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게 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달리던 통키를 보고 내 꿈은 피구왕이 되었다. 좋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건물 앞에는 운동장 대신 피구장과 롤러장, 잔디밭이 있었고 주체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우리는 항상 쉬는시간과 중간놀이 시간마다 피구를 했다. 운동실력이 제법 좋았기 때문에 피구를 좋아했고, 잘했다. 그리고 20년 뒤, 15분짜리 피구 한판에 4일을 앓아 누웠다. 이게 무슨 일이야!
8월 15일 광복절이 목요일이라 회사는 유래없는 휴일을 줬다. 금요일 쉬고 출근하는 토요일도 쉬고 일요일도 쉬고. 하지만 쉬는 날이 길면 매출에 영향이 크다보니 그저 시간을 버리지 말고 금요일을 이용해 무언가 하자고 했고, 내 제안에 본부배 체육대회가 열렸다. 밖이 많이 덥기 때문에 구립체육관을 빌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했다. 2년간 헬스와 PT로 다져진 내 체력을 보여주겠다며 호언장담 했지만 중간부터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딱히 내가 출전한건 없었다. 단체시합인 줄다리기, 장애물 뛰어넘기, 피구, 반차가 걸린 전력질주. 10시부터 3시까지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했다. 상금이 걸리기도 했지만 적팀에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다른건 그냥 합심해서 하면 되지만 피구는 내 주종목이고, 통키아버지! 보고 계신가요! 라는 생각으로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공을 빼앗겠다고 기어다니고, 눕고, 뛰고. 딱 두판을 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체육대회가 끝난 뒤에는 고기와 술! 그리고 2차는 가지 않고 바로 집에 갔다. 이미 내 체력의 한계를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뭔가 잘못됐다. 누워 있는 것도 벅차고 걸을 때마다 온몸이 아우성이다. 헬스로 인해 생긴 근육통과는 느낌이 달랐다. 체육대회때 썼던 모든 근육이 아팠고, 심지어 멍이 든 자리는 탱탱 부어 통증까지 있었다. 이대로 파상풍에 걸리는거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정도는 아니었고, 멍이 아프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영부영 누워서 토요일을 보냈고, 일요일도 아팠다. 하루종일 누워있으니 허리도 아팠다. 엄마와 통화하는 중에 '나이가 몇인데 그거 하나 이기겠다고 구르냐'라는 소리를 들었다.
결론, 월요일에 헬스장에 가서 뭉친 근육을 풀어 그나마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공을 던진 왼쪽 어깨와 허벅지 근육이 아우성이다. 우째 이런 일이. 이정로도 체력이 바닥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2년간 근육을 키우기 위해 들였던 돈은 다 어디가고 약해 빠진 사람이 되었을까. 이게 노화인가 슬픈 마음이다. 통키야 미안해. 너의 후예가 되지 못했어.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체육과 관련한 경험을 하지 못한 것도 맞고,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앉아있기 때문에 체력과 근력이 바닥인 것도 맞다. 하지만 이건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된게 성인이 되면 이런 놀이조차 못하는 노예로 만들었을까. 그저 몸 갈아넣으며 일만 하는 일개미로 만드는게 이 나라의 궁극적인 목표인가. 체육인이 아니면 체육을 경험할 일이 없게 만든게 아이러니하다. 물론 개개인마다 건강을 위해 여러 운동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이전의 체력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근육빵빵 근육맨이 되면 무엇하나. 피구공 하나 던지기 벅찬데. 생활체육을 활성화 시키는 방향은 없을까.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놀거리, 생활체육에 인색하다. 그러니 온갖 성인병, 대사증후군, 비만, 당뇨와 같은 병이 급증하는게 아닌가. 그래도 라떼에는 쉬는시간마다 나가서 놀았다만 요즘 아이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운동장에서 놀고, 철봉에 메달리고, 땅도 파고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그저 머리만 크게끔, 좋은 대학을 가게끔, 화이트칼라로 만들기 위해 육성할 뿐이다. 흙도 좀 파먹어야 적당히 건강해질텐데 그런 아동학대를 이 나라는 눈 뜨고 볼 수 없나보다.
결국 이 나라가 바라보고 있는 미래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툭 치면 쓰러지는 개복치처럼 만들어 앉아만 있게끔 하고, 머리만 팽팽 굴리라는걸까. 그렇다면 썩 앞날이 밝지는 않겠다. 기대도 되지 않는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