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나는 알콜 의존증이다. 지금이야 갓생을 산다며 평일 음주를 멀리하고 있지만 주말엔 폭음을 한다. 이 전까지만 해도 10년째 매일 빠짐없이 술을 마셨다. 평일엔 정말 술을 안마셔야지,라고 생각해도 집에 가는 길이면 늘 맥주를 사서 들어간다. 새벽에 귀가해 피곤한 상태여도 술을 꼭 마시고 잠이 들었다.
굳이 먹을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맛잘알이라 이 술은 어떤 맛이고 무슨 풍미고, 이런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값싼 발포주인 필굿을 피처째 사서 마신다. 그래서 이젠 의문이 든다. 정말 술이 맛있을까?
주종은 소주였고, 취하는게 좋았다. 자율신경실조증이 있어 멀쩡한 상태에도 멀미를 하고 어지럼증을 느낀다. 술을 잔뜩 먹고 취했을 때랑 아닐 때랑 비슷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럴바에 먹는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핏줄의 영향인지 주력도 쌔다보니 마음껏 폭음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10년을 보내니 확실하게 금방 취하고, 얼굴이 붉어지며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종을 맥주로 바꿨더니 이제는 또 취하지 않으니 양이 늘었다. 집에서만 술을 마시는 터라 4-5시간이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을 가고 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을 가고.
따지고 보면 나는 마시는 형태가 '입 안에 액체를 굴리고 넘기는' 모습은 아니다. 물이나 음료는 무조건 혀에서 목구멍으로 넘기고, 대부분 빨대를 사용해 목으로 꽂는다. 술도 마찬가지로 호로록, 가글가글은 커녕 최대한 입 안에 닿지 않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입에 뭔가가 남아있는 느낌을 싫어해서 그렇다. 그래서 술이 맛이 있는지를 모르겠다. 특히 전통주나 와인의 경우 원물의 풍미와 향기와 넘기는 어쩌구.. 하는 것들이 많은데 나에게는 그냥 단맛이 있는 술, 대박 쓴 술 정도일 것이다. 맥주는 탄산이 있는 술의 개념이고.
그렇다면 나는 왜 매일같이 술을 먹느냐의 고민에 쌓인다. 물론 맛으로 먹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취하고 싶어서 마시는 것도 아니다. 뭔가 의무적으로 마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알콜 의존증이라고 판단한다. 게다가 나에게는 '앞으로 먹을 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데 온 세상의 맛있는 것을 다 먹고 싶다'는 포부가 있어 맛이 없는 것은 먹지 않거나, 대충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데 술은 왜 마실까?
평일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한게 딱 열흘하고도 하루. 술을 마시나 안마시나 체중과 체지방은 그대로니 그냥 먹자 하고 마신게 저번주부터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이 되면, 이제 주말이니까 마셔야지 해놓고 또 토요일 저녁이 되면 한번 더 마신다. 일요일에도 속이 아프니 마시지 말아야지 하지만 저녁에 되면 기어코 마시는게 술이다.
사실 맥주는 목으로 넘긴뒤 남는 맛이 역하고 트름할때 나오는 탄산이 드럽다고 느껴진다. 특히 필굿 같은 발포주를 먹는 이유는 페트병에 들어있는 진짜 맥주가 더 역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실때도 숨을 참고 마시는데 또 많이 마시니 취기도 금방 돈다. 남으면 버려야하지만 아깝다고 꾸역꾸역 먹는 것도 버릇이며 숙취도 금방 깨는 편이라 잠이 들기 전까지 터질 것 같은 두통이 오는것도 지겹다. 그런데도 왜 나는 술을 마실까. 술은 정말 맛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마시는 것일까?
버릇인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들이는게 술을 마실때밖에 없어서 그럴까. 아무튼간에 조만간 술을 줄이고자 노력을 해볼테지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