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은 나는 나름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성격일까, 기질일까. 사색인 척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요즘 말로 하면 난 INTJ다. 답이 됐으려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여 진로를 정하고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어쩌구..를 실현하고 싶다. 일례로 이렇다. 기본적으로 '일'에 빠지면 '일'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지 고민한다. 그러면서도 '일'이 너무 고되 출근하기 싫고, 쉬고 싶고, 지나가는 차에 슬쩍 부딪혀 일주일간 입원하고 싶은 생각도 한다.
이전에 팀이 크게 무너진 적이 있어 멘탈이 갈린 적이 있다.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상담사를 찾아 상담을 받기로 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상담을 받고 앞으로 해나가야할 것들을 찾아 정리하는 시간 겸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는데 결론은 하나였다. 그간 상담에서 얘기한 내용이 전부 회사 일이라는 것이다. 나 개인이 어떻고 저쩌고 할 것도 없이 회사가 이랬다. 상사와 이랬다. 직원이 이래서 팀을 이렇게 해야겠다. 세달 동안 돈을 들이며 상담한 결과는 '계획이 있어 멋지네요', '문제 없겠는데요' 였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회사밖에 할 얘기가 없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물론 하루 12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며 인생을 바쳐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멘탈이 더 나갔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난 내가 하는 일로 인해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때려치고 할 수 있는건 아니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직원, 당장에 벌어야하는 돈. 물론 빠른 퇴사는 과학이라는 느낌이 너무나 강하게 들지만 그동안 여기서 버텨오고 성공하겠다고 아득바득 지켜낸 자리가 아깝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봐도 이 회사에서의 경력은 그 어느 회사에서도 받아줄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영업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CS를 잘 하는 것도 아니며, 조직도 일반 회사랑 달라보인다. 그렇다고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딜 가도 이 나이에 신입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무섭다.
생활이 이렇다고 해서 내가 엄청 힘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 재미있게 지내고 있으며 돈도 부족함 없이 쓰고 있다. 단지 시간이라는 것이 내게 없을 뿐이지 그 외적으로는 괜찮다. 워라벨을 지키는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하지만 나 역시 반대로 그 돈을 벌며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우울은 어디서 오는걸까?
깊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굳이 따지자면 '한량'이 적성이다. 놀고, 먹고, 자연인처럼 사는 사람 또는 재미를 찾아 떠나는 사람이겠다. 일을 할 때에도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첫 직업인 사회복지사를 그만둔 것도 매일이 똑같은 일상이기에 그랬다.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었다. 매일 새롭고 다르고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며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대로 안녕하는 것이. 하지만 그렇게 하니 돈이 없었고, 일이 없었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데일리 프로그램은 한두달만 일해도 적응이 되어서 재미가 없었다. 특집이나 야외가 맞았는데, 당시에는 TV프로그램이 지고 인터넷 매체가 뜨던 시기라 방송이 없었다. 결국 6년동안 번 돈은 마이너스 200. (물론 중간에 임금체불을 2번 당했다)
그러고나서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6개월을 채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반복했다. 일이 익숙해지면 재미가 없고, 반복되는 일상을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늘 새롭고, 짜릿한 일을 찾아 해메이다 온 곳이 여기다. 오히려 지금은 하루라도 평화로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곳도 비슷한 곳이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내가 이 곳에 있으니 재밌게 살고 싶다. 그러나 재미가 일이 되면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내가 여기서 얼마큼 버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신 건강한 상태로 일과를 보내고 싶다.
사람들이 우울할땐 우울말고 우웅을 하라고 했다. 별거 아니게 느껴지도록. 생각보다 힘이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나 우울해', 라고 주변인에 말하면 주변인들을 에너지 삼아 피해를 끼치기도 하고, 타인이 싫어하고는 하지만 '나 우웅해'라고 한다면 일단 욕부터 먹기 때문에 그 상황을 잊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울이든 우웅이든 내가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라면 올바르게 공생할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