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정지의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썼다. 게임이라고 치면 처음 캐릭터를 만들어 퀘스트를 깨며 폭발적인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구간이 있고, 그걸 넘으면 레벨이 부족해 퀘스트를 깨지 못하고, 경험치도 적게 들어와 레벨업이 더딘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 현질을 하던지, 필요한 능력치를 올리던지 한 다음에야 다시금 성장이 가능하다.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 막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게 처음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어느 정도 머릿속에 들어온다. 그리고 얼렁뚱땅 알게 된 시점부터 성적이던, 진도던 나아가지를 못한다. 이걸 버텨야 그다음 커트라인으로 넘어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멈춤의 시기를 '정지의 시간'이라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시기를 우리는 흔히 '인생 노잼 시기'라고 부른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 변화 없는 하루,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고 있는가? NO.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가? NO. 어릴 적 그렇게 혐오하다 못해 인생에 있어 생각도 못했던 그저 그런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에 모든 의지를 잃고 만다. 이런 기분을 '무쾌감증'이라고도 불린다.
나 역시 이런 시기를 많이 겪었다. 기질일 수도 있으나 나는 게임을 하던, 공부를 하던,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나은 입장이 되고 싶어 열심히 한다. 특히 게임은 언제 복귀할지 모르니 적당히 상위 랭킹에 간당간당하게 만들어 놓고 접는다. 공부도 마찬가지, 이 정도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접는다. 종이도 아닌데 뭘 그렇게 접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찍먹'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레벨업이 더딘 구간이 오거나 공부 진도가 막히는 순간 모든 흥미와 의욕을 잃는다. 말 그대로 '노잼'이 되기 때문에 바로 그만두는 편이다. 일도 마찬가지로 처음엔 재밌다가 익숙해지고, 남들보다 잘하게 되면 그만둔다. '인생 노잼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 일을 할 때에는 6개월 정도 일을 하고 그만두는 상황이 수년째 벌어졌다.
재미를 추구하는 인생! 이라기보다는 나 또한 그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는 게 제일 좋고, 재밌는 게 가장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즐거움이 없는 상황을 버티지 못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도파민에 절여진 인생이었나 싶지만, 또 막상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무언가 함에 있어 성취감이 없었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안되지 않았나.
인생에 있어 목표가 없으면 뭐 어때, 꿈이 없어도 현실을 살면 되잖아!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눈앞에 보이는 성취감이 없으면 노잼이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나는 계속 자극받아야 하고, 그로 인해 동기부여를 받고 나아가 해냈다는 쾌감을 받는 것이다. 목표 설정 이론의 한 내용 중 이런 게 있다. '목표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도달 가능한 정도로 계획해야 한다.'. 너무 높은 목표는 어차피 달성하지 못할 거라는 패배주의적 마음이 생기고, 너무 낮은 목표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수준의 목표를 계획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인생 노잼 시기이건, 정지의 시간이건 모두 '내가 도달 가능할만한 목표'가 있어야 지나갈 수 있다는 것. 쉽게 이야기하면 '존버'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어떤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버틴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업무가 익숙해져 재미없고, 덥고, 놀러 가고 싶고, 친구들보다 못한 것 같고, 퇴사할까? 생각하는 사람도 당장 다음 달 만기가 되는 적금이 있다면 이 시기를 지나갈 것이다. 막상 만기 된 적금을 받아보면 그 이후 목표인 돈을 더 굴려볼까, 그동안 못 샀던 비싼 물건을 사볼까, 그렇다면 일을 그만두면 안 되겠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노잼 시기를 벗어나 다시금 적금 만기라는 목표를 가진 사람으로 동기부여를 받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쾌락에 익숙지 않은 나는 새로운 지식, 모르는 걸 알게 되는 기쁨이 크다. 때문에 내가 들어가 있지 않은 업무상의 대화방, 내가 없는 상급자끼리의 회의에 참가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기부여가 된다. 결국 남들이 보면 별 시답잖은 이유로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하고, 버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의 노잼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아가 그만하고 싶은 이유와 해야 하는 이유를 따져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라도 더 많다면 그것은 하는 게 맞다. 일로 따져보면 그만하고 싶은 이유는 쉽게 말해 돈이 안 되고, 하기 싫어서 정도다. 해야 하는 이유는 당장의 생활비, 적금, 청약, 할부 등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나열된다. 결국 단순하게 '질렸다'는 마음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너무 아깝다. 이 정지의 시간을 잘 버텨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조금만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