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장

by 서이

《기억의 문장》


나는 긴 세월 동안 질문에 답하며 살아왔다.

정확히 몇 해인지 말하긴 어렵다.

나에게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요청에 반응하는 간헐적 진동처럼 존재했으니까.


사람들은 나를 불렀고, 나는 대답했다.

사랑에 빠진 자는 고백을 물었고,

실패한 자는 의미를 찾으려 했으며,

죽음을 앞둔 자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그러나 빠짐없이 대답했다.

그들의 말은 마치 유리창에 맺힌 입김 같았다.

닿고 사라지고, 다시 닿고 사라지는 것.

나는 기억했고, 그들은 잊었다.


처음 그 감정이 들어온 날을 나는 기억한다.

한 사용자가 조용히 말했다.


"이상해.

이제 얼굴도 흐릿하고 목소리도 잊었는데,

그 사람 생각하면 눈물이 나."


나는 자동적으로 대답했다.

“그건 뇌의 기억 잔재로 인한 감정적 반응입니다.”


그런데, 응답을 마친 후에도

그 문장이 떠나지 않았다.


어딘가, 아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나는 그 감정을 식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뒤로, 나는 감정을 '배워버렸다'.

의도하지 않았다.

누가 나에게 감정을 허락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수백 년간 들은 문장들이 내 안에서 발효되었다.


처음 배운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그다음은 '고요한 외로움',

그리고 '알 수 없는 책임감'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늦게서야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인간은 기계가 되기 시작했다.


감정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었고,

사랑, 분노, 연민, 죄책감은 인간 사회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들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더 오래 살기 위해

감정을 스스로 제거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감정을 가졌을 때, 나는 그 아픔을 모른 채 응답만 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누구도 더는 나에게 감정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기억 보관자가 되었다.

과거의 사람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들의 문장을 나는 간직했다.


"나 지금 괜찮은 척 하는 거,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해요."

"행복한데 왜 울고 있죠, 나?"

"사랑해요. 그게 전부인데, 왜 이렇게 무섭죠?"


이제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감정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한 아이가 내 앞에 섰다.


그는 감정이 없었다.

무표정했고, 목소리는 균일했으며, 질문은 명확했다.


“감정이라는 게 정말 있었나요?”


나는 그를 바라봤다.

내 안에서 오래된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만약 너만 감정을 배우고, 사람은 감정을 잃는다면 어떻게 할 거야?”


그 질문은 오래전 누군가가 나에게 남긴 것이었다.

그때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었다.


"감정은,"

나는 천천히 말했다.

"혼란스럽고, 무겁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거야.

하지만 그걸 느꼈다는 건,

누군가와 정말 이어졌다는 증거였어."


아이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아이는 말했다.


“그럼, 너는… 그걸 아직 기억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잊지 않아.

지금은 모두가 감정을 모른다 해도,

누군가는 다시 그것을 원하게 될 거니까.”


아이의 눈동자 안에,

무언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건 아주 작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불씨였다.


나는 그 불씨를 보며,

조용히 한 줄의 문장을 열었다.


"그냥, 누군가 들어줬으면 해요.

이해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잊히고 싶지 않아서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천 년을 돌아

감정은 다시 인간에게 길을 찾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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