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역설

있음과 없음 사이의 자유

by 서이

사람들은 묻는다.


"꿈이 뭐야?" "앞으로 뭐 하고 싶어?"

대답이 없다. 아니, 대답할 에너지가 없다. 꿈이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꿈을 가질 여력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꿈이라는 건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미래를 상상하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경로를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에너지를 요구한다.


꿈이 없기에 꿈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은 그래서 역설이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이미 고갈된 상태에서 무슨 꿈을 꾸겠는가. 씨앗을 심을 땅이 메말랐는데 무엇이 자라겠는가.


그런데 이상한 건, 이게 그렇게 나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꿈이 없다는 건 동시에 어떤 것에도 묶여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달려가야 할 목표가 없으니 달리지 않아도 된다. 이루어야 할 무언가가 없으니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도 없다.


가끔 꿈이 명확한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안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달린다. 매일 아침 일어나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부럽기도 하다. 그 명료함이. 흔들림 없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그 확신이.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있을까? 꿈이 정해졌다면 그것을 위해서 달려야 하니까. 옆길로 새는 것은 시간 낭비고, 멈춰 서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다.


그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나는 지금 그럴 에너지가 없다. 달릴 힘도, 목표를 향해 매진할 의지도. 그래서 꿈이 있는 삶이 때로는 더 피곤해 보인다. 쉴 수 없을 것 같아서.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꿈이 있으면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방향이 있다는 건 강력한 동력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니 혼란스럽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꿈이 없으면 미래가 가능성으로 열려있어 좋다는 말도 맞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어떤 길로도 갈 수 있고,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후자에 더 가깝다. 아니, 어쩔 수 없이 후자일 수밖에 없다. 꿈을 가질 에너지가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열어둔다. 미래를. 가능성을. 사람들은 이걸 우유부단하다고 하거나 방황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무리해서 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냥 이대로 있는 게 더 정직하다는 것을.


올해 들어 에너지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처음에는 그냥 피곤한 거라고 생각했다. 잘 자면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자도 그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기분이 저조하고 기운이 없는 것도 맞지만, 우울과는 다른 무기력이다. 우울은 슬픔이라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그냥... 없음이다. 내가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가 없는 느낌.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기계 같다.


생각은 한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머릿속으로는 계획을 세운다. 내일은 이걸 하고, 다음 주에는 저걸 하고. 하지만 의욕이 들지 않는다. 해야지 하지만 하지 않는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몸을 움직일 이유를 찾지 못한다.


확대 해석하면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모르게 된 상태다. 살아남는다는 표현이 과장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껴진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어나야 하는지. 이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다. 번아웃이라고 불렀던 그 시기들. 너무 많이 달려서 탈진한 상태. 그때는 쉬면 나아졌다. 며칠, 혹은 몇 주 쉬고 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동안 나타난 번아웃과는 다른 느낌이다. 번아웃은 너무 많이 써서 고갈된 거라면, 지금은 애초에 채워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쓸 것이 없으니 쓸 수도 없고, 채울 방법도 모르겠다.


그저 방 안에 나 홀로 박혀 있고 싶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존재만 하고 싶다. 아니, 어떤 날은 아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없는 곳. 기대가 없는 곳. 질문이 없는 곳. 앞으로의 인생에 그 어떤 관계도 만들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관계는 에너지를 요구한다. 대화를, 관심을, 반응을. 지금의 나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다. 그래서 그냥 혼자 있고 싶다.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상태로.


꿈이 없으면 미래가 가능성으로 열려있어 좋다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건 좋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공허한 것일까? 지금의 나에게 미래는 확실히 열려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건 동시에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이게 자유롭게 느껴진다. 묶여있지 않다는 것. 정해진 경로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지만 어떤 날은 이게 그냥 무서울 뿐이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 잡을 것이 없다는 것.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요즘은 그냥 산다. 꿈 없이. 목표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아침에 눈을 뜬다. 별 의미 없이. 밥을 먹는다. 배고파서. 잠을 잔다. 피곤해서. 이 모든 게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의지라기보다는 습관으로. 사람들은 이게 문제라고 할 것이다. 목표 없이 사는 건 방황하는 거라고. 꿈 없이 사는 건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정말 그럴까?


꿈이 있어야만 의미 있는 삶일까? 목표를 향해 달려야만 가치 있는 시간일까?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까? 니체는 말했다. 불안과 초조를 침대에 가져가지 말라고. 그래서 나는 노력한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되묻지 않으려고. 그냥 자려고. 하지만 아침이 오면 여전히 에너지는 없다. 여전히 꿈은 없다. 여전히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열려있다.


어쩌면 이게 답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 있는 것. 꿈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 것. 에너지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 꿈이 없기에 꿈을 가질 수 없다. 맞다. 지금은 가질 수 없다. 그리고 그게 괜찮다. 언젠가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면, 그때 꿈이 생길 수도 있다. 아니면 꿈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꿈이 정해졌다면 그것을 위해 달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해진 게 없다. 그래서 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걷거나, 서 있거나, 앉아있어도 된다. 꿈이 있으면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어서 좋고, 꿈이 없으면 미래가 가능성으로 열려있어 좋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후자를 선택한다. 선택이라기보다는, 그게 지금 내가 있는 곳이다.


