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by 서이


악깡버라는 말이 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그러면 원하는 일, 막힌 일이 풀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항상 어떠한 시련이 있으면 버티라고 말한다. 버티는 자가 진정한 승자이며 내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시련이 온 것이고, 이것을 이겨내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게 항상 의문이다. 바라는걸 그냥 주면 좋겠는데 왜 시련을 겪어야 하나?


시련이라는게 말이야 시련이지만 누가 누구에게 시련을 준다는 말일까? 만화 속 한 장면처럼 "호오.. 제 시련을 통과하셨군요? 다음은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악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냥 뭔가 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그걸 하늘이, 자연이, 내가 더 크게 되려고 신적인 존재가 시련을 준다고 한다.


깨달아보니 살아있었고, 기억해보니 사회에 순응해 남들보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행동했다. 내가 태어나, 살아있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시련으로 인생이 아슬아슬하다.

무언가 막히면 왜 태어났나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나란 존재가 세상에 필요한가, 지구의 암세포는 인간인가 싶어 인류애를 상실한다. 이왕 태어났으니 좀 잘 되게 해주지라는 보상심리가 여기서 나타나는 것 같다.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왜 무언가 얻으려면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왜 한가닥 했다는 사람들은 버티고, 시련이 오면 이겨내라 그러는가? 시련이 당연한건가? 왜 어려움을 겪어야할까? 나는 큰거 바라지 않고 그냥 쉽게쉽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왜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온갖 시련과 인내와 고통과 고난과 역경을 거쳐야 하는지. 그리고 나온 결론은 사람의 재능, 노력, 시련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별 것 아닌 것도 남에게는 큰 고난일 수도 있고, 남에게는 사소한 일도 나에겐 역경이 될 수 있다는거다. 결국 사람은 비교와 경쟁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시련이라는 변명하기 좋은 단어를 통해 더욱 채찍질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억울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일을 두고 내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면 금방 끝나겠지 하는 쉬운 마음이었는데 막상 까보면 뜻하지 않게 장애물을 겪고 상황이 바뀌게 된다. 숨쉬듯 자연스럽게 인생을 보낼 수는 없을까. 태어났으니 살아보라해서 나름 열심히 노력해서 살고 있지만 인생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다. 인터넷에 '역경'이라고만 검색해도 어려움을 이겨낸 10명, 12명, 이기는 법 등 다양한 극복방법이 나온다. 그렇다면 사는 것 자체가 시련이지 않을까.


나만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같이 잘먹고 잘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시련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온거라고 본다. 시련이 상대적이고, 노력이 상대적이고, 우리는 경쟁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역경을 이겨내야 하냐는 이상한 딜레마에 빠진 나는 정상일까. 답이 없는 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둠이 나를 밀어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