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는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믿지 않았다. 산타의 존재를 믿었던 적도 없었고, 하물며 기독교인 엄마에게 '엄마는 왜 외국인을 믿어?'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그런 내가 상상하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 본격적인 집안의 콩가루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밖에서 방황하던 오빠와 달리 갈 곳 없는 나는 내 방, 내 침대만이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피난처였다. 술이 잔뜩 취한 아빠가 잠이 들 때까지 방문을 닫고, 혹여나 열고 해코지를 할까 두려움에 떨며 밤을 지새웠다. 이전까지는 혼자 있는 것도 무서워 불이며 TV며 다 켜놓고 잠이 들었는데, 상황이 바뀌니 심리적 무서움보다 현실적 무서움이 더 컸는지 불끄고 문닫고, 자는 척을 했다.
물론 잠이 올리 없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에 한명의 주인공으로서 움직이는 상상을 했다. 상상력이 딸리니 만화의 한장면에 개입하는 상상을 하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지금 유행하는 회귀, 빙의, 귀환 등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그때는 무협이나 정통판타지, 가끔가다 가상현실게임 판타지 소설이 나오던 시기여서 그쪽으로 많은 상상을 펼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2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잠들기 전 상상을 한다. 그때의 만화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심지어 20년 전 그 장면에서 다음 내용을 상상하지 못해서 똑같은 장면만 반복하다 잠이 들었다) 오늘 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말이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시작했던 상상이지만 지금은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예를 들어, 무대 공포가 정말 심한데 직급상 직원 앞에 서야 하는 일들이 많다. 사람의 시선이 트라우마가 된건 유치원 시절이지만, 극복하지 못해 아직도 사람 앞에 서면 다리가 떨리고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난다. 하여튼 이런 상황인데 언젠가 700명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사람 앞에 나설 바에 퇴사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결정이니 결국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건 아직 내게 며칠간의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호명받고 단상에 올라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계속해서 상상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 저런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 중간의 웃을 수 있는 타이밍 등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이틀정도 잠들기 전 상상했다.
결과적으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상상했던 대로 흘러갔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잘 넘어가게 되었다. 상상의 힘이 크구나 싶은걸 느낀 시점이었다. 그때부터는 어떠한 일이 생겼을때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상상하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모조리 정답을 향해 가지는 못하겠지만 나에겐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나는 삼십대다. 현실을 알고, 마주하고, 부딪혀야 하는 입장임을 안다. 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 있지 않은까. 솔직히 말해 나는 회귀든 빙의든 그런 미스터리를 믿는다. 초고대문명도 믿고 외계인의 존재도 믿는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상상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누군가는 몽상가라할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것을 믿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것이라면, 그렇게 불리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솔직한 말로는 뭐, 어쩌라는건가 싶다.
상상의 힘은 크다. 누구는 R=VD라고 부르고, 누군 끌어당김의 법칙, 시크릿이라고 부른다. 현실이 각박해 도피를 하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상상하든간에 세상의 근간이 되는 힘이라고 본다. 결국 꿈꾼다는 것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