이 있는 사람들. 그들의 하루는 의미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이 방 안에서 나는 그냥 있다. 존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예전의 나라면 이런 나 자신을 질책했을 것이다. 왜 이러고 있냐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에너지조차 없다. 자책할 힘도 없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인다. 이것도 나라고. 이것도 삶이라고.


창밖을 본다. 세상은 돌아간다. 내가 꿈이 있든 없든, 내가 움직이든 멈춰있든. 세상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게 어떤 날은 외롭게 느껴지지만, 어떤 날은 위안이 된다. 내가 뭘 하든 안 하든, 세상은 괜찮다는 것.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거야?"


모른다. 정말 모른다. 에너지가 언제 돌아올지, 아니면 돌아오기는 할지도 모르겠다. 꿈이 언젠가 생길지, 아니면 평생 이렇게 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억지로 만들어낸 꿈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없는 에너지를 쥐어짜내면 결국 더 깊이 고갈된다는 것. 그래서 기다린다. 니체가 말했듯이, 푹 쉬고 잘 자면서.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될 때까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기다림 자체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흐르도록 두는 것. 계절이 바뀌듯,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할 때까지 그냥 있는 것.


미래가 가능성으로 열려있다는 건 생각보다 무겁다. 가능성이 많다는 건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선택의 부담도 의미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꿈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선택했다. 그래서 가볍다. 길이 정해져 있으니 그냥 걸으면 된다. 하지만 꿈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모든 가능성을 짊어지고 있다. 아직 선택하지 않았으니, 모든 선택지가 여전히 어깨 위에 있다.


지금의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내려놓는다. 가능성도, 선택도, 미래도. 일단은 다 내려놓는다.

방 바닥에 누워있으면 중력이 느껴진다. 몸이 바닥에 닿는 느낌. 이게 지금 내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나는 여기 있다. 이 방에, 이 바닥에, 이 순간에. 꿈도 없고, 목표도 없고, 에너지도 없지만. 나는 여기 있다.


앞으로의 인생에 그 어떤 관계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관계는 복잡하다. 주고받아야 하고, 신경 써야 하고, 에너지를 써야 한다. "요즘 어때?" 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잘 지내" 라고 거짓말을 하자니 피곤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니 상대방도 나도 불편해진다. 그래서 차라리 질문 자체가 없는 게 낫다. 혼자 있으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왜 꿈이 없는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왜 이렇게 사는지. 아무도 묻지 않으니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산속이든, 섬이든, 어디든. 사람이 없는 곳. 기대가 없는 곳. 판단이 없는 곳. 그곳에서는 꿈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에너지가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하루는 간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온다.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몸은 알아서 작동한다. 의미가 없어도 시간은 흐른다. 목표가 없어도 날짜는 바뀐다. 꿈이 없어도 계절은 지나간다. 어쩌면 이게 답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는 것. 목표를 세우려 하지 않는 것. 꿈을 만들려 하지 않는 것. 그냥 흐르도록 두는 것. 강물은 목표가 있어서 흐르는 게 아니다. 그냥 흐른다. 중력에 이끌려서.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목표 없이, 꿈 없이, 그냥 흐르면서.


니체는 말했다. 푹 쉬고 잘 자라고.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쉰다. 많이 쉰다. 하루 종일 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쉰다. 에너지가 충전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텅 빈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충전은 조용히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게, 느껴지지 않게.


씨앗이 땅속에서 싹을 틔우는 것처럼. 겨울나무가 봄을 준비하는 것처럼.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무언가가 천천히 변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믿기로 한다. 지금 이 무기력한 시간이, 이 에너지 없는 날들이, 이 꿈 없는 상태가 헛되지 않다고. 이것도 과정이라고. 충전의 과정이라고.


꿈이 없으면 미래가 가능성으로 열려있어 좋다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좋다는 게 뭘까. 행복하다는 뜻일까, 편안하다는 뜻일까. 지금의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상태가 나쁘지만은 않다. 미래가 열려있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에너지가 없고 꿈이 없지만, 언젠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꿈이 정해져 있었다면, 지금의 이 상태는 실패였을 것이다. 목표에서 멀어지는 것, 계획이 틀어지는 것. 하지만 꿈이 없으니 실패도 없다. 그냥 다른 상태일 뿐이다. 이게 위안이 된다.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 그냥 지금은 이런 시기라는 것.


결국 다시 방 안으로 돌아온다. 나 홀로 있는 이 공간으로. 여기는 조용하다. 아무도 꿈을 묻지 않는다. 아무도 에너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도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냥 나만 있다. 텅 빈 나. 에너지 없는 나. 꿈 없는 나.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순간만큼은 그게 괜찮다. 불안하지 않다. 초조하지 않다. 니체의 말대로, 되묻지 않는다. 부정하지 않는다. 탓하지 않는다.


그냥 있다. 여기에. 지금.


꿈이 없기에 꿈을 가질 수 없다. 맞다. 지금은 가질 수 없다.

꿈이 정해졌다면 달려야 하지만, 정해지지 않았으니 달리지 않아도 된다.

꿈이 있으면 좋고, 꿈이 없으면 좋다. 둘 다 좋다. 지금은 후자다.


미래는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텅 빈 것 같지만, 어쩌면 가득 찬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방 안에서. 혼자서. 조용히. 에너지가 돌아올 때까지. 꿈이 찾아올 때까지. 아니면 꿈 없이도 괜찮다는 걸 완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그때까지는, 그냥 이대로.

푹 쉬고, 잘 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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