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 딩-
우리는 동화 속 공주님이 잘생긴 왕자님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끝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행복하게 살아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떤 끝을 맞이할 것인지 알지 못한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해피엔딩이라는 말 자체가 띵하다. 어떤 기준으로 행복한 끝을 맞이한다는 것일까. 이쁘고 잘생기게 태어나 주변 사람들의 선망을 받고, 재력있는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 나와 걸맞은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갖고, 나를 도와주는 주변인들과 함께 양육하고 독립시키고, 효도하는 자녀와 함께 잔병치레 없이 100살까지 살다 죽으면 그것이 해피엔딩일까?
이것은 누구나 바라는 환상일 것이다. 미모가 뛰어난 것이, 집안이 부유한 것이 행복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세대가, 부모가, 사회가, 나라가,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고, 틀에 가뒀다.
핀란드는 세계 행복순위 1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핀란드 국민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부자이기 때문에 행복한걸까? 전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안에서도 불행한 사람은 있을 것이고, 다른 기준을 가지고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끝은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불행에 절여져 녹아 없어져야 하는 인간이다. 적당히 태어나 가난해져봤고, 가정은 콩가루였고, 연령대 평균 소득액보다 못미치는 돈과 모은 자금도 없으며 타지에 아무런 아는이 없이 독립한 가난쟁이, 나이가 드니 얼굴엔 기미와 피지, 복부지방은 간질환을 의심하며 당뇨 초기 단계. 하지만 앞으로 살 날은 많다.
이런 나의 끝은 세드엔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난 제법 행복하다. 퍼센트로 따지자면 불행이 조금 더 크지만 1%라는 행복이 내 인생에 있다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렇다면 나의 엔딩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한번쯤 해볼만한 생각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해피엔딩은 타인이 봤을때 내가 부러운 것이 있기 때문에 행복해 보인다는 것 아닐까? 예를 들어 남들보다 많은 재력을 가지고 싶은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봤을 때, 그 부자가 사실은 자본의 대다수가 부채인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저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할 것이다. 반대로 사랑받지 못한 부잣집 자녀는 가난하지만 사랑받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할 것이다.
결국 해피엔딩이란 타인의 입맛에 맞춘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내 상황이 아무리 기구할지언정 오늘 하루, 한시간, 일분이라도 행복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단지 행복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그걸 느끼지 못하는거다.
나는 자연이 좋다. 그중에서도 특히 달과 구름이 좋다. 그냥 흘러가는걸 보는 것도 좋고,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것도 좋다.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도 좋다. 그저 그 변함없는 자유에 공감하는 시간이 즐겁다. 결국 나는 아무리 불행할지언정 고개만 들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럼 난 누워 죽는다면 그게 해피엔딩이 아닐까?
인생에 있어 행복이라는 것.
인생에 있어, 행복이라는 것.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난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다. 구구절절 뱉어내는 말들이 불행해 보일지언정 난 내가 해피엔딩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행복(幸福)이라는 단어의 뜻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이 아닌 행운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