
교환학생이 끝나갈 무렵. 나는 타 유럽 국가가 아닌, 못 가봤던 스페인의 도시들을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남부부터 까딸루냐, 마드리드 주변까지 꽤나 많은 도시들을 여행했지만 내 기억에 가장 남는 도시 세 곳을 꼽자면 1위 세비야, 2위 바르셀로나, 그리고 3위는 꼬르도바이다.
그중 세비야는 내가 말라가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이다. 특별한 사건이 많기 때문에.
세비야는 말라가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가량이면 도착하는 근교 도시이다. 그래서 당시 나는 즉흥으로 주말 혼자 여행차 가게 되었다. 중세 유럽의 느낌이 물씬 나는 세비야의 거리를 걸으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찰나, 어디선가 한국 노래가 들려왔다.
스페인 남부 도시 한복판에서 한국 노래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여 귀를 기울여 봤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김광석의 노래가 분명했다. 노랫소리를 따라 다다른 곳에는 성곽에 기대어 통기타를 들고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한국인 남성이 서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국적인 광경이 나는 너무나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의 앞에 서있는 몇몇의 스페인 사람들과 한국인들의 옆에 서서 한참 동안 그의 버스킹을 감상했다.
그러다가 내 옆에 있던 한 한국인 여성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버스킹을 하는 분은 세비야에서 운영하는 한인민박의 사장님이라고 하셨다. 마침 말라가에서 지내면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질 찰나였기에 나는 즉흥으로 이 한인민박에서 하루 더 머물다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으로 묵어보는 유럽의 한인민박은 참으로 따스했다. 오랜만에 실컷 한국어로 수다를 떠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 스페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왠지 대화하는 내내 마음이 참 편안했다. 피는 못 속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한국인끼리 통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서 세비야는 이미 내게 좀 더 특별해졌지만, 조금 더 각별해진 이유는 세비야 대성당 때문이다. 오렌지 나무로 잔뜩 둘러싸인 세비야 대성당 내부의 정원을 거닐고, 그 안에 있는 콜럼버스 유적 등을 보면서 눈물이 맺혔다. 원체 역사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나였기에 눈앞에 펼쳐진 오랜 역사의 흔적들이 감명 깊었다.
이내 가슴이 뛰었다. 생생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스페인어, 스페인 문화와 역사를 더 잘 알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이곳을, 이 언어를, 이 나라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 배우고 싶고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곳에서 살아야겠다."라고 그때 결심했다.
둘째로는 바르셀로나. 3박 4일로 짧게 다녀온 그곳은 '우연'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혼자 간 여행이었다.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여행 근황을 실컷 올리고 있었는데, 말라가에서 알고 지내던 루마니아의 한 교환학생 친구가 답장을 해왔다.
"나도 지금 바르셀로나에서 혼자 여행 중이야! 오늘 저녁에 같이 만날래?"
그렇게 우리는 그날 밤, 바르셀로나의 야경 명소로 유명한 벙커에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행 당시 나는 호스텔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 멕시코 남자애가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또래였고, 같은 학기에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왔다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교환학생 직전에 사귀던 전 애인과 장거리라는 문제로 헤어졌다는 사실마저도 똑같았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참 잘 통한다는 것을 서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둘 다 이 여행이 스페인을 떠나기 전 마지막 여정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연락처만 교환하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이밖에도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근교의 유명한 여행지인 몬세라트에 다녀왔다. 이곳은 한국에서 유튜브 영상으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던 중 알게 된 장소로, 당시의 내가 스페인에 가게 되면 꼭 이곳에 방문하리라 다짐했던 곳이다. 그렇게 꿈꾸던 곳을 눈앞에서 실제로 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또 한 번 다짐하고 기도했다. '꼭 다시 이곳에 오게 해 주세요.'
이렇게 바르셀로나는 기분 좋고 신기한 우연이 가득한 도시였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운명일지도 몰라.'
마지막으로 내게 의미 있는 도시는 스페인 남부의 꼬르도바. 이 도시 또한 말라가에서 가까워서 친구들과 당일치기 여행으로 다녀온 곳이다.
전날 파티를 한 탓에 숙취에서 허덕이다 겨우 몸을 이끌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아슬아슬하게 출발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떠난 여행이었다. 우리 모두 술에서 덜 깨 여행 내내 반쯤 취해있었다.
흥에 겨웠던 나는 길거리에서 레게톤을 틀고 따라 부르며 움직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만큼 진실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럽의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한참 관광을 하다가 목이 말라진 우리는 관광지 근처의 한 간이 슈퍼를 발견했다. 우린 생수 1병을 주문했고 계산을 하려던 찰나, 카드 기계가 없어서 현금 결제밖에 안 된다는 그의 답변. 우리는 모두 현금이 없었기에 당황을 했다. 어쩔 줄 모르고 우물쭈물하던 찰나에 주인아저씨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 꼬르도바에 다시 올 거지? 다 알아. 그러니까 다음에 올 때 계산해. 오늘은 내가 쏠게."
우리는 모두 몸 둘 바를 몰랐다. 게다가 그가 더하는 말은
"그리고 너희 총 3명이잖아. 1병으로 되겠어? 3병 가져가. 대신 꼭 다시 와야 한다!"
스페인은 내게 이런 곳이다. 아니, 안달루시아, 스페인 남부 지역은 내게 이렇게 따스하고 인자한 곳이다. 내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던 아름다운 곳이다. 눈물이 찔끔 나올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이렇게 내가 여행한 스페인의 각 세 도시는 내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을 남겨 주었다.
언젠가 내가 스페인에서의 삶이 지칠 때 떠올리면, 다시 이곳에 머물 이유를 상기시켜 줄 만한 그런 기억들을 말이다. 이내 나는 결심했다. 반드시 이곳에 돌아와서 그땐 좀 더 오래 살아보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