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는 왜 죄악인가

by 서이

칠죄종이라는 게 있다. 七罪宗, 라틴어로 septem peccata capitales, 7가지 근원적인 죄, 그리스도교에서 규정하는, 죄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죄. 7대 죄악은 각각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


대충 보면 맞는 것 같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나에게도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중 나태는 왜 죄악이라고 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가? 그저 나의 게으름일 뿐이다. 물론 고대에 거슬러 올라가면 정신적, 영적, 병리학적, 물리적 상태를 포함하는 혼란스러운 개념이라고는 하지만 정의 내려진 것을 찾아보면 단순히 '노력에 대한 습관적인 싫증, 또는 게으름'이다.


나태함이 피해를 주는 경우는 그 사람이 1인분의 몫을 하지 않을 때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나태는 문제가 된다. 직장 동료의 업무가 과중될 수 있고, 나아가서는 회사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집안의 가장이 자녀의 양육비를 벌어오는 노동을 하지 않는 것도 나태로 인한 피해가 생겨날 수 있다. 또한 대학의 조별과제에서 무임승차 하는 사람이 나태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위치해있지 않은 사람의 나태는 과연 '죄'일까?


예를 들어보자.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약 40억 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있다. 매매한 집이 있고, 직장은 없다. 바깥 외출도 잘하지 않고 한다고 해도 주변산책 정도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잠이 들고, 오후 2시에 일어나 다시 게임을 한다. 일을 하는 것도 귀찮아 직장을 구하지 않고 있지만 로또 당첨금으로 평생 혼자 살 수 있다. 이런 사람의 하루 일상을 과연 나태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자기에게 투자하며 그렇게 사는 것뿐이다.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 노동 가능한 인간이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백수로 살다니, 유죄.'라고 말할 수가 있느냔 말이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태”라는 죄는 어떤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으로,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서 예수가 한 말을 불이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구절은 어떤 것이냐면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너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실질적 무교인 나도 알고 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라는 구절이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나태의 죄를 묻는다. 그렇다면 다시 위로 올라가서, 40억 원의 자산을 소유한 백수 역시 무교이며, 외딴 무인도에 집을 짓고 살고 있어 남들과 교류가 없다. 사랑할 신도, 이웃도 없다. 그럼 나태의 죄를 물어야 할까?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이 주제는 계속된 딜레마에 빠트리고 있다. 나태는 왜 죄악일까. 예수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다면 주님, 그렇게 함부로 사랑을 주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만..이라고 반문하고 싶다. 물론 칠죄종의 개념은 종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해당 종교인이 아니라면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칠죄종은 종교를 떠나 많은 곳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칠죄종이라는 개념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형편이다.


나태는 죄일까? 아닐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 1분이라도 일하기 싫고 하루종일 누워서 숨만 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정도면 나태의 죄로 지옥을 갈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한 상황에서 가장 행복할 것이고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행복에서 오는 여유가 있어야 누구를 사랑하든 도와주든 하지 않을까. 지금이 지옥인데 어디서 죄를 찾는지 모르겠다. 결국 나태해도 괜찮다. 나태의 원인은 반드시 있고, 그것이 나의 잘못은 아니니, 행복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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