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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빈 Oct 12. 2024

더러운 감정 털어내기

애증이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되 증오하는. 그런 존재가 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아카데미를 들어간 시절, 특별강사로 초빙된 사람이었다. 괜히 호감이 가고, 모든 게 멋졌다. 저 사람과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원하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보조를 뽑는다는 말에 바로 지원했다. 


스물두 살, 사회생활을 하긴 했으나 이런 일은 처음이라 소위 말하는 시다바리를 자처했다. 호감이 가니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커피를 사서 자리에 올려놓고, 그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해놓고.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그런 관계가 좋았다. 


그렇게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더 좋은 자리가 생겼다며 나를 놓고 가버렸다. 미련이 뚝뚝 생기며 그럼 나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생각하며 퇴근하던 중 그곳에서도 보조가 필요하다며 나를 다시 불렀다. 그래도 정이 있구나, 라인이 있었구나 싶었다. 즉시 퇴사를 외치고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했다. 그곳에서 나는 비록 왕따였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밖에 없었지만 좋았다. 


그리고 다시 자발적 수발을 들었다. 그 사람이 여러 일을 맡아 오면 마무리만 하면 되는 식으로 만들어놓거나, 아예 일을 맡았다. 가는 곳은 모두 따라다녔고, 하는 일에 모두 개입을 했다. 심지어 쉬는 날에는 2시간이 걸리는 그 사람의 집에 가서 일을 하고, 자녀를 돌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너무 바빴다. 프리랜서였고, 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고, 커리어를 쌓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내가 있는 곳에서 일을 하며 적응하고, 능력을 쌓았다. 예전만큼 맹목적인 좋음의 감정은 아니었지만 어디든 따라갈 자신은 있었다. 


그러다 그 사람이 내가 있는 장소로 오기 뜸해질 때쯤, 윗사람과 대립이 있었다. 나 역시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만 잘하면 된다는 주의였고, 윗사람은 여기서 있으면 자신의 말에 따르며 시키는 걸 모두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립이 되었고 시간별 하고 있는 업무를 보고하라는 부당한 처사를 받은 뒤엔 협업하지 않겠다고 했다. 


며칠 뒤 오랜만에 만나 기분이 좋았던 날. 따로 불러하는 이야기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정치질하며, 대립하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말은 듣지 않은 채 상사에게 들은 말 하나로 몇 년의 나를 평가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은 그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고, 그 사람이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윗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느낀 순간 내 마음은 증오로 바뀌었다. 


그날 바로 다른 자리를 구했다며 퇴사를 말했다. 그 사람과 인사 없이 떠났고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지냈다. 한 번쯤 연락을 할만했지만 나에게 오는 메시지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직업을 버렸다.


6여 년을 일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대부분은 내가 하는 업무에 만족하며 좋아했고, 다른 일을 할 때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리곤 의문이 든다. 그 사람은 어째서 나를 버렸을까. 권력이, 명예가, 커리어가 중요했을까.


그 이후 가끔씩 생각난다. 뭘 하고 있을까. 가끔 지나가며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이 내가 좋아해 마지않던 사람과 닮은 사진을 걸어놓은 것을 보고 득달같이 정보를 캐보기도 했다. 잘 살고 있구나. 그 장소 그곳에서 많은 명예를 얻었고, 독자적인 자리를 잡았고, 책도 내고, 교수가 되고, 전혀 다른 장르로, 다른 필명으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 알았다. 


내 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고, 가장 좋아했고, 가장 증오하는 사람.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과 반면 나 없이 잘 되는 것이 배 아프고, 질투 나고, 서러움이 든다. 이 더러운 감정으로 지금의 내 일상도 흔들리니, 빠르게 버려야 한다고 느꼈다. 더러운 마음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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